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강물과 석별의 정, 어느 것이 길고 짧은가?

입력 2008.10.23 10:08  수정

<음주고사> 이백(3)

우정(友情)이란 단어는 어감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사람이 처세의 이치를 가장 빨리 배워서 마음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 친구간의 사귐일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친구간의 사귐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이란 계속 여일(如一)하기가 어렵기에 순수한 우정을 지켜내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백아절현(伯牙絶絃),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포지교(管鮑之交),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문경지교(刎頸之交),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水魚之交) 외에 단금지교(斷金之交), 망년지교(忘年之交) 등등 아름다운 우정이 천고에 향기를 뿜고, 우리는 이에 대해 찬탄하고 동경하는 것이다.

이백의 경우를 보면, 그의 호방하고 낭만적인 성격으로 인해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가 참으로 어려운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그러나 한평생 천하를 떠돌며 생활한 그가 친구를 사귀는 특출난 점이 없었다면 그러한 생활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물론 그에게는 현종의 총애를 받은 시를 짓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유했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린(李璘)의 난으로 인해 옥에 갇혔을 때, 곽자의(郭子儀) 등이 성심껏 그를 구원하여 살려낸 것이나, 오균(吳筠),하지장(賀知章)이 그를 조정에 천거한 것이나, 공소부(孔巢父),한준(韓準),배정(裴政),장숙명(張叔明),도면(陶沔) 등과 함께 조래산(徂徠山)의 육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던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필자는 지금 이백이 지닌 그 특별한 점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이백과 함께 어울렸던 조래산의 죽계육일이 우정을 거론할만한 모임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지만 음주하며 시를 짓고 읊조리는 일종의 문인모임인 죽계육일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즐겼다는 것 자체가 ‘문인은 서로를 경시한다(文人相輕)’는 문인특유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백의 재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거니와 그의 친교 또한 과히 상식 이하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친구간의 사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어렵다.

공자는 ≪논어≫의 첫 장에서 군자의 덕목 중 두 번째로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사의 친교가 즐거움만으로 되던가? 오랜 세월을 지나다보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정이 조금씩 삐걱거리며 소원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곤 자책하거나 혹은 친구를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귐에 있어, “사귀기 전에는 마땅히 잘 살펴봐야 하고, 사귄 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交友之先宜察, 交友之後宜信.)”(≪醉古堂劍掃≫11장75)고 했지만, 어디 이것 또한 쉬운 일이던가?

이백도 화려했던 장안생활을 청산하고 천하를 떠돌 때 인간의 염량세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동문을 나선 뒤 아쉬운 정을 가지고 한림원의 여러 公들게 부침(一作出東門後書懷留别翰林諸公)이란 부제가 붙은 <동무음(東武吟)>에서, 황제에게 인정받아, 궁정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언급하고 난 뒤, “하루아침에 금마문을 떠나니, 정처없이 날리는 쑥대의 신세가 되었어라, 찾아오는 빈객들은 날로 적어지고, 옥술독도 이미 다 비었구나(一朝去金馬, 飄落成飛蓬. 賓客日疏散, 玉樽亦已空.)”라고 하고서, 마지막에 자신은 漢나라 때의 신선 黃綺翁을 찾아 떠난다고 밝혔다.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컸을 것이지만 문인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인해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의 하루 일과나 창작생활이 일반인의 일상과 상반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이백은 염량세태나 우정에 대해 다시금 통감하게 된 듯 하다.

<箜篌謠>를 보면,
攀天莫登龍(반천막등룡), 하늘에 올라도 용에 오르지 말고,
走山莫騎虎(주산막기호). 산을 달려도 호랑이는 타지 마라.
貴賤結交心不移(귀천결교심불이), 귀하고 천한 이가 서로 친구되어 마음변치 않는 예는,
唯有嚴陵及光武(유유엄릉급광무). 오직 엄릉과 광무제 뿐이라네.
周公稱大聖(주공칭대성), 주공이 비록 큰 성인으로 칭송될지라도,
管蔡寧相容(관채녕상용). 관숙선(管叔鮮)과 채숙도(蔡叔度)를 어찌 용납할 수 있었던가?
漢謠一斗粟(한요일두속), 한나라 노래에, 漢 문제(文帝)는 한말의 곡식이라도,
不與淮南舂(불여회남용). 회남왕(厲王)과는 찧지 않는다 하였네.
兄弟尚路人(형제상로인), 형제도 오히려 남이 되는 세상,
吾心安所從(오심안소종). 내 마음 어찌 따를 곳이 있겠는가?
他人方寸間(타인방촌간), 남의 작은 속마음은,
山海幾千重(산해기천중). 산과 바다처럼 몇 천 겹이던가?
輕言托朋友(경언탁붕우), 친구에게 속마음 경솔히 말했다가,
對面九疑峰(대면구의봉). 구의봉 같은 것과 마주했노라.
開花必早落(개화필조락), 일찍 핀 꽃은 반드시 일찍 지나니,
桃李不如松(도리불여송). 복사꽃과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다.
管鲍久已死(관포구이사), 관중과 포숙아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
何人繼其踪(하인계기종). 어느 누가 그들의 발자취를 이어 가리오.
라고 하였다.

어떠한 사유로 마음에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지만 첫구절을 보면 황제의 총애를 받고서 무례하게 행동한 사실로 인하여 내침을 당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여간에 진정한 우정에 대해 회의를 지녔음에도 이백은 천성적으로 친구를 좋아하고 또한 한번 사귄 친구는 진정으로 믿었던 것 같다. 친구간의 우정은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오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한 마음으로는 만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두 마음으로는 한 명의 친구조차 사귈 수 없는 것!(一心可以交萬友, 二心不可以交一友.)”(≪醉古堂劍掃≫11장6)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백의 친구사귀는 모습이 이러한 듯 하다. <贈孟浩然>을 보면, “높은 산을 어찌 우러러 볼까, 다만 맑은 향기나는 절개에 절할 뿐이리.(高山安可仰, 徒此揖淸芬.)”라고 하여, 맹호연이란 인물에 대해 과찬이라고 할 정도로 칭송하였다.

그런데 맹호연을 전송하며 지은 <送孟浩然之廣陵>보면,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친구는 서쪽으로 황학루와 작별하고,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꽃이 흐드러지게 핀 3월에 양주로 내려가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단배의 아득한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오직 장강만이 하늘 끝으로 흐르네.

라고 하였는데, 시의 이면에는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는 이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로써 이백이 말로만 친구를 과찬하지 않았으며, 얼마나 친구를 진정으로 대하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 뿐만 아니라 사귀는 친구도 가졌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듯 하는데, <贈汪倫>이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李白乘舟將欲行(이백승주장욕행), 이백이 배에 올라 떠나려 하는데,
忽聞岸上踏歌聲(홀문안상답가성). 갑자기 언덕 위에서 송별의 노랫소리 들리네.
桃花潭水深千尺(도화담수심천척), 도화담의 물이 천척이나 깊다해도,
不及汪倫送我情(불급왕륜송아정). 나를 전송하는 왕륜의 마음에 미치랴!

바로 이백은 자신이 친구를 진정으로 대했듯이 친구의 진정을 충분히 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옛 ‘사귄 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는 사귐의 철칙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백은 평생 천하를 떠돌면서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그렇기에 증별시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與謝良輔游涇川陵巖寺>,<宴陶家亭子>,<在水軍宴韋司馬樓船觀妓>,<憶舊遊寄譙郡元參軍>,<淮海對雪贈傅靄>,<贈徐安宜>,<贈任城盧主簿>,<早秋贈裴十七仲堪>,<贈范金卿>(其一,其二),<贈瑕丘王少府>,<贈丹陽橫山周處士惟長>,<玉眞公主別館苦雨贈衛尉張卿二首>,<贈韋秘書子春>,<贈韋侍御黃裳>(其一,其二),<贈薛校書>,<贈何七判官昌浩>,<讀諸葛武侯傳書懷贈長安崔少府叔封昆季>,<贈郭將軍>,<賀去溫泉後贈楊山人>,<金陵白下亭留別>,<別東林寺僧>,<竄夜郞於烏江留別宗十六>,<留別龔處士>,<贈別鄭判官>,<將游衡岳迂漢陽雙松亭留別族弟浮屠談皓>,<留別賈舍人至二首>,<別韋少府>,<別山僧>,<贈別王山人歸布山>,<江夏別宋之悌>,<南陽送客>,<送張舍人之江東>,<送當塗趙少府赴長蘆>,<送友人尋越中山水>,<送友人游梅湖>,<送崔十二游天竺寺> 등등이 있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모두 진정으로 사귀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렇게 각종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백이 생각 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점을 지녔을 것으로 사료된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에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괜찮은 인생인데, 자신의 주변에 늘 사람이 끓게 되는 것은 얼마나 괜찮은 삶인가!

그의 증별시를 보면 많은 연회에 참석하는 모습, 이별의 아쉬움, 친구가 보낸 선물로 통해 친구를 더욱 간절하게 생각하는 모습, 명승지에 도착하여 그 지역과 관련된 친구에 대한 그리움․그 지역과 얽힌 옛날의 고사 등의 내용이 나타난다.

이백이 술마시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이 갑자기 느끼는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유감이다. 어느날 문득 귀밑머리가 하얀 것을 발견하거나 추운날 양치질할 때 이가 시린 것을 느끼게 될 때, 세월의 빠름과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해 근심하게 된다.

그의 <추포가(秋浦歌)>17수를 보면, 시름으로 추포의 나그네가 되어(愁作秋浦客)<추포가>(6)), 청계(淸溪)의 물소리가 창자를 끊는데, 떠나려고 하나 떠나지 못하고, 잠시 논다는 것이 이토록 오래 되었다(青溪非隴水, 翻作斷腸流. 欲去不得去, 薄游成久游.)<추포가>(2)는 상황이 되었으니, 나이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그의 가슴을 짓눌렀겠는가? 그중 15수를 보면,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백발은 길이가 삼천 발,
緣愁似個長(연수사개장). 근심 때문에 이렇게 자랐다.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알 수 없구나, 맑은 거울 속 나의 백발은,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어느 곳에서 서리를 얻어왔나.

라고 했으니, 어찌 술없이 이러한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對酒>에서,

勸君莫拒杯(권군막거배),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잔을 거절하지 마소,
春風笑人来(춘풍소인래). 봄바람이 비웃는다오.
桃李如舊識(도리여구식), 복숭아와 살구나무는 친구처럼,
傾花向我開(경화향아개). 꽃을 기울어 나를 향해 피네.
流鶯啼碧樹(유앵제벽수), 떠돌던 앵무새는 푸른 나무 위에서 울고,
明月窺金罍(명월규금뢰). 밝은 달은 황금술잔을 비춘다.
昨日朱顔子(작일주안자), 어제는 붉은 빛의 젊은 얼굴이,
今日白髮催(금일백발최). 오늘은 백발을 재촉한다.
棘生石虎殿(극생석호전), 대추나무 황폐해진 石虎殿에 자라고,
鹿走姑蘇臺(녹주고소대). 사슴은 황폐해진 姑蘇臺를 뛰논다.
自古帝王宅(자고제왕택),예로부터 제왕의 집,
城闕閉黃埃(성궐폐황애). 궁궐이 누런 티끌로 뒤덮혔다.
君若不飮酒(군약불음주). 그대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昔人安在哉(석인안재재). 옛 사람이 어찌 살아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술을 권하는 핑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생무상함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더 바랄 것이 없던 황제의 궁궐조차 지금은 대추나무같은 잡초가 자라고, 사슴이 뛰어노는 황폐한 곳으로 변한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가릴 것이 뭐가 있더란 말인가? 이백이야 술을 한번 마시면 ‘연거푸 술 백 병을 마셔야 하고’,‘하루에 삼백잔씩 마셔야 했는데,’

중국의 속담에 ‘술이 친구를 만나게 되면 천 잔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는 말이 있다. 그 넓은 중국의 땅덩어리에서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영영 이별할 지도 모를 일이니, 그동안에 쌓였던 가슴 속의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 몇날 며칠을 밤새워 부족할 것이다.

그의 <對酒行>와 <金陵鳳凰臺置酒>를 보자.

<對酒行>
松子栖金華(송자서금화), 赤松子는 金華山으로 들어갔고,
安期入蓬海(안기입봉해). 安期는 동해 바다 속 蓬萊山으로 들어갔네.
此人古之仙(차인고지선), 이 사람들은 옛날의 신선이지만,
羽化竟何在(우화경하재). 신선되어 결국 어디에 있는가?
浮生速流電(부생속유전), 뜬구름같은 인생 번개처럼 빨라,
倏忽變光彩(숙홀변광채). 갑자기 광채로 변하네.
天地无凋換(천지무조환), 천지는 시들어서 바뀌지 않지만,
容顔有遷改(용안유천개). 얼굴은 바뀌는구나.
對酒不肯飮(대주불긍음), 술을 대하고 마시지 않고자 하면서,
含情欲誰待(함정욕수대). 정을 품고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金陵鳳凰臺置酒>
置酒延落景(치주연락경), 해거름 경치에 술자리를 펼치니,
金陵鳳凰臺(금릉봉황대). 금릉의 봉황대라.
長波寫萬古(장파사만고), 긴긴 파도는 옛 일을 써내고,
心與雲俱開(심여운구개). 마음과 구름이 모두 활짝 펴진다.
借問往昔時(차문왕석시), 옛날을 물어보노니,
鳳凰爲誰來(봉황위수래). 봉황은 누굴 위해 왔는고?
鳳凰去已久(봉황거이구), 봉황은 떠난 지 이미 오래인데,
正當今日回(정당금일회). 바로 오늘 돌아왔구나.
明君越羲軒(명군월희헌), 밝은 임군은 복희씨와 軒轅氏보다 뛰어나고,
天老坐三臺(천로좌삼대). 천제가 三臺에 앉았어도,
豪士無所用(호사무소용), 호걸은 쓰이지 않더라.
彈弦醉金罍(탄현취금뢰). 거문고를 연주하고 금술잔에 취하네.
東風吹山花(동풍취산화), 동풍이 산위의 꽃에 부니,
安可不盡杯(안가부진배).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소냐.
六帝没幽草(육제몰유초), 여섯 황제는 그윽한 풀에 묻혔고,
深宫冥綠苔(심궁명록태). 깊은 궁궐은 푸른 이끼로 어둡네.
置酒勿復道(치주물부도),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歌鍾但相催(가종단상최).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마시라고 재촉하니.

이 두 편을 읽고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술을 권하는 핑계가 지극히 마땅하고 애절한 가운데서도, 술자리의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술친구든지 기녀든지, 혹은 이미 술에 취했든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든지, 술을 권하는 모습이 이백답다.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마시라고 재촉하니.” 하하하...
하긴 백거이(白居易)도 “서로 만났으니 다시 술을 사양하지 말고 취합시다, 양관의 이별가 중 네 번째 구절을 읊을테니 귀기울여 듣기나 하소.(相逢且莫推辭醉, 聽唱陽關第四聲.)”(<對酒>其三)라고 하긴 했지만......

이백은 장안을 떠날 때 현종으로부터 받은 만냥의 전별금을 10년만에 모두 다 써버렸다. “천금을 다 써버리면 또 다시 생기는 것(千金散盡還復來)”(<將進酒>)이라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그의 전별시에는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


예를들면, <贈秋浦柳少府>의 “내가 사랑하는 그대, 오래도록 만류하니 차마 돌아가지 못하네(而我愛夫子, 淹留未忍歸.)”․<別山僧>의 “이번에 이별하면 어느 날에 만날까? 그리운 마음 하루 저녁 원숭이 울음에 깊어만 가고.(此度别離何日見, 相思一夜暝猿啼.)”,<別東林寺僧>의 “동림사 손님을 전송하는 곳에, 달이 뜨니 하얀 잔나비가 운다. 웃으면서 이별하자니 여산은 먼데, 왜 반드시 호계를 건너야 하나.(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贈任城盧主簿>의 “鐘鼓로는 즐겁지 않고, 안개와 서리내리면 누구와 함께 할꼬. 날아 돌아와선 차만 떠나지 못하네, 눈물흘리며 원앙과 鴻鵠과 이별하네.(鍾鼓不爲樂, 烟霜誰與同. 歸飛未忍去, 流淚謝鴛鴻.)” 등등이 있다. 여기서 그의 <送友人>를 보자.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푸른 산은 북쪽 성곽으로 가로 지르고,
白水遼東城(백수요동성). 하얀 강물은 성 동쪽을 싸고 흐른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여기서 한번 이별하면,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 외로운 쑥대처럼 만리까지 날려 가리.
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 뜬구름은 나그네의 마음이고,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석양은 친구의 마음이로다.
揮手自玆去(휘수자자거), 손 흔들며 이제 떠나가니,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 쓸쓸하게 떠나는 말도 우는구나.

다시 <金陵酒肆留別(금릉주사유별)>를 보자.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바람이 솜버들에 부니 주막에 향기 가득하고,
吳姬壓酒勸客嘗(오희압주권객상). 오땅의 미희 술을 걸러 손님에게 맛보라 권하네.
金陵子弟來相送(금릉자제래상송), 금릉의 자제들이 배웅하려 찾아왔네,
欲行不行各盡觴(욕행불행각진상). 떠나려 해도 떠나지 못하고 각각 술잔만 비운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그대에게 묻노니, 동쪽으로 흐르는 장강의 강물,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석별의 정과 어느 것이 길고 짧은가?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모두 아쉬운 것이 진정한 우정이리라. 그런데 친구간의 사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 의기투합하든지, 절대적으로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이 기반되지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옛사람은 “먼저 처음엔 담담하다가 나중에 열렬하게, 처음엔 낯설다가 나중에 친하게, 처음엔 멀었다가 나중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도리다.(先淡後濃, 先疎後親, 先遠後近, 交友道也.)”(≪醉古堂劍掃≫1장 116)라고 하였다.

이백은 어떠한 우정을 염원했을까? 물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우정이겠지만, 그가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 것은 王徽之와 戴逵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감(乘興訪友)’ 혹은 ‘눈이 내린 저녁 대규를 찾아가다(雪夜訪戴)’라는 고사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의 <東魯門泛舟> 중 其一에서 “가벼운 배를 달밤에 띄워서 계곡을 찾아 돌고도니, 왕휘지가 산음에 눈 내린 뒤 戴逵를 찾은 것 같구나(輕舟泛月尋溪轉, 疑是山隱雪後来.)”고 하였고, 其二에서 “만약 달빛 아래 배를 타고 떠나게 한다면, 어찌 바람에 흘러 剡溪에만 이르게 될까?(若教月下乘舟去, 何啻風流到剡溪.)”라고 하였다.

또한 <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에서 “어제 저녁 오중 땅에 눈이 왔는데, 王徽之는 흥에 겨워 섬계로 떠났었지.(昨夜吳中雪, 子猷佳興發.)”라고 하였다.

잠시 그 고사를 소개하면, 王羲之의 아들 王徽之가 山陰에 있을 때, 저녁에 눈이 왔다가 개이니, 달빛이 더욱 밝아서 사방이 온통 하얗다. 그래서 홀로 술을 마시면서 좌사(左思)의 <招隱詩>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친구 戴逵가 생각났다. 당시 대규는 剡땅에 있었다.

그래서 그 밤에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친구를 찾아갔다. 밤을 새워 친구가 기거하던 집을 찾아갔는데, 그 집 문앞에서 그냥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가 대답하기를 “본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갔는데, 흥이 다 되어 돌아오는데 구태여 친구 대규를 만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참 멋지다. 옛 사람의 흥취가 바로 이런 것이다. 친구간의 우정에는 말이 혹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서 친구가 알지 못하면 어떻고 안다면 또 어쩔텐가? 그게 자신이 친구에게 베푼 우정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나아가 이백은 친구가 보내 준 선물에도 몹시 감격하였다. 그의 <殷十一贈栗岡硯>에서,

殷侯三玄士(은후삼현사), 은십일이,
贈我栗岡硯(증아율강연). 나에게 栗岡硯을 보냈네.
洒染中山毫(주염중산호), 중산의 붓을 찍으니,
光映吳門練(광영오문련). 吳門의 비단처럼 빛난다.
天寒水不凍(천한수불동), 날이 추워도 먹물이 얼지 않고,
日用心不倦(일용심불권). 날마다 사용해도 싫증나지 않네.
携此臨墨池(휴차임묵지), 이 벼루를 가지고 墨池에 이르니,
還如對君面(환여대군면). 역시 그대의 얼굴을 대하고 있는 듯 하네.

라고 하였다. 일찍이 유명한 벼루인 栗岡硯이 마음에 들었기도 했겠지만, 특히 王羲之의 墨池를 보고 그를 떠올리는 면에서, 이백이 맺은 우정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백이 네 번의 결혼을 하였고, 자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기는 했지만 부인과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천하를 떠돌며 친구를 사귄 점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유가의 근본인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이백이란 인물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들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특히나 이백이 문인이란 특별한 계층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력을 도저히 용납못할 일도 아니다. 다만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달과 술을 벗삼아서 자신의 개성대로 살았지만 그가 한번 친구의 정을 맺게되면 진정으로 대한 이백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세월이 하수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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