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뚜렷하지 못했던 보수정당
좌파 정치세력 저마다 혁명주의자
스스로를 태운 재 속에서 부활해야
콩글로머리트 형의 정권 안 되기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국민의힘 지금 해체하세요. 사회 여론은 진작 국힘의 해체와 새로운 자유 우파 정당의 등장을 기대하고 촉구했지요. 그런데도 권력의 주변에서 누리기만 하는 데 특화된 재주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빈사 상태의 당에 연명장치를 달아놓고 지금까지 당원과 자유 우파 국민들을 기만해 온 것입니다.”
불사조(phoenix)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죽지 않는 새다. 500~600년마다 한 번 스스로 향나무를 쌓아 불을 피워 타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영생(永生)에도 조건이 있다. 낡은 것을 불에 태우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보수정당의 뿌리는 깊다. 자유당으로부터 시작되어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제2공화국 11개월을 제외하고는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반세기 동안 권력을 독점해왔다. 김 전 대통령 이후엔 보수·진보 정당이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재명 당선인까지 포함하면 그간 보수·진보 각각 3명씩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정체성 뚜렷하지 못했던 보수정당
그러나 보수정당의 정권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재임 중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을 당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집권당은 정권을 지키기를 위한 결속 대신 자폭을 향한 분열상을 보였다.
사실 영국에서와 같이 뚜렷한 이념과 가치와 정체성을 가진 보수정치 세력이 처음부터 자기 선언을 하고 나왔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자칭 진보(progressive)에 의해 보수로 규정된 것일 뿐이었다고 보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수가 있다. 1948년 나라를 세우기 이전부터 진보는 이념 세력으로서 기존의 유력 정치세력들을 공격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했다. 이들은 당시에도 후에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혁명’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정치행태나 언설, 집권 시절의 정책, 선동 용어 등으로 미루어 이들은(그 가운데서도 리더들) 좌파 혁명주의자들이다.
보수정당은 방어논리로 국가재건 경제부흥을 꺼내 들었다가 후에는 ‘산업화 근대화 업적’으로 업그레이드했지만 그걸 국민의 뇌리에 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좌파의 민주화 선전에 눌려버린 탓이었다. 대한민국은 경제와 정치면에서 세계적 역사적 대성공을 이뤘으나 국민의 기억은 거의 ‘독재’로 채워졌다. 좌파의 대성공이었다. 보수가 게으른 부자 아들 행세를 못 버리고 있는 사이에 좌파는 현실의 조건들을 타파하고 자기들의 세상을 여는 일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들은 단순한 좌파가 아니라 자코뱅 적 좌파임을 말과 행동으로 확인시켰다. 보수가 강조하는 모든 것에 대해 좌파는 전쟁을 벌였다(이를테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백년전쟁’ 식의). 국가발전, 현대사, 문화, 교육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알던 상식과 지식을 뒤집어엎는 작업을 끈질기게 전개했다. 그 양상이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이들은 승리 전략을 세울 줄 알았고, 보수 정치세력은 그 위험성을 간과하거나 얕잡아 봤다.
좌파 정치세력 저마다 혁명주의자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에 대해 ‘제2건국’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전 정부들과의 ‘근본적인 결연’ 선포였다. 그러나 보수정당은 물론 국민들도 ‘과하지만 이해해줄 수 있는 자화자찬’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보다 그 저변의 좌파 세력은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에 ‘시민혁명’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전통과의 결별을 시도하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촛불혁명’을 끈질기게 선전했다. 이들에게서 공통점은 ‘혁명’이었다. 기존 체제나 가치, 질서를 뒤집어엎어 버리기를 희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보수정당은 이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제 손을 묶고 “도리가 없다”고 푸념하는 식이었다. 제19대 대선에서 민주당에 참패하고 21, 22대 총선에서 그야말로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보수정당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패배의 쓴맛을 잊지 않기 위해 섶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실력을 쌓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쇠락해가는 집이라도 있는 게 편하니까 안주한 것이다(‘보수’가 배척되는 사회상에 절망해서 필자는 2019년 1월 1일자 칼럼부터 ‘자유우파’라 쓰고 있다).
그런 의식을 가진 리더들이 있는 당이 20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이 말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이 승리한 선거가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개인의 득표력으로 거둔 당선이었다. 당이 내 세울 공은 별로 없으면서 과실은 공유하고자 한 셈이었고, 아마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갈등 구조 속에 갇혔을 것이다.
이번 제21대 대통령선거까지 큰 선거에서만 3전 전패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문재인 정부 첫 총리)가 출현을 극도로 경계했던 ‘괴물 독재’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국민의힘이 정치적 책임 의식과 수치를 아는 집단이었다면 늦었다고 해도 21대 총선(2020년) 패배 후엔 해체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러나 유력자라는 사람들,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사람들은 흔한 말로 ‘껌딱지’처럼 당에 매달렸다.
스스로를 태운 재 속에서 부활해야
해체를 못 했으면 대대적인 혁신이라도 할 일이었지만 총선 참패를 이끈(?)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는 추태를 보였다. 그는 다시 윤석열 선대위에서 한동안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22대 총선 때도 참패를 초래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 자리에 앉혔다. 유능한 경쟁 지도자 부재 탓이었겠지만 어쨌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임을 스스로 광고해 보인 것이다.
혼신의 정열을 다해 경쟁했으나 역부족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 김문수 후보에겐 깊은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게 순서이겠다. 그렇지만 유감의 마음을 숨길 수도 없다. 경선에서 아무리 영광스러운 승리를 했다고 해도 본선에서 지면 만사휴의(萬事休矣: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감)다. 경선 과정에서 한덕수 전 총리와의 후보단일화 의지를 강조했다가, 후보가 된 후에는 소극적·회피적 태도를 보이면서 당내 분란을 초래했고 그게 민심의 이반을 초래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정치집단으로서 국민의힘 한계다.
빨리 수술해야 새살도 빨리 돋는다. 내년 6월이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포기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당 해체와 재건 시기를 늦춰선 안 된다. 조금 지나 충격이 사라지면 또 당의 그늘에서 안일을 누리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신당의 우선적 원칙은 ① 당 사무처 직원들 전원 승계, ② 당 소속 의원들 엄격한 입당 심사, ③ 누린 게 많은 실력자, 유력자들의 2선 후퇴, ④ 정직성·도덕성 결여된 유력 정치인은 배제, ⑤ 독립적인 상설 전략기구 설치가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국민의힘과 전혀 다른 새 정당이 되지 않으면 국민은 ‘새로움’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원을 많이 잃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지금의 구도로는 이 당선인과 민주당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일도 막을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경쟁의 전략을 갖춘 참신한 정당을 만들어 훗날에 대비하는 것이다. ‘통합’이란 불가능한 구호를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통합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가 더 바람직한 덕목이다.
콩글로머리트 형의 정권 안 되기를
홍준표 전 대구시장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당원이 아닌 일반시민의 입장에서도 파렴치의 극단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3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다. 길게 말을 보탤 이유도 흥미도 없다. 다만 ‘새롭게 판을 짠’ 사람은 그가 아니었고 ‘온갖 잡동사니’ 중에서도 대표적인 ‘잡동사니’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새롭게 등장하게 될 정권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낙연 전 총리가 말한 그 ‘괴물 독재’가 기어이 현실적 존재가 될 것이냐 해서다. 삼권분립 체제가 허용한 독립적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를 의석수로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온갖 형태의 입법 전횡을 저지른 민주당의 선두에 이 당선인이 있었다.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 모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입법부의 권한을 동원해,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정부(특히 대통령과 검찰) 및 사법부 협박을 일삼은 인물이다.
이제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권의 다음 행보는 예측 불가다. 행정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아우르는 콩글로머리트(conglomerate)형 정권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해서 공포감까지 밀려온다. 역대 좌파 대통령들의 전례를 좇아 다시 혁명(빛의 혁명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을 말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다만 민주국민의 상식이 극단 상황을 막아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이 당선인의 승리를 축하한다. 아울러 황당한 출구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파 후보 지지율이 좌파 후보들의 지지율과 대등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유 우파 정치세력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국민의 표가 증명해 준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자기 계산에만 충실했던 대선 완주에 대해선 말을 참는다. 할 가치가 없어서!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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