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린 삼성-2] 반도체 비전 2030 리부트…조직 문화도 타깃 고객도 다 바꿔야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4.10.23 14:00  수정 2024.10.23 14:00

지나친 성과주의·조급함이 HBM·파운드리 수율 저조로 이어져

파운드리 '을의 정신' 재무장해 완전히 새로운 고객군 창출해야

수십 년간 이어온 메모리 1등 DNA, 글로벌 위상 이어질 것 전망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삼성 위기론’이 경제‧산업계를 휩쓸고 있다. 삼성의 캐시카우이자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는 기술 경쟁력 약화와 그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스마트폰‧가전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발휘하지 못한다. 1등 삼성의 DNA가 희석되고 조직 문화는 나태해졌다는 외부의 지적과 내부의 자기반성이 잇따른다. 위기를 더 큰 도약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재용 회장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 구축과 그를 뒷받침할 그룹 컨트롤타워의 부활, 핵심 사업인 반도체 경쟁력 복원, 6G‧바이오‧전장 등 신성장 동력 육성 등 전방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편집자 주]


"삼성 반도체 위기는 복합적이다. 한 두 군데 고쳐 해결될 게 아니다."


삼성 반도체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이다. 외국계 IB(투자은행) 맥쿼리는 삼성을 '병약한 반도체 거인(Sickly Semicon Giant)'이라 평가절하했고, 산업부 장관을 지낸 주요 인사들마저 삼성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이 신성장분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뿐 아니라 수십 년간 왕좌 자리를 이어온 메모리 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순이익을 내고, 메모리 2등과 3등 업체인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이 실적 우상향 흐름을 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반도체 겨울론'은 삼성에게 유독 크게 다가온다.


사실 삼성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빗발치는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수십 년간 메모리 1위 기업이 한 순간에 몰락할 것처럼 산업계가 떠드는 것은 과도한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시장 패러다임이 PC-모바일-CPU(중앙처리장치)에서 AI-GPU(그래픽처리장치)로 변화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를 지탱해온 주력 시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AI칩 수요가 빗발쳤지만 HBM(고대역폭메모리) 적기 양산을 놓친 탓에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 간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찌감치 엔비디아-TSMC와의 삼각 연대로 HBM 수혜를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올해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와 대조적이다.


파운드리의 경우 TSMC를 잡겠다면서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기술을 호기롭게 내세웠지만 그뿐이다. 애플, 미디어텍과 같은 빅테크들은 여전히 TSMC에 물량을 주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 반도체 공장 가동을 2년 뒤인 2026년으로 늦춘 것도 고객사 확보 문제와 무관치 않다.


'AI 시대를 간과했다, 빠르게 경쟁사를 따라잡겠다'며 다시 심기일전하면 다행이겠으나 아직까지는 뚜렷한 변화 조짐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는 지나친 성과주의, 과도한 목표 설정, 전략 부재가 맞물리면서 조직 내 시너지가 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4년 2분기 글로벌 톱10 파운드리 매출ⓒ트렌드포스
지나친 성과주의·조급함이 HBM·파운드리 수율 저조 원인으로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신제품 하나를 위해 개발-제조를 아우르며 협력했던 분위기는 과거형이 된 지 오래"라며 "지나친 성과주의로 조직 간 벽이 생겼고, 문제가 생기면 '네 탓 론'을 펼치고 있다. 이러니 제품 수율(양품 비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어 "조직 역동성이 떨어지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실망하고 나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삼성전자가 최근 국내외 사업장 인력 감축을 하고 있다는 데, 사실이라면 인재 보다는 원가절감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등 기업 답게 AI칩과 파운드리에서도 빠르게 도약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오히려 기술·제품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무리하게 반도체 개발-제조를 밀어부친 결과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외면만 받고 있을 뿐 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HBM과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10억분의 1m)다.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말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 양산을 발표했다. TSMC, 인텔 등 경쟁사를 제치고 가장 먼저 선보인 기술이나 실제 성과는 미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급해도 양산성을 고려한 기술 개발이 단계적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개발과 양산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이를 상쇄하는 전략 역시 부재해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삼성 반도체 위기론을 '론'으로 그치게 하려면 결국 제대로 된 기술 개발, 조직 문화 개선, 새로운 고객사 창출만이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것은 전영현 DS(반도체)부문장(부회장)이 최근 발표한 반성문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최근 전 부회장은 메시지를 내고 ▲근원적 기술 경쟁력 복원 ▲미래 준비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했다.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삼성전자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기술은 양산성을 고려한 단계별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둬야 한다. 파운드리의 경우 메모리와 달리 수주 중심이다 보니 철저한 '을의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모두 아우르는 IDM(종합반도체업체)으로서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설계)를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 삼성"이라며 "현 체제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점을 어필해야 경쟁사와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파운드리 '을의 정신' 재무장해 완전히 새로운 고객군 창출해야

특히 파운드리의 경우 TSMC 주력 고객을 빼앗아오겠다는 접근 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하겠다는 '신생태계 구축' 전략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를 능가하는 파운드리 기술을 당장 보여줄 수 없다면, 자사용 AI 가속기를 만들려고 하는 잠재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구글, 메타, 오픈AI 등은 자사용 AI 생태계 구축을 준비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라며 "새 고객이 절실한 삼성과 자사 입맛에 맞춘 제조사가 필요한 AI 기업 양측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했다.


HBM 등 일부 AI 제품은 고전하고는 있지만 AI 라인업 전체적으로 볼 때는 삼성이 결코 뒤처진 것이 아니며,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 위상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해왔으며 AI 가속기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90%도 제공하고 있으니 AI 시대 흐름을 놓친 것이 아니다"라며 "CXL(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등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메모리 제품들이다. 이 시장도 우리가 독점하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증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XL은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에서 CPU 및 GPU, 메모리 등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대용량, 초고속 연산을 지원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다. 기존 메모리 모듈에 CXL을 적용하면 용량을 10배 이상 확장할 수 있다.PIM은 메모리 반도체 내에 프로세서 연산기를 집적해 연산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 차세대 반도체로 GPU와 CPU가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불러와 연산하는 폰노이만 구조와 달리 메모리 내부에서 연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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