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흐름 발맞춰 금융위 이달 중 초안 발표
중소형사 부담 증대...정보제공·비용지원 시급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빠르게 적용하려는 금융당국의 속도전이 우려스럽다.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만만치 않고 특히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의 공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ESG 공시 기준 초안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당초 오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ESG 공시 의무를 부여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등 주요국 공시 의무화 연기와 국내 기업 입장 등을 반영해 2026년 이후로 늦춘 상태다. 2030년부터는 모든 상장사까지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주요국들이 ESG 공시 기준과 시기를 확정한 만큼, 유럽 등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대기업들의 ESG 공시 도입은 늦출 수 없는 선결 과제인 것이 사실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ESG 공시와 관련해 스코프(Scope) 1, 2(기업의 직접 배출·간접 배출)는 물론, 스코프3(기타 간접배출)까지 공개 의무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수출 중심의 국내 대기업들은 관련 압박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대기업들과 비교해 중견·중소형 상장사들의 대응이 크게 미흡하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ESG 공시 준수와 ESG 기업 활동 개선을 위한 비용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대다수의 기업들은 외부 전문기관을 활용해 ESG 공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은 각 사당 많게는 수억원대에 달한다.
더군다나 스코프3 공시는 대기업조차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중견·중소기업들도 ESG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사실상 계획을 세우기조차 막연한 구조적 한계에 처한 셈이다.
이에 정부의 ESG 제도 구축이 속도를 낼수록 중소형 상장사들에게는 따라가기 버거운 과제가 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당장의 생존조차 확신하기 힘든 여건에서 지속 성장을 위한 역량을 채우라는 요구는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투입 비용과 노력 대비 경제적 이득은 낮고 규제 부담만 키우는 상황에서 이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물론 ESG 경영은 전 세계적으로 가야만 하는 길이고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다. ESG 공시 의무화에서 기업들이 겪을 진통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같은 강도를 요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에게 큰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기업의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미래 가치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이때 ESG가 오히려 기업들의 다양성을 해치고 양극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막아야 한다. 당국은 기업간 특성을 반영한 ESG 공시 기준을 세우고 중소기업들이 ESG 공시 정보를 체득할 수 있도록 자료 제공과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ESG 공시가 무작정 의무화를 서두르기보다는 모두를 위한 소통형 정책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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