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생계비대출과 포퓰리즘 [기자수첩-금융증권]

고정삼 기자 (jsk@dailian.co.kr)

입력 2024.01.22 07:00  수정 2024.01.22 07:00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소액생계비대출의 첫 만기가 오는 3월 도래한다. 신용 평점 하위 20%, 연 소득 3500만원 이하 성인에게 연 15.9% 금리로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정책상품이다.


출시 이후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수요가 많았는데 이제는 연체가 문제라고 한다. 일례로 20대 청년이 50여만원을 빌리고선 매달 이자 8000원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그만큼 삶에 허덕이는 이들이 많다는 해석과 몇천원을 푼돈으로 여기고 상환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두 달 남짓 남겨둔 만기일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그보다 이 정책이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한 온투업 대표의 아이디어가 결정적 역할을 하며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삶의 맨 밑단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정책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에 전하면서다.


그에 따르면 많은 저신용자가 당장 100만~200만원이 없어 벼랑 끝에 내몰린다고 한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중은행은 고사하고 2금융권의 각종 요구와 심사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결국 대부업(최고금리 20%)을 이용해 비싼 값을 치르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소액 대출에 대한 수요가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이들이 얄팍한 시각을 보인 건 밑단의 삶과는 거리가 먼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환경에만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편향적 사고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들이 서민 지원이라며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의 뻔한 정책만 반복해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관행처럼 발표되는 선심성 정책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부가 금융권을 압박해 얻어낸 대출 이자 환급부터 전기요금·건강보험료 감면, 대주주 양도세 완화, ISA 세제 혜택 확대 등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생이란 구호는 있는데 본질은 사라진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소액생계비대출이 담고 있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정부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이전과는 다른 층위의 민생을 살폈기 때문이다. 값진 성과임과 동시에 앞으로도 정책은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만하다.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을 살피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을 공무(公務)의 기본으로 여겼으면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발 이후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의 파고 속 누군가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선거철만 되면 날리는 공수표가 아니라 평소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놨다고 자부한다면, 뒤늦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이번 총선 표에 민심이 자연스럽게 반영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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