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산업 경쟁서 이기려면 기술 개발·규제 개선 '속도전' 절실
지지부진 '킬러 규제' 혁파로 기업 투자 선순환 일으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7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주재한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첨단산업분야 규제 완화를 당부하며 한 말이다. 한국 수출을 떠받치는 반도체가 바로서야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 형편도 나아지는 만큼 풀어야 할 규제는 과감히 풀고 지원할 것은 확실히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 경쟁이 국가전으로 확전된 상황에서 한국은 제대로 된 기술·인력 육성 없이는 생존을 담보하기 힘들다. 올해 영업손실이 조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SK가 차세대 기술 투자에 수십 조원을 쏟아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 배터리업체들의 신규 투자 소식이 줄을 잇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치열해지는 산업 전쟁 속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기업 혼자만 잘해서 될 것이 아니다. 이들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낡은 규제는 뜯어고치고, 인프라도 적극 지원해야 제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공언과 달리 기업 살리는 규제는 여전히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경제계가 규제혁신에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반응은 뜨듯미지근하기만 하다. 약속과 이행에 괴리가 있는 것이다.
주요 킬러규제 혁신 입법과제ⓒ대한상공회의소
킬러규제 혁파, 첨단산업 세액직접환급으로 기업 투자 활로 열어야
그간 경제계는 국회에 계류중인 규제혁신 법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여러차례 요구해왔다. 정부가 8월 킬러규제를 혁파하겠다며 산업단지, 환경, 외국인 고용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 규제 완화가 같이 가야 기업들의 투자 활력이 살아나고 신사업에도 뛰어들 여력이 생기지만 진전이 되질 않으니 기업들의 애만 타들어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달 초 '경제계가 바라는 킬러규제 혁신 입법과제'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규제혁신 법안들을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국회에는 화평·화관법(화학물질 등록기준을 완화(0.1t→1t)하는 등 유해화학물질 관리체계 개편)과 외국인고용법(숙련 외국인력 활용을 위한 장기근속 허용 등), 산업집적법·산업입지법(산업단지 입주업종·토지용도·매매/임대규제를 30년만에 대폭 완화) 등이 계류돼 있다.
한국 화평법은 신규화학물질 등록 기준은 연간 100kg 이상으로 규제하고 있다. 1t 이상인 유럽과 10배 차이가 난다. 등록하는 데만 8개월 이상 걸리고 비용 부담(평균 2700만원)도 만만치 않아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발목을 잡는다. 신규화학물질 2600여종의 절반(55%) 이상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전기전자 등 주로 첨단 산업에 주로 쓰이고 있어 등록기준 합리화가 절실하다.
주요대형마트 영업휴무일 온라인 배송 허용(유통산업발전법)과 바이오항공유 지원(석유사업법 개정안)도 국내 기업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제정이 시급하다. 바이오항공유는 석유를 대체하는 친환경 항공유로 일반 항공유 대비 40~8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
이미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은 바이오항공유 사용을 의무화할 뿐 아니라, 생산자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생태계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관련 지원이 없어 제대로 된 투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석유사업법 개정으로 국내 기업들이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탄소배출 감축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마트 규제도 역차별 논란이 있다. 현재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SSM)는 영업시간(자정~오전 10시) 제한과 의무휴업일(월 2회) 규제를 받고 있다. 10여년 전 마련된 이 규제는 온라인 중심으로 바뀐 유통시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똑같은 온라인 주문건에 대해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배송 제약이 없는 반면 대형마트와 SSM은 배송이 불가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6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주재, 인사말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법인세 낮추고 투자 세제지원은 늘려 경제활력 도모해야
기업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 투자 지원도 필요하지만 과도한 세부담 역시 걷어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투자·R&D 세제지원, 상속세다.
우리나라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은 26.4%로 OECD 38개국 중 11번째로 높다. 국가재정과 경제규모를 고려한 법인세수 비중 역시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어서 기업 수익성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국내투자 유인을 약화시키는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R&D 세액공제(당기분)는 최대 2%로, 지원 수준이 현저히 낮다. 게다가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올해 종료되면 기업들의 내년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들은 시설투자에 대해 일반기술은 2%p, 신성장·원천기술은 최대 6%p 등 세액공제를 적용받고 있는데 이 지원이 끊기면 고스란히 세부담으로 이어진다. 경총은 R&D 세액공제율을 상향 조정하고, 올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1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의는 첨단산업분야 투자 촉진을 위해 세액공제금을 환급해주는 세액공제 직접환급(Direct Pay) 제도 도입을 건의하기도 했다. 법인세 공제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 지급해 기술·인력·시설에 재투자함으로써 투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계의 요구는 다른 건 다 제쳐놓고서라도 '기업만 우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경쟁국과 대등한 경쟁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기업 규제, 세제 등을 다룰 때 OECD 등 글로벌 수준과 견줘 미비한 것은 보완하고, 과한 것은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골자다. 첨단 산업의 경우, 기술·인적자원 육성을 위한 맞춤형 법안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입법 기관과 정부가 들여다봐야 한다고 간곡히 호소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조·생산 직무 기피로 외국인력 활용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관련 법안(외국인고용법)은 빨리 혁파해 처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법인세 등 세제 부문에서도 글로벌 수출 주도 국가 수준에 맞춰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