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품귀에 또 멈춘 양조장”…횡성까지 번진 ‘지역특산주’ 위기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09.09 07:09  수정 2025.09.09 07:09

양곡법 개정에도 현장 혼란…원료 수급은 ‘사각지대’

특산주 면허, 혜택보다 제약…지역 족쇄가 발목 잡아

세제 개편 요구 확산…종량세 전환·기준 도수 적용 과제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뉴시스

쌀 품귀 현상이 현실화되면서 지역 양조장들이 속속 가동을 멈추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이어 강원도 횡성 지역 양조장도 쌀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특정 지역 쌀만 사용해야 하는 ‘지역특산주’ 제도가 현실과 괴리를 드러내면서 전통주 업계의 위기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횡성어사품조합공동사업법인은 최근 관내 양조장에 공문을 보내 쌀 ‘어사진미’ 공급 가격을 ㎏당 225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한다고 알렸다. 공급 중단 가능성도 함께 통보했다. 이미 일부 양조장은 지난달 말부터 발효시설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횡성에서 전통주를 빚는 한 업체는 SNS를 통해 “오늘부터 발효시설을 셧다운했다. 숙성 중인 원액이 있어 당장은 버티겠지만 장기화되면 증류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비축미 80만t을 사료로 풀고 있는데, 정작 지역 농가는 술 빚을 쌀조차 구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업계는 정부가 지난달 개정한 양곡관리법(양곡법)이 현장과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정안은 과잉 생산 억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이 겹치면서 일부 지역은 일반미 공급이 사실상 끊긴 상태다.


특히 지역특산주 면허 양조장은 타 지역 쌀이나 가공용 쌀 사용이 불법으로 묶여 있다. 대신 세금 감면과 온라인 판매 허용 혜택을 받지만, 원료 수급이 막히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선 쓸 쌀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지역특산주 면허는 해당 지역 농산물만을 원료로 사용해야 하는 대신 세제 혜택과 온라인 판매 허용을 받는다. 하지만 올해 기후 악화로 전국적으로 일반미 생산이 줄면서, 특정 지역 쌀만 고집해야 하는 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원의 불균형이다. 정부는 지역특산주에 온라인 판매와 세제 혜택을 부여했지만, 실제로는 원료 수급 불안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 특산주 면허를 유지하라고 하면서 정작 원료 공급망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혜택을 누릴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지역특산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지역 고립’을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쌀 품귀가 장기화되면 단순히 양조장 존폐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와 전통주 산업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는 “전통주 업계가 일반미를 쓰는 것은 세금 감면 혜택이 있어서 괜찮지만 전통주 원료를 인접 시·군구에 한정한 것이 문제다”며 “주세는 지방세가 아닌 국세이다. 당초 취지대로 국산 농산물 소비가 목적이라면 인접 시·군구가 아니라 인접 도 단위까지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독도소주 제품 이미지.ⓒ독도소주

업계는 정부에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쌀 수급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한시적으로라도 다른 지역 쌀을 활용해 술을 빚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반미 기반 전통주 정책’에 현실적인 기술 개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는 쌀 공급과 주세 정책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외국계 대기업처럼 기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업체와는 영세 전통주 양조장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통주 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과세 방식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주세 개편도 병행돼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현행 주세는 종가세 방식으로, 술 가격에 따라 세금이 매겨진다. 그러나 업계는 가격이 높은 전통주일수록 세금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주류 과세 체계에서 ‘기준 도수’는 세금 부과를 위해 정해놓은 알코올 도수를 뜻한다. 국세청은 희석식 소주 25도, 증류식 소주 35도, 탁주 7도, 위스키 40도, 맥주 4도로 각각 환산해 출고량을 계산한다. 세금을 부과할 때 이 기준 도수를 적용해 출고량을 일괄적으로 환산한다.


문제는 기준 도수 체계가 전통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주류는 저도주를 만들어도 기준 도수로 환산해 출고량을 계산하지만, 전통주는 실제 도수 그대로 반영돼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저도주 트렌드가 확산될수록 전통주 업계의 역차별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 대표는 “종가세를 채택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일반 주류 면허 증류식 소주와 전통주 면허 증류식 소주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전통주는 250㎘ 미만까지만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아서, 그 이후부터는 원가 차이가 크게 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세금 감면은 일정 수량이 넘어가면 아무런 혜택이 없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고쳐야만 전통주가 살아남을수 있다”며 “출고량의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국세청이 주류별 기준도수에 따른 출고량 산정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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