절두산순교성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㊴]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9.17 14:10  수정 2025.09.17 14:10

(국가 사적 제399호)

절두산순교성지는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로, 가장 혹독한 박해로 일컬어지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하였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상과 성당 ⓒ

성지에 들어서면 ‘팔마를 든 예수상’이 한결같이 웃음 띤 얼굴로 순례자를 맞아 주신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꽃과 나무가 적절히 잘 심어져 사계절이 아름답다. 이른 봄부터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한여름에는 성모상 주변으로 능소화가 또한 아름답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에 들어서면 제대 천정의 순교자 그림이 아름답다. 김세중 작가의 작품인 십자고상은 독특하게도 천정으로부터 줄로 매달려 있다.


성당 내부와 제대 ⓒ

미사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봉헌되는데, 미사마다 순례자들이 성당을 가득 채운다. 화요일부터는 10시 미사 후에서 2시 20분까지 성체가 현시되어 순례객들은 언제든지 성체를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다. 성당 우측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성인유해실에 있으며, 그곳에는 27위의 순교자와 1위의 무명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인유해실 ⓒ

성당 옆으로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이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240여 년 역사 중에 절반에 가까운 100여 년이라는 긴 박해의 시간을 겪었다. 박물관 1, 2층은 한국천주교회사 상설전시장이다. 가장 잔혹했던 병인대박해의 시간과 기억이 새겨진 이곳은 신앙 선조들이 지키고 이어온 교회의 역사를 눈으로 함께 걸으며 믿음의 유산을 아로새길 수 있도록 해 준다.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 ⓒ

밖으로 나오면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주변으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오성 바위, 척화비, 형구틀 등이 있다.


김대건 신부상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마더 데레사 동상이 순례자의 눈길과 마주하고, 루르드 성모상 앞에는 기도하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밖에도 망으로 된 예수님, 절두산순교기념탑 등이 있으며, 절두산순교성지에는 사시사철 눈비를 맞으면서도 기도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수많은 신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애석하게도 이름을 알 수 있는 순교자는 13명뿐이다. 1956년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순교 터 확보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12월에 이곳의 부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 후 1962년에 가톨릭 순교 성지 기념탑을 세웠고, 1967년에는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아 기념 성당과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1968년에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을 맞이하여 기념 성당 지하실에 순교자 유해 안치실을 설치하였다. 1984년 5월 3일에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의 시성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곳을 찾아 한국 순교자들에게 뜨거운 경의를 표하였다.


가톨릭 순교 성지 기념탑 ⓒ

이곳은 조선 시대 한양과 전국을 뱃길로 잇는 교통과 운송의 요지로 버들꽃 나루라는 뜻의 양화진 나루터였다. 주변 풍광이 수려하여 겸재 정선은 이곳을 배경으로 ‘양화진도’를 그렸으며, 문인들의 경연장이기도 하였다. 양화진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을 닮은 잠두봉이라 불리는 언덕이 있었다. 그런데 병인박해 당시, 잠두봉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머리를 잘려 목숨을 잃게 되었기에, 잠두봉은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갖게 된다.


1997년 11월 7일에는 성지가 위치한 양화진. 잠두봉이 국가 사적 제399호로 지정되었다.


한강 건너편에서 본 절두산성지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전화 : 02-3142-4434

주변 가볼 만한 곳 : 양화진선교자묘역


홍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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