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엔 스테로이드가?” 진짜 위험한 건 오해입니다 [이한별의 골때리는 한의학]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6.11 07:00  수정 2025.06.11 18:20

지난 글에서는 ‘어린이가 녹용을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거나 ‘호박즙이 붓기에 좋다’는 식의 일상적인 오해들을 다뤘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 한의사들이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오해는 단순한 상식 차원을 넘어선다.


특히 한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폄훼하려는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 주장들은 환자의 불안은 물론, 치료 기회를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약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말은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근거가 없는 악의적 소문에 가깝다.


한약의 효과가 빠르거나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면 그것이 곧 양약 성분이 섞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한약의 작용 메커니즘이나 체질 기반의 처방 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논리적 비약이다.


한의원에서 처방되는 한약은 보건당국이 허가한 한약재만을 사용하며, 조제와 투여 과정에서도 엄격한 기준과 감시를 받는다. 실제 문제가 되었던 사례는 대부분 무허가 건강식품이나 불법 유통 제품에서 발견된 것이며, 한의사의 공식 처방과는 무관하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오해는 암 환자가 한약을 복용하면 암이 더 자란다는 주장이다. 이는 현대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오히려 여러 연구에서 황금, 황련, 인진쑥, 백복령 등 다양한 한약재가 항암 활성을 가진 물질을 포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일부는 세포주 수준에서 암세포의 증식 억제 효과를 보였고 일부는 면역세포의 활성을 통해 항암 치료의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이 보고됐다.


물론 환자의 병기, 체력 상태, 병용 중인 항암약 등에 따라 모든 암 환자에게 동일한 처방을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모든 한약이 암에 해롭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 임상에서는 항암 치료의 부작용 완화, 식욕 저하 개선, 체력 회복 등의 목적으로 한약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으며, 다만 양한방 협진이나 주치의·한의사의 공동 판단 아래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진단이나 경옥고와 같은 보약을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쓰면 고통만 늘어난다는 말도 여전히 회자된다. 과거에는 값비싼 약을 무의미하게 낭비한다는 정서에서 비롯된 속설이지만 실제로는 신체적 기운을 보강하고 불안을 완화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환자의 의사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신중히 투여한다면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약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제 수정돼야 할 때다. 한의학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키는 대표적인 오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감초에 함유된 글리시리진의 항염 작용, 황련의 베르베린의 항균 및 대사조절 효과, 시호탕의 간 기능 개선과 해열 작용 등은 이미 국내외 수많은 논문과 실험을 통해 약리적 메커니즘이 일부 규명된 상태다.


또한 다수의 한약 복합 처방에 대해서도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RCT)이 진행되고 있으며, 유럽·중국·한국에서 다양한 한약재의 성분과 효능이 정량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제 한약은 단순한 전통을 넘어, 현대 과학과 임상이 함께 접근하고 있는 의학적 자산이다. 진짜 위험한 건 오랜 임상과학의 결과를 폄훼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믿는 우리의 인식일지 모른다.


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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