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열리는 곳마다 수억 원의 돈이 돌고, 지방자치단체는 때아닌 ‘공연 특수’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올해 고양시는 종합운동장 대관 수입으로만 이미 55억원이 넘는 세외수입을 기록했다. 이는 과거 단순 체육 행사 유치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서울의 대규모 공연장 부재 상황 속에서 지역의 체육시설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며 나타난 예상 밖의 경제 효과다. 그러나 이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세계를 호령하는 케이팝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 ‘공연장 부재’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 ‘흠뻑쇼’의 경제적 파급력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 7월 강원도 속초시에서 열린 공연은 단 하루 만에 75억 원이 넘는 소비를 창출했다. 공연 당일 속초를 찾은 방문객은 2만3855명에 달했으며, 이 중 88%인 2만1000여명이 외지인이었다. 이들이 쓴 돈만 51억원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방문객의 22.3%가 공연 후에도 24시간 이상 속초에 머물며 숙박과 추가 소비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콘서트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역의 관광 및 숙박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 ‘체류형 소비’를 이끌어냈음을 의미한다. 앞서 의정부시에서 열린 ‘흠뻑쇼’ 역시 약 129억원의 경제 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되는 등 대형 콘서트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이러한 ‘낙수효과’는 비단 특정 아티스트의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양시의 사례는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대형 콘서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고양시는 올해 종합운동장 대관으로만 55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과거 운동장이 본연의 체육 시설 기능에만 머물며 제한적인 수익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실제 2023년 1억7000만원 수준이던 고양종합운동장을 통한 세외수입은 사업이 본격화된 2024년 23억8000원으로 크게 증가했고, 올해 당초 예상치였던 55억원을 일찌감치 돌파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이 케이팝 산업의 근본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공연장 부족’이라는 기형적인 환경이 낳은 ‘풍선효과’에 가깝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대규모 케이팝 콘서트는 음악 공연을 위해 지어진 전문 아레나가 아닌, 축구와 육상을 위해 만들어진 종합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다. 아티스트와 공연 스태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체육시설을 대관해 무대를 꾸민다.
체육시설은 구조적으로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 탁 트인 구조는 음향의 왜곡과 분산을 유발해 관객에게 최상의 사운드를 전달하기 어렵다. 무대 연출과 특수 효과 설치에도 수많은 제약이 따른다. 시야 제한 구역이 많아 관객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도 고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전무한 상황에서, 아티스트들은 지방의 종합운동장을 전전하는 ‘유목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유휴 시설이었던 지방의 종합운동장 활용도를 높이고, 외부 관광객 유입을 통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는 효과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산업의 근본적인 성장을 위한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창의력과 재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산업의 질적 성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제는 케이팝의 글로벌 영향력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때다.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이 창출하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사회가 함께 누리고 있는 만큼, 이제는 이들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그 투자의 핵심은 바로 아티스트가 최고의 환경에서 공연하고, 팬들이 최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대규모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을 건립하는 것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잘 지어진 전문 공연장 하나는 그 자체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지속적인 문화 관광 수요를 창출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케이팝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지방 도시들이 보여준 ‘공연 특수’는 케이팝 콘텐츠가 가진 힘과 가능성을 명확히 입증했다. 이제는 그 힘을 제대로 담아낼 그릇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수십억 원의 경제효과를 유지하는 한편, 산업의 근본적 문제도 동시에 고민해 그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이 가능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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