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원투표, 왜 예상 뒤엎고 부결됐나 [정국 기상대]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5.05.11 06:10  수정 2025.05.11 18:25

새벽 1시에 선출 취소, 3~4시에 후보 등록

전당원투표의 성격을 '추인투표'로 바꿔놔

한덕수, 오후 3시반 기자회견…실기했다

'당원 39% 지지' 한동훈, '반대'에 힘 실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사진)가 10일 밤 한덕수 후보로의 후보 재선출이 안건이던 전당원투표가 부결되면서 기사회생,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위로 복귀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강제 단일화' 해서 한덕수 후보로 재선출하는 핵심 절차였던 전당원투표가 예상을 뒤엎고 부결됐다. 여론조사 흐름상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층 사이에서 한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줄곧 높게 나왔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김문수 후보 본인조차 전당원투표 부결은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는 10일 새벽에 있었던 후보 선출 취소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오전에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던 중, 참모들로부터 전당원투표 부결에 대한 기대가 나오자 "흑백 여론조사에서 '아니오'가 '예'를 이긴 적이 없다"며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다독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문수 후보 측과 한덕수 후보 측은 단일화 판을 깼다는 책임을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형식적으로만 협상을 이어가며, 서울남부지법에서의 가처분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가처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전당원투표에서 먼저 부결이 되면서 '강제 단일화'는 예상치 못했던 반전으로 마무리됐다.


전당원투표는 왜 부결됐을까. 정치권에서는 △10일 새벽의 소동으로 전당원투표의 성격이 바뀌어버렸다는 점 △한덕수 후보가 전당원투표 결과를 낙관하고 느긋하게 움직였다는 점 △캐스팅보트인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친한동훈)계의 움직임 등 세 가지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단일화' 명분은 "당원의 명령"이었는데
새벽 1시 선출 취소, 3~4시에 후보 등록
하루종일 TV 종편서 다루며 정당성 논란
"당원들 '나는 그런 명령 내린 적 없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은 10일 새벽 김문수 대선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한덕수 후보로 재선출하는 절차를 주도했으나, 전당원투표가 예상을 뒤엎고 부결로 나오는 바람에 자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밤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전당원투표의 성격이 '김문수보다 한덕수가 우리 당 대선 후보로 낫냐'가 아니라, 10일 새벽에 있었던 일련의 후보 교체 소동이 절차적으로 정당하냐, 이것을 인정할 것이냐 라는 '추인 투표'의 성격으로 바뀌어버렸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간 줄곧 '강제 단일화'의 명분으로 "당원의 명령"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당원 선거인단 투표와 국민여론조사까지 돌렸다. 여기에서 '후보 등록 전 단일화'가 압도적 다수로 나왔다는 이유로 지난 9일 밤 단일화 실무협상이 결렬되자 10일 새벽에 바로 '강제 단일화'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외견상 여러 무리수를 드러냈다. 새벽 1시에 김문수 후보 선출을 전격 취소하고, 곧이어 새로운 대선 후보 등록 신청을 받았다. 접수 시간은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 방식은 국회본청 현장접수였다.


접수를 위해 갖춰야 할 서류도 이력서·자기소개서·당적확인서·가족관계등록부·주민등록등초본·병적증명서·재산보유현황서·체납증명현황서·전과기록증명제출서·범죄경력회보서 등 32종에 달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비꼬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을 정도다.


이 소동이 정국 최대 화두로 부상하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TV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에서 이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문수 대신 한덕수를 우리 당의 후보로 내세우는데 찬성하느냐'가 아니라 '10일 새벽에 있었던 일련의 후보 교체 절차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로 전당원투표의 성격이 바뀌어버렸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단일화에 찬성한 것도 사실이고, 후보 등록일인 11일 전에 단일화 하는 것도 찬성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새벽 1시에 후보 선출을 취소하고, 새벽 3~4시 접수마저 "당원의 명령"으로 포장되는 것을 보고서는 경악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원들께서 '나는 그런 명령 내린 적이 없다'는 심정으로 반대표를 누르신 것 같다"고 추정했다.


새벽 소동, 비꼬는 게 유행될 정도로 난리
김문수, 오전 9시 40분에 '절차' 정조준
"모두 반대투표하자" 문자 쉼없이 돌아
한덕수 오후 3시 30분 기자회견은 '실기'


한덕수 대선 후보(사진)는 10일 새벽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전격 입당하며 새벽 3~4시에 진행됐던 후보 등록 절차에 단독으로 신청 접수해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럼에도 일련의 소동에 관한 입장 표명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처럼 새벽부터 난리가 났던 것을 고려하면 후보 지위를 빼앗긴 김문수 후보 측이 긴박하게 움직인 것과는 달리, 후보로 새로 옹립되는 입장이던 한덕수 후보 측은 지나치게 느긋하게 대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문수 후보는 이날 오전 9시 40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절차 문제를 정조준하고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김 후보는 "당원 동지 여러분, 밤새 안녕하셨느냐"고 물으며 "새벽 1시경 정당한 대선 후보의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 새벽 3시부터 단 1시간 만에 32건의 서류를 준비하게 해서 현장 접수를 강행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전부터 당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도 쉼없이 돌았다. 새벽에 있었던 일련의 소동을 "불법·부당한 대선 후보직 박탈"이라고 규정하며 "모두 반대 투표하자"는 문자 메시지가 계속해서 당원들의 휴대전화로 파고들었다.


반면 이날 새벽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한덕수 후보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새벽에 입당하면서 블로그에 "당원 동지 여러분의 환영에 깊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린 것 말고는 이렇다할 메시지가 없었다.


한 후보는 오후 2시에 보도전문채널에 출연해 새벽의 소동에 대해 처음으로 "어떤 사정이 있었든 누가 잘못했든 국민께 불편을 드린 점은 송구하다"고 했으며, 이어 오후 3시 30분에야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기자회견에서야 한 후보는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 이유 여하를 떠나 국민들께 당원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이런 뉴스를 다시 보시는 일이 없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오전부터 전당원투표가 돌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실기(失期)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 모두가 전당원투표 부결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한덕수 후보 측이 결과를 낙관하고 느긋하게 움직였던 것을 탓할 수는 없다"면서도 "평생 정치를 해온 홍준표 전 대표였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2차 예비경선 직전의 홍 전 대표의 메시지를 보면 정치인의 동물적 정무 감각으로 '이것 심상치 않다'고 감지했다는 점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며 "한덕수 후보도 평생 관료가 아니라 선거 경험을 많이 하면서 선출직을 지냈더라면 전당원투표와 관련해 어떤 동물적 감각을 받고 발빠르게 메시지를 냈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한동훈 "친윤들이 제멋대로…" 반대 선언
조경태 "기습공고 날치기" 긴급 기자회견
배현진, 새벽에 깨어있으며 실시간 질타
39% 혁신계와 강성 우파 일시연대 '부결'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사진 왼쪽)는 10일 새벽 당 지도부에 의해 김문수 대선 후보 선출이 취소되고 새로운 대선 후보 지명 절차가 시작되자, 앞장서서 반대에 힘을 실었다. 불과 일주일 전인 5·3 전당대회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38.8%를 득표했던 한 전 대표의 반대는 전당원투표 부결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마지막으로 국민의힘 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 또한 전당원투표 부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김문수 후보 선출 취소 사태를 비롯한 이날 새벽의 일련의 소동과 관련해 "나는 김문수 후보와 생각이 크게 다른 부분들이 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에 대한 김 후보의 생각에 반대한다"면서도 "친윤들이 제멋대로 김문수 후보를 끌어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대하겠다. 김문수 후보가 우리 당의 적법한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


'친한의 좌장'이라 불리는 6선 중진 조경태 의원은 새벽에 깨어있으면서 계속해서 "이 한밤 중에 대선 후보 선출 취소 공고를 냈다. 이는 지극히 비상식적"이라고 실시간 규탄을 했다. 이어 오후 2시에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새벽 사태를 "다른 후보들의 입후보를 차단하고 기습 공고를 통해 단독 등록을 유도한 권력 남용이자 법적 정당성이 결여된 날치기"라고 규정했다.


친한계의 '빅 스피커'인 배현진 의원도 새벽 내내 깨어있으면서 "경선을 통해 최종 선출된 후보를 모두 잠든 이 새벽에 기습 취소시키고 03시~04시 ,단 1시간만에 어마무시한 양의 서류들을 준비해 국회에서 새 후보로 등록하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누구를 위함이냐" "심야 빈집털이처럼 집에 몰래 들이는 방식"이라고 실시간으로 질타했다.


이에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대선 후보 변경 지명 관련 기자회견을 한 뒤, 절차와 관련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는 질문에 "한동훈 후보를 지지했던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일제히 제기하더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는 당원 선거인단에서 61.3%, 한동훈 전 대표는 38.8%를 득표했다.


김문수 후보의 표 61.3% 중에서는 이른바 '김덕수' '을지문덕' 컨셉에 따라 한덕수 후보를 지지하는 표도 상당히 있었겠지만, 김 후보 자체를 좋아하는 강성 우파 성향의 표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적어도 20%는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38.8%를 득표했던 한동훈 전 대표가 이번 전당원투표에서 '반대'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생각이 전혀 다른 당내 혁신계와 강성 우파가 일시적으로 연대하면서 '다수연합'이 형성된 것"이라며 "이것이 결국 예상을 뒤엎은 전당원투표 부결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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