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정상회담, 北 '핵은 국체' 주장 속 中도 침묵
APEC 앞둔 한국 외교 난도 급상승…돌파구 찾을까
6년 만에 재개된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복원을 알린 북한과 중국은 앞으로 고위급 인적교류와 경제협력 등을 활발히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핵화'가 사라졌다. 북한은 이미 '핵은 국체'라며 비핵화 불가 입장을 굳힌 상태인데, 중국까지 이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한 핵을 묵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한자리에 서며 한국이 우려해온 방향으로 정세가 흘러가고 있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잇따라 나오면서 오는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비롯한 우리 외교가 직면한 난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비핵화 빠진 北·中 보도…제재 무력화 우려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일 시 주석이 "중국 측은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선이 자기의 실정에 맞는 발전의 길을 걸으며 조선식 사회주의 위업의 새로운 국면을 부단히 개척해나가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18~2019년 네 차례 북·중 정상회담 당시 빠지지 않았던 '비핵화'는 이번 보도에서 완전히 빠졌다.
북한이 최근 논평을 통해 "핵은 국위이자 국체"라며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중국까지 비핵화 언급을 접은 것은 북한의 현 노선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회담에서 "국제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관계 불변"을 강조한 점은 북한이 핵 보유를 고수할 명분을 제공한 측면도 내포한다"면서 "중국이 북한의 '핵심 이익'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당 건설·경제 발전 경험을 교류하고 호혜적 경제무역 협력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실질적 경제협력은 제재 위반 없이는 어렵다. 따라서 북·중 경제협력은 제재 체제를 흔드는 방식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중은 이번 회담에서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북·러 밀착으로 다소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주요 안보 현안에서 사전 조율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양측의 공동 이익과 근본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유엔 및 기타 다자간 플랫폼에서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할 준비가 됐다"고 언급했고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 "국제 및 지역문제들에서 전략적 협조를 강화하고 공동의 리익을 수호"한다고 보도했다. 즉 양측 모두 표현은 다르나 전략적 협조는 강조한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측 발표처럼 북한이 유엔 및 기타 다자간 플랫폼에서의 중국과의 공조 강화를 언급했다면, 북한측 입장에서는 미국 및 서방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북제제 메커니즘에 대한 중국측의 대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中, 영향력 회복 포석…'비핵화 언급 삼가' 경고
시 주석의 이번 행보는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다수다. 특히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담판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동북아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확실히 끌어안아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은 줄곧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북측과 조정을 강화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전날 취재진과 만나 "중국은 앞으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더 나서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영향력을 더 넓히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 교수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으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협력강화, 고위급교류와 전략적 소통 언급으로 보아 향후 북미정상회담추진 전 북중간 긴밀한 협의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곧바로 '비핵화 원칙 폐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홍민 연구위원은 "중국의 한반도 3원칙은 ①한반도 비핵화, ②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③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며 "추론해 볼 수 있는 양국간 이견은 북한이 최근 전략적으로 기조화하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 입장에 따라 남북한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헌법 개정 추진 등의 의사를 밝히며 중국의 지지를 요청했으나 중국이 여기에 대한 반대 및 유보적 태도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신 3원칙 중 중국측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만 언급해 비핵화 원칙을 수정해 사실상 잠정적으로 북한의 핵보유 정당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한미의 태도를 볼 가능성이 있고 외교적 레버리지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도 비핵화 언급을 삼가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경우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더욱 어려워지고, 주변국 외교력이 그만큼 중요해진다는 지적이다.
北, 더 이상 협상 나올 이유 있을까…외교 우려 증폭
중국까지 든든한 뒷배로 확보한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이 대화에 응한다 해도 '비핵화'가 아닌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한 군축 협상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이 피스메이커,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라는 한국의 기존 구상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정인 연세대 석좌교수는 지난 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 대북정책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NK포럼에서 비핵화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다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제시한 동결→감축→폐기의 3단계 접근은 미국 내에서도 우호적으로 나왔다"면서도 만 "북한은 이미 '허망한 꿈'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고, 향후 협상 동력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문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이재명 정부가 자발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조치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오는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로 쏠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두 아직 참석을 공식 확답하지 않았지만, 외교가에선 참석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 자리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시 주석에게 '비핵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당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경주 APEC에서 미·중 정상회담까지 성사된다면, 북한 문제가 주요 의제로 오를 가능성도 있다. 두 정상이 대북 메시지를 같은 방향으로 낸다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다시 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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