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극장으로⑦] 대구 남구 예전아트홀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대구 소극장 중 최고 시설…30년 역사의 예전아트홀
대구 소극장 중심 연극은 80년대부터 시작했다. 당시 소극장 분도, 누리 예술극장, 맥향공간, 대백소극장, 우리무대 소극장, 문화장터 처용 등이 연달아 문을 열었다. 다만 대다수 소극장이 2, 3년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1990년대 본격적인 소극장 연극 시대가 열렸다.
현재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자리잡은 예전아트홀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이다. 1994년 중구 공평동 인근 음악감상실 지하에서 출발한 예전소극장은, 1999년 대봉동으로 이전하면서 예전아트홀로 개칭했다. 하지만 지하철이 개통되고, 입지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높아졌다. 그러던 찰나 계명대가 성서로 이전하면서 2009년 대명공연거리에 다시 터를 잡았다.
예전아트홀이 들어서기 전 해당 지역에 소극장은 2~3개에 불과했다. 극장을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아트홀 김태석 대표는 “옮기는 비용만 해도 이전 소극장 공간 10년 동안을 쓸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과감히 공연장을 옮기고자 했던 건, 연극에 몸담은 후배들과 연극 중심의 ‘대학로 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포부에서 비롯됐다. 교육과 예술, 트렌드에 밝은 해당 지역의 특성을 내다본 김 대표의 선구안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처음엔 시큰둥했다”던 지자체도 해당 지역에서 소극장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이곳을 대명공연거리로 구획화하고 예술센터도 건립했다. 현재는 해당 지역에 예전아트홀을 필두로 총 15개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예전아트홀은 총 68평 규모의 공연장에 80석의 객석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객석이 더 넓은 공연장들과 달리, 작품에 중심을 둔 공연장답게 관객석을 줄이고 무대를 넓혀 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무대 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 김 대표의 소신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극장 위 1층엔 공연장과 같은 규모의 관객 대기실 및 휴게실을 마련해 관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건물 옆편엔 창고 겸 물품보관실, 무대제작소가 있다. 좁은 통로에 차곡차곡 수납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지나쳐 들어가면 무대 세트에 활용했던 목자재들과 대도구들이 가득하다. 김 대표는 “예전아트홀의 30년 역사가 이 안에 있다”고 말한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죽어도 연극으로 죽고, 살아도 연극으로 살겠다”
예전아트홀은 해외 초청 공연 및 대구연극제 대상, 최우수연기상, 무대예술상 등을 수상하면서 매년 걸출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50%는 극단 예전의 작품이다. 극단 예전 역시 김 대표가 이끌던 극단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펼칠 ‘극단 전용 극장’의 필요성을 느낀 김 대표가 열정 하나로 지어낸 것이 예전아트홀이다.
“막상 공연을 하려고 하니 극장이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군대에서 신발에 발을 맞추듯이 공연장에 배우와 작품을 맞추는 식이었죠. 말이 공연장이지 사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강당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작품을 올리려면 우리 극단만의 극장을 가져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극장을 짓기 위해서 가장 먼저 따라붙는 건 금전적 문제다. 김 대표는 대학시절 무대 세트를 만들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돈으로 3억원을 벌어들이곤 소위 ‘잘 나가던’ 인테리어 사업은 접고, 곧바로 예전아트홀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사업과 극장을 겸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죽어도 연극으로 죽고, 살아도 연극으로 살겠다”는 김 대표의 연극에 대한 고집이었다.
“전업을 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렸죠. 아니나다를까 6개월이 지나니까 돈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마침 인테리어 제안이 와서 또 몇 천만원 벌어와서 극장을 운영했습니다. 또 1년 후에 통장에 돈이 ‘0원’이되니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직원들에게 말을 했는데, 아무도 극장을 떠나질 않는 겁니다. 심지어 빚쟁이가 들어와서 불꺼진 객석 뒤에 숨죽이고 있기도 했을 정도였는데도 말이죠. 그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제 열정에 감동을 받았는지 후원자들도 많았고요.”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여전히 극장은 적자”라는 김 대표는 그럼에도 상업적인 공연보다 꾸준히 작품성 있는 무대를 올리고 있다. 빚쟁이에 쫓기면서도 “단 한 번도 극장을 한 것에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대 세트를 올리고, 작품을 쓴다. 또 6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배우로서 무대에 관객과 호흡한다.
“사실 나이 먹으니까 힘이 달리긴 합니다(웃음). 일단은 힘 닿는데까진 해보자는 마음인데, 정말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면 문을 닫아야죠. 그래도 책임이 큽니다. 예전아트홀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서의 기준, 소극장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믿어요.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거죠. 동시에 지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극장이길 바랍니다. 전국 어느 민간 소극장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좋은 연극을 만드는 극장으로 비춰지길.”
앞으로도 예전아트홀의 목표는 ‘좋은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가족’ 문제를 다룬 작품성 있는 연극으로 시대를 비추고, 관객들에게 문제 의식을 심어주고 함께 토론해 나가는 것이다. 예전아트홀에서 공연된 ‘야 야. 예 어무이’ ‘마지막 편지’ 그리고 오는 9월 25일 개막하는 ‘어서오게 김서방’ 등이 모두 이 같은 목표를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고령화 시대에 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가족으로부터 출발하는데 가족이 파괴되고 있는 지금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느껴요. 이것을 연극적으로 풀어서 문제의식을 깨우고, 관객들과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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