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 되게 좋아해"…마약 투약 혐의와 무관한 녹취록, 유튜브·KBS 통해 무분별하게 공개
전문가 "흥미위주 사생활 보도, 2차 가해…신상털기식의 자극적이고 선정적 유포, 죽음에 책임"
"이선균-유흥업소 실장 간 불륜 콘텐츠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행태 등이 종합적으로 빚어낸 참사"
"법원 판례상 엄연한 매체 '유튜브', 법적 책임…통신비밀보호법 및 사실적시명예훼손죄 적용 가능"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씨가 지난 27일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는 온라인과 방송에서의 사생활 정보 유포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오롯이 수익 만을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무차별 살포했던 유튜버들과 이를 여과없이 경쟁적으로 보도했던 언론들에 의해 이씨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약과 사생활은 별개…하지만 사생활 녹취록 폭로되며 심적 압박 가중
이씨는 지난 10월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경찰 조사에 성실히 응해왔다. 하지만 일부 유튜브 채널 등에서 수사 중인 마약 사건과 별개로 이씨와 관련된 사생활이 연일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지난달 21일 이씨가 드나들었다는 강남의 회원제 유흥업소 실장 김모(29)씨의 얼굴, 나이, 실명 등 인적사항을 공개했다. 이후 같은달 24일 KBS의 단독 보도에는 이씨가 유흥업소 실장 김씨를 향해 "나도 너 되게 좋아해 그거 알아"라고 말하는 마약 투약 혐의와 무관한 음성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씨는 숨지기 하루 전날인 26일에도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다"며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한 억울함을 호소해왔으나 이날에도 유튜브 채널에 '충격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이씨가 유흥업소 실장 김씨와 나눈 전체 녹취록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선균씨가 마약 투약 혐의에 연루됐느냐 문제보다 개인 사생활에 대한 흥미위주의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한 보도는 2차 가해라고 본다"며 "유흥업소 실장의 녹취록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사실 녹취록이 공개됨으로써 이씨의 가족들이 상처를 더 받지 않았나 싶다. 위약금과 같은 경제적인 부분 보다는 가족들에게 상처준 데 대한 미안함이나 배우로서 신뢰감이 무너진 점이 이씨의 죽음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튜버들이 신상털기식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생활 정보를 유포한 것은 이씨의 죽음에 분명 영향을 미쳤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유튜버들, 수익 추구하며 온갖 표현의 자유 누리지만 책임은 안져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정도로 그쳤는데 지금은 유튜버와 언론이 경쟁적으로 당사자의 사생활까지 인터넷상에서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이선균이라는 인물이 조회수를 불러오고 그게 돈이 되기 때문에 유튜버들이 집요하게 달라붙어 소비자들의 시간을 붙잡는 아이템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산해낸 것"고 강조했다.
또 "이선균 씨와 유흥업소 실장 간 불륜 관계를 파고드는 이런 콘텐츠를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행태 등이 종합적으로 빚어낸 참사로 보인다"며 "소비자들의 자정작용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종민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유럽에서는 시청자 미디어법이 새로 만들어졌는데 유튜브가 언론이 아니라고 볼 경우 내용 규제를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될 것이냐는 고민이 우리 사회에 있다"며 "유튜버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본인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다 공개해버리니까 언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표현의 자유는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생활 보호를 해주는 방향으로, 제재가 강화되는 시스템이 가야 한다"고 전했다.
◇유튜브, 엄연한 매체…무분별 폭로 유튜버들에 대해 엄격한 법적 책임 물어야
무분별한 폭로를 일삼는 유튜버들에 대한 법적 재재 논의도 진전을 이루고 있다. 이명규 변호사(법무법인 파라클레투스)는 "법원 판례를 봐도 유튜브는 몇 년 전부터 엄연한 '매체'로서 인정받고 있어 충분히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무분별한 폭로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법적 책임 소재를 가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유흥업소 실장과 이선균씨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유튜버가 이선균씨의 동의를 받고 공개했을 리는 없으니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벌금형 없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정도로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통화녹취를 공개함으로써 얻어지는 사회적 공익이 매우 크다는 것이 명백하다면 참작사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선균씨 녹취록 같은 경우에는 공익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통신비밀보호법 뿐만 아니라 이선균씨의 사생활을 폭로해 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한 사실적시명예훼손죄도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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