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보수가 말하다③>임헌조 전국연합 사무처장
"올드라이트-뉴라이트 차이는 정책이지 도덕성 아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마치 목숨이라도 내걸 듯이 왜 그렇게 정권교체에 매달리느냐’는 비아냥과 의구심 어린 눈길에도 거리에서 학술세미나에서 토론회장에서 그리고 시자회견장에서 보수우파 진영은 ‘정권교체’를 부르짖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5년동안 보수우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다소 긍정적으로 선회했지만,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따른 반사작용이었을 뿐 근본적으로 ‘보수우파=기득권’이라는 시각까지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보수우파는 어쩌면 더 몸을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모처럼 정권교체의 햇빛을 받은 이들은 제각기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4월 총선을 거치며 보수우파 내부에서 불거진 잡음은 국민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정략적인 의미 이상은 아니라는 회의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야성 대신 침묵을 택했다는 비판도 많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해 쓴 소리를 하지 못하는, 울지 않는 ‘새’가 됐다는 질타도 적지 않았다.
달콤한 허니문도 끝나갈 시간. 그러나 보수우파의 움직임은 북한 인권 개선과 근현대사 수정 외에는 별반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북한 인권과 근현대사 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 이념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이들의 자생력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우파가 이명박 정부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뉴라이트전국연합 임헌조 사무처장(43)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 위치한 전국연합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임 사무처장은 1달전에 만났을 때보다 조금 살이 내려 꺼칠한 모습이었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고 운을 뗐지만 사무실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벽 3, 4시가 되어야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아침 일찍 나오는 생활을 몇 달째 반복하고 있다”던 그에서 피로감이 엿보였다.
임헌조 사무처장은 ‘맥도날드 발언’으로 ‘임 열사’라는 명예롭지 않은 칭호를 얻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6월 MBC 100분 토론에 참석,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해 ‘미국맥도날드가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내장을 원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공식 사과를 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포털의 ‘연관검색어’처럼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항상 회자되는 인물이 됐다.
무엇보다 그를 화제의 인물로 만든 것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이라는 단체때문이기도 하다. 전국연합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표명하며 힘을 실어줬었다. 대선 막바지 도덕성 논란과 자질 검증 등에 휘말렸을 때도 전국연합은 이 후보가 대한민국 선진화를 실현시킬 인물임을 강조하며 그에 대한 신뢰를 보여줬다.
17만 회원을 거느려 보수우파 단체 중 가장 규모가 컸고, ‘대중적’인 성향이 강해 국민행동본부 등 여타 보수우파 단체들과 거리집회를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에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전국연합의 ‘송년의 밤’ 행사에 참여해 전국연합의 지지·지원활동에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그러나 임 사무처장은 “우리의 단기 임무는 이제 끝났다. 다시 시민단체로 신발끈을 조이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 우리의 목표는 3단계였습니다. 단기적인 목표로서 1단계 정권교체를 이루고 중장기적으로는 성공한 보수우파 정부를 만들어 이후 정권 재창출을 통해 사회의 좌우 균형을 이루는 게 우리의 목표였죠. 1단계는 성공했으니, 2, 3단계를 위해 지금은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임 사무처장은 “사실 우리에 대해 견제도 많고 비판도 높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전국연합 김진홍 상임의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친분관계와 한나라당 총선이 전국연합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가 단순히 생각했던 면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뉴라이트의 가치에 입각한 일련의 개혁을 하겠다는 포부는 보수우파가 비판해 왔던 참여연대 등 진보좌파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요. 특히 보수우파 정부에서 어떤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시점에서 막바로 총선이 겹치면서 한나라당 공천에 지역대표 분들이 신청을 많이 해서 ‘전국연합은 끝났다’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보수우파 내부에서도 ‘정권교체의 과실을 전국연합이 한꺼번에 취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으니까요. 초심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정말 어려웠습니다. 특혜나 시혜를 바라는 사람들은 전국연합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비난을 받고 있죠.”
임 사무처장은 전국연합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감수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이미 ‘정치에 뜻을 두었거나’ 다른 의사를 가진 이들은 전국연합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정리했다. 김진홍 의장도 3월 ‘목회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마지막으로 후원금을 보낸 뒤 지금은 전국연합에서 손을 뗀 상태다.
그는 “이제 전국연합은 날개를 달았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달 임대비를 내고 나면 다음달 임대비를 걱정하는 생활을 6개월 이상 해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활동비 없이 무급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일만 떠넘겨서”라고 운을 뗀 임 사무처장은 “요즘 ‘열공’중이다. 과거에 큰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정부와 견제와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보수우파 단체들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 사무처장은 보수우파 단체의 역할재조정에 무게를 두고 움직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우파가 정권교체 이후 자기 위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운동방식과 다른 ‘지향점’을 찾기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를 기점으로, 기존의 보수우파 시민단체들과 현재의 보수우파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분명히 구분돼야 합니다. 이전보다 책임이 강해졌으니 ‘5부’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해야죠. 정부와 건강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비판과 견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만들어야겠지요. 문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보수우파의 거버넌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도 불명확하다는 겁니다. 참여정부 때처럼 위원회를 만들고 이에 들어가 활동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점 외에는 아무도 해답을 갖고 있지 않아요. 우리가 진보좌파의 전철을 밟는다면, 보수우파가 만든 정책을 마음놓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친정부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거리를 두어서도 시민단체의 역할을 다하기 어려우니, 담장 위를 걷는 마음으로 보수우파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게 급선무입니다. 설령 정부에서 ‘위원회라도 만들어 참여해보라’ 그래도 보수우파가 먼저 거절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임 사무처장은 다만 ‘야성을 잃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다소 시각을 달리했다. “이런 평가는 시기상조이고, 시민단체로서의 원칙과 건강한 내용성을 토대로 정부와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국민 복리를 증진할 때 비로소 시민단체로서의 ‘야성’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싸울 때의 야성과 이후의 야성도 다르지 않을까요.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책적 대안도 내놓고, 그럼으로써 정부를 올바르게 만드는 비판정신이 진정한 야성입니다. 정부 각 부처와 관련해서 보수우파 시민단체로서 목소리를 내려면 연구와 비판도 하고 소통과 대화도 해야 합니다. 현재는 아직 그런 일이 익숙치않아 탓에 과도기를 겪고 있는 거지요.”
임 사무처장에게 ‘전국연합도 이명박 정부에 비판하는 것에 자유롭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했으니 어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자유롭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 전국연합은 부문별 싱크탱크인 ‘센터’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방송통신정책센터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와 (관계가) 악화될 정도로 강하게 비판을 해오고 있다. 누구를 지지했으니, 혹은 그쪽 출신이 어디에 갔다는 ‘전과’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편견”이라고 반박했다.
임 사무처장은 정책 중심의 토론회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정부 각 부처 관계자들에게 보수우파로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의무감과 책임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챙길 수 없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현실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시민단체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강조했던 ‘선진화’에 대해 정부가 추상적이다, 비판만 하지 말고 구체화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도 보수우파 시민단체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큰시장’으로 가는 ‘개혁’을 행하고 있는데, 선거공약같은 선언적 내용보다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 융합과 관련해, 핸드폰 요금은 어떻게 되고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얻는 이익은 무엇인지 말해줘야 합니다. ‘모르니까’라는 건 이유가 안 됩니다.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있어요. 보수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유는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를 잡은 덕분이에요. 보수우파 모두가 분골쇄신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반사이익이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제대로 활동해야죠. 대중집회나 토론회, 정책제안 등 각자가 자신있는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주려는 실험들을 해야 합니다.”
임 사무처장은 “배고프게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내부의 견제나 질시 등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녹여내면서 ‘우리 단체만 잘 돼야 한다’거나 ‘우리 단체가 보수우파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은 버리고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길 바란다”며 “각 단체의 성격을 존중하는 자율적인 분위기 아래 효율적인 공동대응을 위한 창구는 필요하지만, ‘성과’에 연연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우파 내에서의 갈등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중간 중간 말을 끊고 적당한 표현을 고르면서 임 사무처장은 “전국연합이 다른 보수우파의 공적을 가로채려 한 적이 없는데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진보좌파에서 보수우파의 통칭으로 ‘뉴라이트’를 쓰면서 밖에서 여론의 뭇매도 맞았고 보수우파에서도 불편해 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우리는 정통보수와도 함께 활동해오고 있고, 그 분들의 역할이나 공적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고 이미지에서 차이가 날 뿐인데 굳이 보수우파의 분열을 부추길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임 사무처장은 보수우파의 반목은 자유주의연대측이 ‘올드라이트·뉴라이트’를 구분하면서 파생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뉴라이트에 대해 처음에는 환영하는 분위기였는데 자유주의연대 쪽에서 올드라이트·뉴라이트 구분하고 ‘과거에 부패하고 도덕적 결함이 있던 사람’을 올드라이트로 통칭하면서 정통보수와 감정적 골이 생겼다”며 “그러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선민의식’에 빠질 수 있다.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차이는 정책이나 가치관이지 결코 도덕성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뉴라이트를 이끄는 핵심멤버들은 과거 386 출신의 운동권이 상당수다. ‘사회 개혁’과 ‘민주화’를 부르짖던 이들은 전향 이후, 보수우파의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에게는 ‘변절자’라는 꼬리표와 ‘준정치인’이라는 비아냥이 따라붙곤 했다. ‘자신들이 고결하다고 믿는 운동권 특유의 오만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불거졌다. 임 사무처장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뉴라이트가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보수우파의 상생과 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영국에서는 ‘복지정책에 무게를 두는 큰 정부’ 중심의 보수당 성향의 정책을 올드라이트로, ‘작은정부 큰 시장’의 대처식 정책을 뉴라이트로 구분합니다. 자유주의연대가 출범 초기 한나라당과 각을 잡기 위해 전략적인 포석으로 올드라이트·뉴라이트를 구분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개념정의가 갈등을 만들었어요.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분위기가 기저에 깔려 있으니 머리를 맞대고 보수우파 정부의 성공을 논한다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임 사무처장은 “그럼에도 아직은 뉴라이트를 버릴 순 없다”고 밝혔다. 그는 “뉴라이트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불필요하니까 뉴라이트를 포기하겠다’는 건 책임감이 없는 행동같다. 한국판 헤리티지재단이나 마쓰시타 정경숙을 지향하겠다고 했던 뉴라이트 운동이 보수우파가 정책을 연구·생산하는 활동에 앞장서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실현, 법치주의 확립 등 보수우파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공고히 뿌리내지지 못했다. 좌편향도 여전히 남아있다. 뉴라이트에 대한 견제나 비판·비난은 보수우파의 미래를 보여주는 ‘유력한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반증하는 것이므로, 일희일비하기 보단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 사무처장은 이날 2시간가량 인터뷰에 응했다. 전국연합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도 했고, 편견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보수우파가 시민단체로서 걸음마 단계인 만큼 애정어린 시선으로 비판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도 남겼다.
보수우파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몇몇 단체들은 유명무실해졌고, 또 몇몇은 이미 간판을 내렸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정권교체 이후 역할을 잃은 보수우파의 ‘끝’일 수도 있지만, 향후 10년을 위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보수우파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독일지 약일지는 모른다. ‘제2의 참여연대’로 남을지 ‘한국형 헤리티지’가 될지 그 공은 보수우파에게 넘어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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