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브랜드] "조립식 옷, 내려놨죠" 글로벌 100억 앞둔 '해브해드'의 결심

박영민 기자 (parkym@dailian.co.kr)

입력 2025.06.12 13:34  수정 2025.06.16 11:31

도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해브해드'의 이승환 대표, 구윤모 디렉터 인터뷰

팔리는 상품을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 브랜드 커머스의 중심에는 이제 자사몰이 있다. 자사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일군 창업자들의 여정을 들여보았다. 성과보다 먼저 찾아온 망설임, 시행착오 속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과정까지.


“사업을 하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재미 삼아 공모전에 나갔을 뿐인데, 상도 타고 투자까지 받게 됐고요. 정신 차려보니 팀원이 20명을 넘었어요. 그냥 휩쓸린 거죠. 마치 자연재해처럼요”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해브해드 이승환 대표와 구윤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그렇게 10년 전을 떠올렸다. 지금은 연 매출 100억 원을 앞둔, 감도 높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그 출발점은 패션이 아닌 기술이었다.


“기술이면 다 될 줄 알았죠”


ⓒ왼쪽부터 해브해드 구윤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승환 대표

두 사람은 같은 중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오랜 친구다. 2016년, 삼성전자가 주최한 사물인터넷(IoT) 공모전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함께 창업에 나섰다.


초창기에는 의류 쇼핑몰에 사이즈 추천 기능을 더하는 기술을 개발해 공급했다. 하지만 대기업과의 계약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고객도 산업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일이 쉽게 풀리지 않더라고요. 도메인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기술만 연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승환 대표는 그때의 시행착오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기술만으로는 패션 산업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실감한 두 사람은, 결국 직접 브랜드를 운영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들이 당시 풀고 싶었던 문제는 유행을 바탕으로 빠르게 소진되는 의류 생산과 소비 방식이었다. 특히 창업자 두 사람 모두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메이커’ 성향이 강했기에 기존 패션 산업에서 당연시되던 비효율과 낭비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유통이나 판매보다는 생산 과정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었고, 대안을 고민하다가 떠올린 방식이 바로 ‘조립식 패션’이었다.


조립식 패션은 셔츠 하나를 고를 때도 단추나 포켓 같은 세부 요소를 자신의 취향대로 조립하듯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브랜드명 ‘해브해드(HaveHad)’도 여기서 비롯됐다. 꼭 맞는 옷이 예전부터 옷장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도록, 영어 동사 ‘have’의 과거분사형 ‘have had’에서 착안했다.


원하는 스타일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이 새로운 방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2018년 텀블벅 펀딩부터 편집숍 29CM 데뷔까지, 해브해드의 초반 팬덤은 폭발적이었다. 광고 한 번 없이도 2만 명의 SNS 팔로워가 생겼고, 설문이나 이벤트마다 수천 개의 응답이 쌓였다. “패션 산업을 잘 몰랐으니까 가능했던 시도였어요. 그게 해브해드의 가장 큰 행운이자, 위기의 씨앗이었죠”


폭주한 주문, 흔들리는 공장…커스텀의 이면


ⓒ해브해드 이승환 대표

위기는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신제품을 내자마자 몇 시간 만에 매출 1억 원을 찍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산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광고도 안 돌렸거든요. 너무 잘 팔려서 도리어 판매를 중단해야 했어요”


해브해드의 커스텀 제작 방식은 기본적으로 ‘많이 팔수록 위험한’ 시스템이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수제작 기반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주문 폭주에 즉각 대응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해브해드는 생산을 아웃소싱하지 않고 자체 공장을 운영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우리가 책임진다’는 메이커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취약했다. 단추, 다림질, 재단 등 필요한 작업을 외주 공장 여러 곳에 나눠 맡겨야 했고, 하나의 옷을 완성하려면 하루에도 수차례 퀵 배송이 오갔다. “단추 달고, 후가공하고, 다림질 맡기고… 한 벌 만들기도 벅찼죠. 도박 빚으로 업체 사장이 도망가고, 맡긴 제품이 사라지는 일도 있었어요” 구윤모 디렉터는 당시의 생산 현실을 그렇게 회상했다. 공장 내부의 인력 운영도 녹록지 않았다. 일감을 둘러싼 다툼, 감정 충돌이 잦았다. “오후 5시만 되면 ‘왜 나만 일 적게 줘요’ 하면서 봉제사분들이 다같이 퇴근해버리곤 했어요” 시스템도, 사람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의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었다. 커스텀 제작 특성상 배송까지 평균 2주가 걸렸고, 2% 안팎의 제품 오류율도 고려해야 했다. 운영자 입장에선 ‘2%쯤은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고객에게는 전혀 달랐다. “2주 기다린 옷이 잘못 왔을 때 다시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감정적으로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죠” 하필이면 그 시기가 로켓배송, 샛별배송 같은 익일 배송 서비스가 막 떠오르던 때였다. 소비자들은 ‘2~3일’도 느리다고 여겼고, 고객이 주문한 옷을 기다리던 2주 사이, 계절은 바뀌고 고객은 떠났다.


그럼에도 끝까지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제작 지연과 품질 이슈는 반복됐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도 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해브해드는 조립식이라는 코어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그게 저희의 핵심이었는데,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2020년 말, 방향 전환을 결정하던 그 순간을 구윤모 디렉터는 “괴로웠지만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은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걸 느꼈어요. 일정 수준의 규모와 자본이 뒷받침돼야, 좋은 품질과 빠른 배송이 가능해지거든요” 이승환 대표의 말처럼, 해브해드는 그제야 비로소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마주하게 됐다.


살아남으려면 체질부터 바꿔야 했다


ⓒ해브해드 자사몰 사이트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오래 갈 수 없어요. 결국 사업이란 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점점 더 깨닫게 됐죠” 이승환 대표는 브랜드 운영의 전환점을 이렇게 돌아봤다.


2020년, 해브해드는 본격적으로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커스텀 비중을 줄이고, 생산 수량을 안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구조로 체질을 바꿨다. 조립식 브랜드에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브랜드’로의 전환이었다. 이 시기, 해브해드는 고객과의 활발한 소통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실험에 집중했다. 해브해드만의 ‘성공 방정식’을 찾기 위한 테스트를 묵묵히 반복해나갔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들이 시즌 단위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해브해드는 매달 신제품을 내놓고 매주 촬영을 진행했다. 제품 하나, 사진 한 장, 광고 문구 하나까지 고객 반응에 따른 결과를 분석하며 운영 방식을 정교화해갔다. “같은 옷이라도 밝은 조명 아래 찍은 사진과, 그림자 진 공간에서 찍은 사진의 클릭률이 확연히 달랐어요. 어떤 이미지가 더 고객의 관심을 끄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했죠” 이승환 대표는 데이터를 통해 고객 반응을 끊임없이 교정하고, 그 안에서 해브해드만의 기준과 무드를 지켜나갔다.


이런 실험의 중심에는 자사몰이 있었다. 해브해드는 아임웹으로 자사몰을 직접 구축하고, 사이트 구조부터 고객 데이터를 연결하는 방식까지 스스로 설계했다. 덕분에 제품 판매는 물론, 고객 반응을 빠르게 수집하고 실험 결과를 곧바로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함께 사면 좋은 상품을 묶어 제안하거나, 할인 옵션을 자연스럽게 붙이는 방식 등은 모두 이 구조 속에서 반복 실험하며 다듬어온 전략이다. 이승환 대표는 말한다. “자사몰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핵심이었어요. 모든 실험과 개선이 여기서 가능했거든요”


현재 해브해드 매출의 절반 이상은 자사몰에서 발생하고, 나머지는 오프라인 매장과 편집숍을 통해 나온다. 자사몰을 중심으로 정교해진 기획과 운영은, 이제 브랜드의 고유한 감도를 지키면서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도시 감성은 지키고, 판은 키운다


ⓒ서교동 해브해드 & 스테레오포닉 사운드 매장 전경

“도시의 일상을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해브해드를 한 줄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구윤모 디렉터의 답변이다. 조립식 패션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해브해드가 지향하는 세계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들르는 동네 빵집, 오후의 조용한 커피, 집 안 창가에 드는 햇빛처럼 해브해드는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도시 속 일상에 깃든 고유한 리듬과 무드에 주목해 왔다.


그 철학은 옷에 대한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옷은 표현의 수단이기 전에, 매일 몸에 닿는 것이잖아요” 구윤모 디렉터는 유행보다 착용감, 디자인보다 일상의 쓰임을 먼저 고려하는 브랜드 철학을 설명하며 덧붙였다. “해브해드는 그런 균형을 계속 지키고 싶어요” 쉽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취향이 묻어나는 옷, 감각보다 감촉을 우선하는 브랜드. 이러한 균형감에서 비롯된 고유한 감도는 해브해드만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힘이다.


이 감도를 더욱 입체적으로 풀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에는 커피와 공간, 음악을 결합한 F&B 브랜드 ‘스테레오포닉 사운드’를 오픈했다. “해브해드의 무드를 공간으로 옮겨본 실험이었어요” 이승환 대표는 도시 생활 속 다양한 키워드와 무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를 차근차근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브해드의 도시 감성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도 뻗어나간다. 일본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해브해드는 현재 대만, 홍콩, 베트남 등 아시아권으로 무대를 넓히는 중이다. “처음부터 자사몰 중심으로 퍼포먼스 마케팅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별도 파트너 없이도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도 해브해드는 자신들만의 속도를 지키며 브랜드의 리듬을 이어가고 있다.


두 창업자의 꿈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훗날 손자손녀 세대가 자연스럽게 해브해드를 입는 모습을 보는 것. 세대를 넘어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드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두 사람에게는 가장 큰 성취이자 증명이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 그게 우리가 진짜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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