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00조 규모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
韓은 원화스테이블코인 초과 수요 존재하지 않아
자본비율·정보 공유 등 규제 장치 필요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장 환경과 수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제도 설계 역시 한국 실정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경제학: 경제 파급효과와 정책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발제에서 "미국에서는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300조원 규모로 역외 시장에서 활발히 유통되고 있어 이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나,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초과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거대한 시장을 제도권으로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한국은 시작 단계부터 공급자 중심의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수요 기반 없이 제도화를 추진하면 발행사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과도한 이자·리워드 경쟁에 나설 것이고 이는 준비자산 운용상 리스크를 높여 금융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 구조 우려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에 초기에 우위를 점한 발행사가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현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가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상표권을 다 등록하고 있다"며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 자본금 요건만으로는 부족하며, 은행 수준의 최소 자본비율 규제와 발행량·준비자산 정보의 실시간 공유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장기적으로 디지털 자산 생태계와 토큰화 금융 인프라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현재는 국내 결제·송금 수요가 미미하고, 역외 불법 송금이나 환거래 방지 등 규제 사각지대가 크다. 제도화는 필요하지만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되고, 한국 만의 수요·리스크 구조를 반영한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보다 신중한 시각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원화 국제화나 통화주권 수호로 직결된다는 인식은 오해"라며 "통화가치 안정은 양호한 통화정책에 달려있지, 스테이블코인 유무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분한 준비자산을 갖췄더라도 코인런, 준비자산 가격 급락, 공시 불투명성 등 금융안정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제도 설계 시 금융 리스크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장기적으로 디지털 자산 생태계와 토큰화 금융 인프라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낮은 수요 ▲과잉경쟁 가능성 ▲금융안정성 저해 우려 ▲주조차익(시뇨리지) 사유화 논란 등을 감안해 제도화 방식을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 시행이 금융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국장은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의 혁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도입 필요성에도 공감한다"면서도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시 가져올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하고 충분한 안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발행 주체를 제조업·빅테크·비은행 대기업까지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수신 전문 금융업'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유지해온 금산분리 원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대기업이 발행한다고 하면 이 스테이블코인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대기업이 시장을 선점해 예금 기반으로 대출을 해주는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