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아티스트가 찾는 청년 출판인을 만나다 "책의 미래 개척할 것"

박영민 기자 (parkym@dailian.co.kr)

입력 2025.07.22 16:03  수정 2025.07.22 16:05

유엑스리뷰 창립자 현호영 대표 인터뷰

현호영 대표 ⓒ유엑스리뷰

“책 없이는 K-콘텐츠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현호영 대표는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책을 만드는 보기 드문 청년 출판인이다. 그가 설립한 유엑스리뷰는 일본 건축계의 살아있는 전설 안도 다다오,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 지브리의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 UX의 창시자 도널드 노먼 등 국내외를 아우르는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도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출판계와 예술계에서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과 예술에 뿌리를 둔 이 출판사는 국내 최초로 명품 브랜드 디올(Dior)과 아트북을 협업 제작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최근 출간한 안도 다다오의 국내 첫 공식 작품집은 출판계와 건축계 양쪽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UX(사용자 경험) 디자인 전공자로서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서는 동시에, 아날로그 매체인 책을 중심으로 전방위적 콘텐츠 확장을 주도하며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현 대표의 경영 행보는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이력이다.


다양한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 그는 왜 ‘책’이라는 전통 매체를 고집하는 걸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유엑스리뷰 본사를 찾았다.


Q. 유엑스리뷰는 어떤 출판사인가요?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저희 출판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UX 디자인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산업디자인, 색채학, 브랜딩, 예술, 건축, 심지어 경영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어요. 단순히 멋진 책이 아니라, 특정 독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해왔죠.”


Q. 디지털 미디어를 전공하셨는데, 왜 굳이 ‘책’이었나요?

“책은 정보를 담는 도구를 넘어 하나의 ‘제품’입니다. 감성과 물성을 모두 갖춘 아날로그 매체로서, 영화나 전시, 공연보다 더 오래 사람의 손에 남는 콘텐츠예요. 정보만 얻으려면 스마트폰을 보면 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만지고 넘기고 싶어 하죠. 책은 감정적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Q.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도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이 20년 넘게 반복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전 세계 모든 아이가 유아교육기 때부터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픽토그램에서 책을 상징하는 아이콘도 여전히 종이책의 형태고요. 교육용 도구로서, 감성적 자극으로서 책은 대체 불가능한 매체입니다. 단순히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Q. 20대 초반 창업,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국내 최초의 UX 전문 출판사로 시작해서 주로 IT 서적을 만들었죠. UX의 중요성이 여러 산업에서 확산되던 시기였거든요. 깊이 있는 통찰을 주는 전문가들의 책을 위주로 만들었는데 수요와 공급이 잘 일치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기도 겪었는데, 다행히 그 무렵엔 디자인 분야에서도 자기계발을 하려는 독자층이 늘면서 사람들에게 저희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문, 사회, 경영, 과학, 예술 등으로 출간 분야를 확장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성장했고요. 하지만 아직도 출판계에선 젊은 축에 속하죠.”


ⓒ유엑스리뷰

Q. 유엑스리뷰는 왜 ‘학술서’를 많이 출간하나요?

“마이클 포터, 로저 마틴, 데이비드 아커 같은 세계적인 사상가들의 책을 국내에 소개했는데요. 그런 책들은 단기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데 중요했습니다. 신생 출판사가 일시적인 트렌드만 쫓다가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저희는 반대로, 진짜 필요한 책, 꾸준히 오래 읽히는 책을 만들자는 철학을 지켜왔죠. 대중성보다 필수성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Q.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유엑스리뷰가 지속 성장을 이뤄온 비결이 뭔가요?

“빠른 기획력, 그리고 데이터 기반의 리서치와 의사결정입니다. 유엑스리뷰는 출판사이자 리서치 조직이에요. 지금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지, 그게 어떤 형식으로 제공되어야 하는지 늘 탐색합니다. 책도 결국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진화해야 하거든요.”


Q. 실제로 콘텐츠 기획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는 기업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특히 대형 교육 플랫폼이나 디자인 기업들이 출판과 관련한 전략 자문을 요청하곤 합니다. 기획은 감이 아니라 구조와 데이터로 접근해야 하죠. 책도 ‘출시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저희는 그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평소에 콘텐츠를 분해하고, 이슈가 생겼을 때 빠르게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Q. 이제는 한국 출판도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의 출판시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지만, 세계 무대에 노출된 사례는 적습니다. 문학에 한정되지 않고, IT, 디자인, 경영,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저자들이 해외에 알려져야 진정한 출판 한류가 가능하다고 봐요. 유엑스리뷰 콘텐츠랩은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언어만 번역되는 게 아니라 ‘맥락’도 번역돼야 하니까요.”


Q. 유엑스리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20년, 30년 뒤에도 사람들이 유엑스리뷰의 책을 꺼내 읽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책은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자 감각의 흔적입니다. 저희는 그런 책을 통해 한국 콘텐츠의 씨앗을 세계에 심고, 긴 호흡의 문화 확산을 이뤄가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출판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트렌드보다 철학을 먼저 세우세요. 책은 한순간에 잊히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빠르게 뜨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길게 쌓아가는 거예요. 내가 진심으로 만들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출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호영 대표가 이끄는 유엑스리뷰는 단순한 출판사를 넘어,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시대정신과 문화적 흐름을 기록하고 번역하는 플랫폼이자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여전히 책을 읽는가?’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오늘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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