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만 위한 대출?…서민금융 생태계 '흔들' [6.27 후폭풍①]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5.09.09 07:03  수정 2025.09.09 17:50

5대 은행 신규 차주 평균 신용점수 944.2점…2023년 7월 이후 최고

대출 문턱 높아지자 예금담보대출 수요 증가…한달 새 897억원 급증

2금융권行 '풍선효과' 나타나기도…"중금리대출 제공하기 어려워"

전문가 "취약계층 안전망 마련 필요…실수요자에겐 자금 유통해야"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6·27 대책' 이후 금융권에서는 고신용자 중심 대출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예금담보대출, 자동차담보대출 등 '불황형 대출'까지 등장했다. 생활고와 경영 부담에 몰린 서민들이 예금이나 자동차를 담보로 맡겨 급전을 마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어려운 저신용자들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등 제도권 금융에서 갈 곳을 잃고 있다. 데일리안은 결과적으로 서민은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서민금융 정책의 구조적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정부의 '6·27 가계대출 규제'와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이 겹치면서 은행 대출이 사실상 최상위 신용자에게만 몰리고 있다.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작 서민들은 금융 사다리에서 밀려나며 제도권 내 다른 창구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 신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44.2점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2023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10점 높은 수치다.


DSR 규제와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고 있다. 신용점수뿐 아니라 소득, 직업 안정성, 다중채무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대출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 것이다.


사실상 최상위 신용등급이 아니면 은행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막힌 길을 우회하려는 수요는 예금담보대출(예담대)로 몰리고 있다.


5대 은행의 예담대 잔액은 지난달 11일 기준 6조1402억원으로 전월 말(6조504억원) 대비 897억원 급증했다. 5대 은행 예담대 잔액은 지난 3월부터 6개월 연속 증가세로, 이달 11일까지 증가 폭은 이미 7월 전체 증가 폭(+480억원)의 약 2배 수준이다.


예담대는 예금 납입액 등을 한도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신용점수에 따른 제약이 덜하고 신규 실행 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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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 문턱에 가로막힌 차주들은 자연스럽게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2금융권 역시 여건이 녹록지 않다. 경기 불황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건전성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여력은 크지 않다.


여기에 대출 총량 규제와 내부 심사 강화가 겹치면서 중저신용자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결국 이번 규제가 '풍선효과'를 촉발하며 서민 금융을 더 옥죄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금리 대출을 예전 수준 만큼 제공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저축은행의 주 고객은 주로 은행·상호금융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추가 자금이 필요한 다중채무자들"이라며 "어려운 중저신용자들은 연봉 자체가 낮아 연봉 기준으로 한도를 잡으면 대출 여력이 더 줄어든다. 과거에는 요건을 충족했지만, 현재는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렇듯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는 본래 취지와 달리, 고신용자 중심의 대출 구조가 굳어지고 금융 취약층의 부담만 커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출 규제가 단순한 억제책에 그치지 않고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안전망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6·27 대책의 근본적 취지는 가계부채를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판단해 관리에 나선 것이다. 정부도 밀려난 차주들이 2금융권과 대부업까지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라며 "문제는 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채무불이행자에 대한 채무 탕감 지원이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정책 기조와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데 구제와 규제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당국과 정부의 혼선으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정책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채무자와 성실 납부자에 대한 금리 인하, 채무 탕감 등 구제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며 "아울러 신규 대출은 무주택자,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실수요자를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대출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게는 자금이 원활히 유통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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