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리부트-上] 20조 적자 쇼크 반도체…내년부터 상승 사이클 탄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3.09.29 06:00  수정 2023.09.29 06:00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 11% 감소…내년부터 반등 '무게'

PC, 모바일 등 글로벌 수요 급감에 삼성·SK 적자 20조 추락 전망

범용 위주 감산 나서되 차세대 제품 위주로 '반도체의 봄' 대비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관련 이미지.ⓒSK하이닉스

한국 수출의 20%를 담당해온 반도체가 휘청이고 있다. 수요 부진과 가격 하락 추세에 제조사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첨단전략물자로 반도체가 지목되면서 차세대 기술 선점을 위한 국가간 경쟁까지 격화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기술 우위를 지속해온 메모리 반도체 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필승 전략을 다시 짜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로에 선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22조원. 올해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예상 적자 규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이슈,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상저하고' 흐름을 기대했던 반도체는 아직까지도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잔뜩 쌓인 재고는 상반기를 정점으로 조금씩 줄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주요 시장인 서버, 모바일, PC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도 아니어서 반도체 제조사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수요 감소로 직격탄을 입은 삼성·SK는 공급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재고가 많은 범용 제품 공급을 줄이는 대신, 선단(Advanced) 제품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다. 반도체 시황이 바닥을 찍고 내년부터 차세대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등하기 시작하면 주저앉은 실적도 빠르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수요 부진으로 추락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장악한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시장은 PC, 모바일, 서버 등으로 나뉜다. 스마트폰은 기대했던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미미하고, 서버는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가 지연되며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공급과잉에 직면한 제조사들은 작년 말부터 웨이퍼 감산에 돌입하는 등 수급 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상반기 성적은 처참했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이 기간 9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냈다. 반도체 수요 위축, 계절적 비수기, 고객사 재고 조정 등이 맞물리며 판매 감소·수익 악화가 심화된 탓이다. 이 기간 SK하이닉스도 6조원을 웃도는 영업손실을 내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CXL Memory, PS1010 E3.S, HBM3, GDDR6-AiMⓒSK하이닉스

역대급으로 저조한 실적을 낸 양사는 하반기 시황 회복에 기대를 걸고 선단 제품 비중을 늘리겠다고 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DDR5를 중심으로 한 D램 수요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3분기 말 현재까지도 업황 회복 시그널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메모리 부진에 삼성 반도체는 하반기 약 5조원, SK 반도체는2조5000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거대 시장인 중국 침체 장기화,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확대에 따른 가계 실질 소득 감소 등이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을 꺾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소비가 급증했던 PC, 모바일 제품 교체 시기도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반도체 불황은 길어진 기술 발전 주기와 수요 기업에 미치는 타격이 약화된 것도 한 몫한다. 구글 등 수요 기업이 자체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에 생산을 맡기는 등 직접 생산에 나서면서 반도체 경기사이클이 붕괴됐다는 진단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국내외 반도체산업 정세와 경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PC, 모바일 등 주요 수요 산업이 급격하게 위축되기 시작했고 반도체 수요도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발생한 가수요로 인해 발생한 재고는 수요 기업에 부담이 됐고 최근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전년 대비 50% 이상 하락해도 선뜻 수요가 살아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황 회복의 기로, 수급요인별 업황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한국기업평가

이런 대내외 요인을 고려하면 반도체 경기 회복은 단기간 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공급 비중을 늘리는 한편 AI 서버 등 대규모 투자를 감안한 선단 제품 기술 개발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업황 회복의 기로, 수급요인별 업황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를 통해 "공급량 축소에 따른 D램 시장 수급개선 효과는 올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이라며 "다만 낸드 부문은 업체들의 추가 감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2024년 상반기 시점부터 수급 개선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올해는 '버티기'에 주력하는 대신 내년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 대비해 고용량·고사양 제품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 AI향 서버 시장 성장세가 연평균 30%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삼성과 SK는 고용량·고성능 제품인 HBM3, DDR5, LPDDR5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DDR5 128GB 이상 고용량 서버 모듈과 HBM 매출이 지난해 보다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HBM3 비중 자체는 전체 매출에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범용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6~8배 높고, 수요도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부가 시장을 적극 겨냥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HBM 시장을 양분하는 체제가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 역시 HBM 사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HBM3에서 8단 16Gb, 12단 24Gb 제품을 주요 업체에 출하했으며, 다음 세대인 HBM3P 제품은 24Gb를 기반으로 출시하겠다고 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올해 작년의 2배 수준인 10억Gb 중반을 넘어서는 고객 수요를 이미 확보했다"고도 언급했다.


삼성전자 HBM3 제품.ⓒ삼성전자

AI 관련 차세대 메모리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도 이어간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만 연구개발(R&D)에 7조2000억원을 투입했으며 반도체 시설투자에도 13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인프라 및 R&D 뿐 아니라 패키징에 투자를 지속하고 GAA(Gate-All-Around) 공정 완성도 향상 등으로 중장기 경쟁력을 다져놓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19조원) 보다 50% 줄이는 투자 방침은 유지하되 고용량 DDR5, HBM3에 필요한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생산성 향상, 장비 납기 단축, 투자 절감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고부가 제품 위주의 수익성 전략에 업계는 D램부터 차례로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반도체 경기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반도체 기업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장기적인 경기 전망은 밝은 편이므로 현재 위기 상황에서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를 지속하면서 수급 안정화부터 시작해서 시장 분위기가 전환되는 경기 회복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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