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야당, 이름뿐인 '국민'의힘 [기자수첩-정치]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입력 2025.06.24 07:00  수정 2025.06.24 07:00

국민 삶 바꿀 비전은 여전히 부재

"이재명은 안된다" 소구력 상실에

민심 말하지만 실질 의제는 없어…

정부·민주당 의제에 반대만 급급

국민의힘 당 지도부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2020년 9월 2일, 미래통합당은 간판을 '국민의힘'으로 바꿔 달았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황교안 당대표 체제 아래 역대급 참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쇄신을 표방했던 김종인 비대위는 당명이 보수의 구태와 패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판단해 '새로운 보수' '보수의 재탄생'을 지향하며 당명을 변경했다. 그러나 '국민 주권' '중도 확장'과 같은 구호는 있었지만, 정작 이를 실천할 내부 구조의 변화나 실행력은 부재했다. 당명의 의미와는 달리, 국민의 삶을 바꿀 만한 새로운 비전 역시 사실상 제시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국민의힘은 2022년 이른바 '용병' 윤석열 전 대통령을 앞세워 대선과 지선을 연이어 이겼다. 대선 승리의 순풍은 불과 85일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의 승리까지 이어졌지만, 그와 같은 바람은 오래 불지 않았다.


이어진 실책과 혼란, 22대 총선에서는 겨우 개헌 저지선만 유지하는 참패, 급기야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정국까지 겹치면서 국민의힘은 위기의 당으로 전락했다. 결국 더 이상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구호는 국민 앞에 힘을 잃었다. 국민의힘은 2025년 조기대선에서 참패하며 '국민'에게 '보이지 않는' 야당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2026년 치러질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권 초반이라 국민의힘에 불리할 수 있지만, 2028년 총선은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총선은 결국 '심판론'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중도층이 돌아오며 보수층 결집도 가능해, 그 시점이면 국민의힘도 충분히 반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런 섣부른 기대감은 국민의힘을 끝없는 연쇄 패배로 몰고 가는 달콤한 독약에 가깝다. 국민의힘은 지금 스스로가 어떤 정치 지형에 서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미 물가와 민생, 정치 개혁 의제는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손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그 의제에 반대하거나 따라붙는 데 급급할 뿐, 국민 앞에 자당만의 이야기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오찬 회동에서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회동 이후 "정부·여당이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을 모두 틀어쥐고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식사 한 번 하며 야당을 들러리 세운다는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성토를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할 의지가 없는 것 같고, 진정한 대화보다는 모양새만 갖추려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불만 섞인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원하는 바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떤 대응책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소수 야당으로서 국민과 함께 갈 수밖에 없고 민심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보일 뿐이었다.


정치적 현실상 국민의힘은 현재 방어적 위치에 놓여 있고, 여당 시절 누렸던 정책과 법안의 주도권도 상실한 상태다. 개헌 저지선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주도권을 발휘할 힘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국민'을 외치는 국민의힘의 목소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국민의힘은 정작 국민을 향한 실질적이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는 국민이 아니라 당 내부와 경쟁자, 이재명 정부를 향해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 '민생 회복' '경제위기 대응' 같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이슈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이를 뛰어넘는 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채 정부와 집권여당의 의제에 반응하는 것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앞서 선출된 김병기 원내대표에 이어 당대표마저 확실한 '찐명(진짜 친이재명)' 인사의 선출을 앞두고 있어, 강성에 전투적인 여당 지도부를 상대해야 하는 국민의힘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아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렇게 가다간 국민의힘은 TK 외에선 지역 동력과 민심의 기반을 상실한 채, 민주당의 민생 의제에 끌려다니며 '반대만 하는 정당'으로 보이게 될 것이란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런 현실에서 국민의힘은 어떻게 해야 주도권 회복을 시도할 수 있을까. 국민은 "민주당이 틀렸다" "이재명 정부가 벌써 실패했다"와 같은 공허한 비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즉 표면적으로만 '국민'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 스스로가 지금 국민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냉철한 자기성찰과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한다면, '국민'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냉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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