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호수길부터 거꾸로 한반도지형 전망대까지
반딧불이 축제와 함께하는 생태문화 여행지
둔주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꾸로 한반도 지형. 왼쪽편이 경률당 밀보리밭이다. 거꾸로 한반도 지형을 굽이 흐르는 금강의 풍경이 장관을 연출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 배태랑은 ‘배기자와 함께하는 생태사랑 여행’이다. 매달 환경부에서 지정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지를 직접 방문한다. 환경부는 자연환경의 특별함을 직접 체험해 자연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2024년 3월부터 매달 한 곳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전국 생태관광 지역 중 해당 월에 맞는 특색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지역 관광자원 연계 및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한다. 배.태.랑은 전국에 있는 생태자원 현장을 직접 찾아가 생태적 가치와 보존, 그리고 관광이 공존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을 직접 조명하고자 이 시리즈를 준비했다. 초보여행자, 가족여행자 눈높이에서 바라본 현장감 있는 시리즈로 풀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충청북도 옥천군은 수도권에서 약 2시간 남짓이면 닿는 거리다. 그러나 대청호를 끼고 있는 안터지구는 마치 따로 떨어진 섬처럼 고요하다.
육지지만 섬마을처럼 배를 타고 들어가는 오대마을, 옛길과 버드나무가 이어진 지장마을, 그리고 제비집이 남겨진 현리마을까지.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자연은 조용히 말을 건다.
옥천읍 오대리에는 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향수호수길’이 있다. 호수와 마을, 들꽃과 바람이 어우러진 산책길이다. 느네팜가든의 마을 정원과 배터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풍경은 그림엽서처럼 다가온다.
동이면 석탄리의 ‘안터선사공원’은 대청호 수변과 맞닿아 있다. 지양리 노거수 아래로는 지장마을과 뒷산이 한눈에 담긴다. 특히 안터교 인근 벚나무길은 늦봄까지도 은은한 연분홍의 여운을 남긴다.
향수호수길 인근에서 바라본 안터지구. 금강 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들의 유래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 ‘안터’라는 이름에 담긴 마을의 뿌리
‘안터’라는 지명은 충북 옥천 동이면 석탄리 일대에서 유래됐다. 옛말로 ‘안쪽에 있는 들’ 또는 ‘안쪽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대청호가 만들어지기 전, 이 일대는 금강 본류를 따라 펼쳐진 충적(퇴적)평야와 아늑한 산자락 사이에 자리를 잡은 자연부락이었다.
1980년대 대청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이 많았는데, 석탄리와 연접한 마을 일부는 고지대에 남아 마을 전통을 이어왔다. 현재 ‘안터지구’로 불리는 이 일대는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개발보다 보존을 선택한 공간이다. 그 결정이 40여 년 후 반딧불이 귀환과 생태관광지 지정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박연화 옥천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대청댐 준공 이후 40여 년간 환경 규제로 개발에서 비껴간 옥천은 오히려 그 덕에 자연을 지킬 수 있었다”며 “지난 2021년 환경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옥천 대청호 안터지구는 국가하천유역 최초의 지정 사례로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이어 “현재까지도 반딧불이 복원과 생태마을 운영, 환경아카데미 등 다방면의 생태정책이 진행 중”이라며 “마을마다 이야기가 있고, 계절마다 빛이 다른 이곳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생태 여행서”라고 덧붙였다.
안터지구는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반딧불이 축제를 연다. 해설프로그램과 함께 안터지구를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일러스트 박신영 작가
▶︎ 볼거리 가득한 안터지구…5월 말과 6월 초가 좋다
둔주봉 거꾸로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서는 금강 본류가 만들어낸 한반도의 윤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 아래로 펼쳐지는 밀보리밭은 5월의 황금빛 장관이다.
안남면 연주리 일대에는 ‘괴생이 흙길’과 보리밭, 돌탑, 제비집이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다. 안내면 장계관광지와 성당, 토기 가마는 고요한 시간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화인산림욕장’ 메타세쿼이아 숲에서는 피톤치드가 가득한 순환 산책로가 기다린다.
5월과 6월에는 안터지구 일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추천 프로그램으로는 반딧불이와 제비가 들려주는 생태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특히 5월 끝자락에는 옥천에서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 동이면 석탄1리에서 마을 해설사와 함께 숲길을 걷는 이 탐방은 9시 반 이후 별빛이 함께하는 특별한 체험이다.
안남면에서는 ‘마을을 잇다, 마음을 잇다’ 걷기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제비집을 관찰하고 마을 해설과 도시락 체험을 곁들이는 소박한 하루다. 또 안내면에서는 ‘무해한 하루’가 제안된다. 꽃 체험과 대청호습지길을 걷고, 아르아르농장에서 생태밥상을 경험할 수 있다.
둔주봉 전망대로 가는 길.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있어 천천히 걷기 좋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금강을 품은 곡선의 예술…둔주봉 ‘거꾸로 한반도’ 전망대
안남면 연주리에 위치한 둔주봉은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풍경을 품고 있다. 이곳은 ‘거꾸로 한반도 지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상부 전망대에 오르면 금강 본류가 휘감아 흐르며 만들어낸 땅의 곡선이 대한민국의 형태를 거꾸로 닮아 있다.
전망대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왕복 1시간 내외로 충분하다. 초보자도 그리 힘들지 않은 코스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은 짙은 숲 내음과 새소리가 반기고, 정자 형태의 전망대에 다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은 ‘금강의 반도’ 또는 ‘자연이 만든 지도’라 불린다. 생태관광지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라 할 만하다.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강변과 숲, 마을은 고요함 속에 깊이를 더한다. 드론 촬영 포인트로도 꽤 유명하다. 이른 아침 운무 낀 풍경은 특히 환상적이다.
데이지 가득한 안터지구의 봄. 경률당 주변으로 만개한 데이지와 밀보리밭의 풍광만 봐도 안터지구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경율당 아래 펼쳐진 황금빛 밀밭, 옥천의 보리 물결
둔주봉 자락을 내려오면 만나는 또 하나의 절경이 있다. 바로 안남면 연주길 일대 경율당(敬栗堂) 아래 펼쳐진 밀보리밭이다. 경율당은 조선 후기 유학자 김유성 선생의 고택이다. 전통 한옥의 고즈넉함과 함께 탁 트인 보리밭 풍경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최근에는 이 마을 주민들이 경율당 주변으로 데이지와 작약 등을 심어놔 더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5월 중순부터 말까지, 보리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바람이 지나가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보리 물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특히 아침 햇살이나 해질 무렵, 빛의 각도에 따라 보리가 은빛으로 반짝일 때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은은하다.
바람부는 날 밀보리밭 사진을 담으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유화나 수채화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곳은 별다른 안내판도, 인위적인 조형물도 없다. 대신 오래된 돌담과 흙길, 소박한 나무의자 하나가 전부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를 누릴 수 있는 포토스팟이다. 밀보리 수확 전까지는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므로 걷는 여행자에게도 적합하다.
경율당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충북의 숨은 풍경 베스트’라 불릴 만큼 매혹적이다. 생태관광지로서의 상징성이 있는 반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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