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롯데 통합 논의로 민간발 구조조정 신호탄
정부‧국회 제도 지원으로 본격 추진 여건 마련
국내 최대 설비 보유 ‘빅샤크’ LG화학은 아직 테이블 밖
본진이 움직여야 공급과잉 해소…다가오는 골든타임
‘선봉’. 전쟁에서 군의 선두에 서는 부대를 의미한다. 전투의 서막을 여는 부대로, 선봉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적의 예봉을 꺾어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본진’이다. 본진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선봉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적에게 포위돼 궤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딱 그 모양새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대산 NCC(나프타분해시설) 통합 논의를 시작하면서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 흐름이 처음으로 현실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후속 제도 정비에 나섰고 정치권은 대통령 공약을 반영한 특별법까지 발의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회의실이 아닌 입법의 영역으로 올라온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두 회사는 대산 지역에 각각 85만t, 110만t 규모의 NCC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논의는 이를 HD현대케미칼로 통합하고 수요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감산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움직임이 구조조정의 본격적 시작이 되려면, 산업 전반을 흔들 수 있는 '본진'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본진은 단연 LG화학이다. 여수에만 200만t, 대산까지 하면 330만t 설비를 보유한 국내 최대 NCC 사업자이자, 기초유분 시장에서 공급 구조의 핵심을 쥐고 있다.
LG화학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실제로 여수 NCC 2공장 지분 일부를 매각하려 했지만, 마땅한 수요자를 찾지 못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는 구조조정의 동력을 만들기엔 부족하다. 지금처럼 여섯 곳이 넘는 기업이 기초유분 설비를 나눠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단순한 자구책만으로 공급 과잉 문제를 풀 수 없다. 누가 먼저 감산에 나설지를 두고 셈법이 엇갈리는 가운데, 어느 누구도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 구조를 바꾸려면 중심이 필요하다. 몸집이 가장 큰 LG화학이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논의가 논의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LG화학처럼 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빅샤크’가 움직일 때 비로소 구조조정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와 정치권은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여건을 마련 중이다. 산업부는 공동행위 특례와 고용유지지원금 완화, 지역경제 충격 완화 방안 등을 조율하고 있고 국회에서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이 발의됐다. 이제 필요한 건 산업 중심 기업의 응답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문을 두드렸다. 그 문을 여는 것은 LG화학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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