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별이 졌는데 장례행렬 가로막아?!

입력 2008.10.07 14:53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박정희 지시로 김승호 무사히 운구

잘살지 못했던 그시절이 문예부흥기…최진실 죽은 지금은

‘자살공화국’의 하루 34분의 1 최진실

안방극장의 스타 최진실이 아까운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해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그만큼 고소득도 올리면서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삶을 돌연 포기해서 놀랐고, 이혼하고 아버지 없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어찌 자살이라는 모진 결심을 했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되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교회에 다녔다는 그녀를 종교도 구원하지 못했고, 연기자의 인생을 보위할 대중예술의 혼도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언론은 그녀가 이혼 후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고 안재환 사채 관련의 인터넷 악성 댓글에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혼 후 우울증이 그토록 심각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녀를 괴롭혔다는 악성 댓글은 저급한 인터넷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국 연예인이 어쩌다 혹독하게 치르는 유명세이긴 하나 그것이 진실을 덮을 만큼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터이다.

분명한 것은 지하철에서 뛰어내리는 어떤 실업자거나, 어린 자녀를 양허리에 끼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누구라도 그 옆에 있다가 “아니에요. 이건 정말 안됩니다”라고 붙잡고 싶은, 최진실도 절망의 끝에서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지난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활력이 넘치는 나라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왔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은 너무나 달라졌다.

밝고 힘찼던 사람들의 표정에 그늘이 드리우고, 불만과 짜증으로 감정이 곤두서 있다. 걸핏하면 주먹 쥐고 시위를 하는 파괴적 이기주의가 횡행할 뿐, 공동체 정신이 실종된 한국 사회는 무기력으로 흐느적거리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의 하루 평균 자살자가 34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1위가 한국이다. 한마디로 자살자가 최고로 많은 ‘자살공화국’, 이게 우리나라 한국이다. 한국은 병들어 있다.

최진실은 병든 한국사회의 블랙홀 속으로 까무룩 사라졌다.

사랑을 나누면 고통도 나누어진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을 애도하지만 최진실의 안타까움은 그녀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호스피스 봉사를 했더라면 자신의 죽음을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진실 개인을 떠나 지금 이 나라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진단해 보고자 함이다.

지미 듀란테라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있었다. 세계제2차대전 끝무렵에 참전용사들의 위문공연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갈 곳이 널려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거절은 할 수가 없어 무대에 몇분 동안만 서기로 약속을 하고 공연장에 갔다.

그랬는데 그가 30분이 지나도록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아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 관계자가 무대로 나가 그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미 듀란테는 객석 앞줄의 두 상이용사를 가리켰다. 한 팔이 없는 두 상이용사가 온전한 팔을 서로 휘둘러 손바닥을 마주치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손 하나가 없어도 박수 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소.”

지미 듀란테는 그들에게 매료되어 무대를 내려올 수 없었던 것이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지음 류시화 옮김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 1997)

1972년 12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위해 방한한 보브 호프를 접견하고 있다.

유명인들의 미덕 스토리는 많다.

코미디언 보브 호프(1904∼2003)는 박정희 시대에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여러차례 했다. 세계2차대전 때부터 베트남전쟁까지, 베트남에서는 한국 출신의 보컬 그룹 김시스터즈와 함께 공연을 해서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연예인이다. 물론 우리 연예인들도 베트남 전선을 찾아갔다. 당대의 유명 연예인이라면 거의 베트남의 우리 병사들을 위문했다.

보브 호프는 자녀 3남1녀를 모두 입양으로 얻었다. 그는 그들을 훌륭하게 키웠을 뿐 아니라 재산의 사회환원으로 더욱 존경을 받고 100세 나이에 눈을 감았다.

유명인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따른다. 그것은 결코 부담이 아니다. 사랑의 나눔은 본인에게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고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최진실을 잃은 대중은 행복이 소득에 비례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날 모질게도 어렵게 살았지만 오늘의 안락한 생활환경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어 고통을 이기는 힘을 앗아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사랑의 일방통행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것도 일깨우고 있다.

국장 행렬 같았던 ‘원조 국민배우’ 김승호의 가는 길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 단순한 인기인이 아니다. 대중은 그들의 연기가 보여주는 투혼의 열정을 통하여 값진 삶의 메시지를 얻고자 하며, 그런 명작 속의 연예인을 불멸의 혼으로 기억한다.

한국 영화에서 최고의 배우라면 김승호(1917~1968)를 꼽는다. 산업화 시대의 ‘서민 아버지 상’을 대표하는 명배우였다.

1968년 12월5일, 대통령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 선포식에 참석하고 청와대로 돌아가는 중에 광화문 네거리의 어수선한 인파를 보고 경호실장(박종규)에게 물었다.

“왜 저래?”

“영화배우 김승호씨가 별세했습니다. 오늘이 발인날입니다.”

“오, 아까운 사람이 벌써 죽었네!”

<마부> 같은 김승호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박정희는 탄식을 했다.

고시공부를 하는 아들, 벙어리 딸 등과 더불어 살아가는 홀아비 마부 일가의 애환을 짙은 리얼리즘으로 담아낸 <마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서민의 억척스런 삶과 함께, 마차가 지나다니는 서울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서정적인 영상 연출로 감명을 준 영화였다.

스크린에서 낯이 익은 영화인들이 모두 광화문 앞에 나와 있었다. 소복 차림으로 흐느끼는 여배우들과 검은 예복의 남자배우들, 수많은 만장(輓章)까지, 굉장한 장례 인파가 트럭에 오르느라고 야단법석에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1968년 12월 5일 영화배우 김승호 영결식. 국민배우 김승호의 장례 모습은 이렇게 국가기록물로 남아 있다.

경호실장이 대통령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영화인들이 운구 행렬을 동대문까지 지나가게 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는데, 교통 혼잡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박정희는 발끈했다.

“무슨 소리야! 대한민국의 별이 떨어졌는데 장례 행렬을 가로막다니!”

얼마후, 트럭에 올랐던 장례 행렬이 도로 한복판으로 내려섰다. 수많은 애도 인파와, 그리고 그해 4월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장례 행렬은 광화문 앞 도로를 꽉 메운 채 천천히 동대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국장(國葬)을 방불케 하는 행렬과 함께 ‘원조 국민배우’ 김승호는 이승길을 떠났다.

문화예술, 불멸의 혼이 없다

김승호와 최진실은 거의 반세기의 차이가 난다.

그들 개인이 아닌 사회 환경의 차이를 보고자 함이다. 궁핍을 모면하고자 애면글면했던 김승호 시대와, 물질의 풍요도 결국은 행복이 아님을 일깨우는 최진실 시대의 문화예술을 비교함이다.

경제성장으로 엄청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서 영화나 TV, 문학 등 문화예술은 과연 얼마나 성숙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 대통령으로만 정의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빈곤과 함께 외면당하고 신음하던 전통문화가 기를 펴고, 조상의 유적 단장으로 역사의 자존심을 세웠으며, 한글 전용화와 더불어 문화예술의 각분야가 눈부시게 일어난, 박정희 시대는 대한민국의 문예부흥기였다.

최고 배우 김승호를 작별하던 참으로 볼 만했던 장례 행렬은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그때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게 잘살고 있는 지금, 왜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가.

대중문화의 허상이다. 불멸의 혼이 없다. 스크린에도, TV화면에도 전혀 창작의 치열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잠깐 동안의 흥미를 만족시키는, 지나가고 나면 아무 기억도 없는 그때 그때뿐의 흥밋거리와 그것에 동원되는 연기인들에게 무슨 자긍심이나 보람이 있을 것인가.

그것도 인기라고 CF로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게 결국 허망한 물거품인 것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던 어머니 최진실의 모정을 앗아갈 만큼 오늘의 대중문화는 황폐화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 감흥도 주지 않는 TV, 인기의 사슬에 얽매인 연기자들은 시청자와 함께 착각의 블랙홀에 함몰되어 있다.

소설이 안팔리고, 시는 화려한 곳의 소품으로 이용당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물질 몰입의 정책에 인문학이 압살을 당하는 천박한 세태는 결코 발전의 방향이 아니다.

대한민국, 앞으로 가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문화예술)은 아등바등 벼랑에 붙어 있다. 거기서 우리가 사랑하는 최진실 한 사람이 떨어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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