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나오자
8개월 만에 사과 보도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가 숨진 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MBC가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보도하며 유족에게 사과했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유족에게 사과하며 관련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하며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문을 발표한 다음날까지도 가해자로 지목된 기상캐스터가 예정대로 날씨 예보를 진행하면서 ‘약속’을 무색케 했다.
지난 2월부터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던 고용노동부가 고 오요안나의 선배들이 단순한 지도나 조언을 넘어,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가 반복됐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한 매체가 19일 이를 보도하자, MBC는 유족들에게 사과하며 “관련자 조치와 함께 조직문화 전반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도 직후 공식입장문을 통해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조직문화 개선, 노동관계법 준수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프리랜서 간 또는 비정규직 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더 보완하고,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MBC 자체 보도도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간 해당 사건을 MBC 뉴스프로그램을 통해 보도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던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의 조현용 앵커의 입을 통해 유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다시금 관련자 조치와 함께 조직문화 전반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지난해 9월 유서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의 고통을 호소하며 떠난 지 무려 8개월 만에 이뤄진 첫 보도와 사과였음에도, MBC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음 날인 20일 가해자로 지목된 김가영, 이현승 캐스터가 각각 ‘뉴스투데이’와 ‘12 MBC 뉴스’에서 날씨 예보를 진행한 것이다.
당초 MBC는 가해자로 지목된 동료 캐스터들의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을 막지 않았었다. 김가영 캐스터는 출연 중이던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과 MBC FM4U ‘굿모닝 FM 테이입니다’에서는 하차했지만, 날씨 예보 활동은 그대로 이어갔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입장을 밝히지 않아 관련 의혹에 대한 그들의 인정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신중한’ 태도를 보인 MBC의 태도도 이해할 수는 있다. 지난 2월 MBC는 “고인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며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에는 법무법인 혜명의 채양희 변호사가, 외부 위원으로는 법무법인 바른의 정인진 변호사가 위촉됐다고 전했었다. 검사 출신 채 변호사와 판사 출신 정 변호사를 외부 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공정성과 신뢰성,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보여줬다.
특히 MBC의 표현처럼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 ‘모두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MBC가 자체적으로 조성한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과를 지켜보는 자세도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MBC가 이해 받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고인의 유서가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논란이 확산된 이후에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MBC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늦은 조치’라는 비판을 받는 MBC가 신뢰 회복의 ‘골든타임’마저 놓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관련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첫발’에 불과하다. MBC가 입장문을 발표하며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한 것처럼 방송업계 내 위계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대상을 프리랜서에게 확대 적용하는 등 제2의 오요안나를 막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첫발’부터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MBC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될지, ‘신중함’을 넘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MBC를 향한 실망감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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