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선언, 전두환·노태우 긴밀한 교감 시사
87 체제의 핵심이 출현하는 순간
노태우 정권, 직선제로 들어선 정통성 있는 합법정부?
전두환·노태우 구속, 대중의 힘 중시 논리 다시 부상
1987년 6.29 선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밑으로부터의 시민항쟁에 전두환 군부가 굴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황을 보면 전두환·노태우가 단순히 수동적인 행위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가 있다.
6월 10일 1차 범국민대회 이후 정국은 경찰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남은 것은 군을 충돌시켜 시위를 진압하거나 직선제 요구를 수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는 직선제 수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최근 세계 상황을 보더라도 군부대 출동과 충돌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6월 민주화운동이 군부대 충돌에 의한 유혈 사태가 아니라 직선제 수용이라는 정치적 타협으로 귀결된 것은 전두환 군부의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6.29 선언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증언이 엇갈린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뚜렷한 방증은 7월 1일 전두환의 노태우 건의를 수용하는 특별담화이다. 당시 노태우는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간선제하에서 민정당 후보로 선출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직선제를 관철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즉 6.29 선언은 그 자체로 완성될 수 없고 이를 정부·여당이 수용해야 완성되는 구조였다.
6.29 선언이 있은 지 불과 1~2일 만에 수용 담화가 열렸다는 것은 6.29 선언이 노태우의 단독작품이 아니라 전두환·노태우가 긴밀한 교감하에서 진행한 것임을 시사한다. 즉 전두환은 6.29 선언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6월 10일 노태우가 민정당 후보로 선출되고 같은 시간 이에 반대하는 1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이후 상황은 점차 경찰력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 6월 18일 2차 범국민대회를 전후하여 전두환 대통령이 군대 충돌을 지시했다가 중단하고 여러 갈래에서 직선제를 수용하자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논의들이 진행된다.
- 6월 26일 3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6.29 노태우가 직선제 수용을 건의한다. 7월 1일 전두환이 특별담화를 통해 이를 수용함으로써 6.29 선언이 완성된다.
6.29 선언 이후 한국 정치는 첫째. 정치에 군이 동원되어서는 안 되고 둘째. 헌법을 뛰어넘어 장기 집권을 꾀하는 일련의 시도는 인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전통이 수립된다. 이른바 87 체제의 핵심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6.29 선언은 전두환 군부의 항복이며 ‘속이구’에 불과하고, 노태우 정권은 여전히 타도해야 할 군부독재의 연장이며 90년 3당 합당은 민주화를 배신한 정치적 야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에 따르면 진정한 민주 정부는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6.29 선언이 일방적인 항복이 아니며 전두환·노태우 등 군부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후의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6.29 선언을 군부와 김영삼·김대중 씨의 타협으로 본다면 노태우 정권은 직선제로 들어선 정통성 있는 합법정부가 되고 90년 3당 합당 또한 직선제하에서 있을 수 있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합집산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주화의 역사 또한 김대중·노무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6월의 시위를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전두환-노태우 어느 무렵부터 쓰이게 되는 것이다.
전두환은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실제로 그랬다. 87년 6월을 수놓았던 거대한 시위는 6.29 선언 직후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6월 시위의 직접적인 연장선 하에서 전두환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거나 전두환을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87년 12월 치러질 선거를 통해 전두환 정권을 교체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은 88년 2월 정권교체 과정에서도 지속되었다.
상황이 돌변한 것은 1995년 11월 5.18 특별법이 제정되어 전두환·노태우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 무렵부터 정치적 타협 대신 대중의 힘을 중시하는 논리가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2000년대 인민주권을 앞세운 대통령 ‘탄핵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글/ 민경우 시민단체 길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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