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문화 코드가 된 글로벌 광고 [똑똑해진 PPL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01 07:15  수정 2025.09.01 07:15

콘텐츠와 상품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생태계로

국내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와의 계약을 통해 수십 개국에 동시에 송출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속 PPL((product placement)은 더 이상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와 브랜드가 만나는 접점의 역할을 한다. 한 장면 속 제품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글로벌 시청자의 기억에 남고, 이는 곧 실제 소비와 관광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 이후 경남 창원 동부마을은 '우영우 투어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극 중 영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김밥집으로 사용된 경기도 수원 행궁동의 한 식당도 드라마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쌍문동 백운시장,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포항 촬영지도 K콘텐츠 덕분에 관광지로 부상했다.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도깨비' 캐나다 퀘벡, '사랑의 불시착'의 스위스 융프라우처럼 드라마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사례도 존재한다.


지난 6월 20일 공개돼 누적 조회수 2억1050만회, 시청 시간 3억5090만 시간을 기록 중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이런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실제 협찬이나 PPL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케이팝(K-POP) 걸그룹 헌트릭스의 활약을 그려 전통과 현대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 과정에서 김밥·순대·호떡·국밥 같은 길거리 음식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주인공 루미가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베어 먹는 장면은 곧바로 SNS에서 '김밥 한입 먹기 챌린지' 밈으로 확산됐다. 또 신라면을 떠올리게 하는 컵라면, 새우깡을 떠올리게 하는 과자, 불닭소스를 연상시키는 매운 양념, 삼립호떡과 닮은 간식 등도 시청자들에게 특정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며 글로벌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밈으로 확산된 장면은 실제 소비로 이어졌다. 크리에이트립 자료에 따르면 ‘케데헌’ 공개 직후 한 달간 한국을 찾은 싱가포르 관광객의 한식 결제액은 157%, 미국 관광객은 61% 증가했다. 싱가포르와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APAC)과 미주 지역 전반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나며, 한국 음식 수요가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케데헌'의 경우는 협찬이나 PPL이 전혀 없었음에도 음식 장면이 밈으로 확산돼 소비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주목 할 만 하다. 업계에서는 향후 PPL 기획에도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이기에 가능한 사례다. 방송사 드라마는 제작비 충당 구조상 PPL이 핵심 수익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여전히 PPL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가며 설계할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현행 방송법은 PPL 노출 시간, 화면 크기, 고지 의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서는 간접광고가 전면 금지돼 있다. 이는 시청자 보호라는 취지를 지니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 커머스의 성장 잠재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 드라마 제작 PD는 "예전엔 단순히 화면에 제품을 비춰주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PPL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김밥이나 라면, 화장품, 소주처럼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면 해외 시청자들은 그걸 통해 한국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한다고 느낀다. 이런 지점이 바로 ‘K’라는 이름이 가진 브랜드 파워를 키워주는 부분이고, 결과적으로는 콘텐츠와 상품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제작 현장에서도 PPL이 단순 수익을 넘어서 글로벌 확산을 견인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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