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동희오토, 현대차는 GGM서 경차 생산
고임금 구조로 경차 생산해 수익 못 남겨
기아 노조, 동희오토 법인통합 요구 '무리수'
7월 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기아 인천플래그십스토어에서 열린 기아 '더 뉴 모닝' 포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기아 '더 뉴 모닝'이 전시돼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동차지부(기아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교섭에서 임금 관련 사안 외 별도 요구안으로 회사 경영 관련 사안 몇 가지를 내놨다.
미래 자동차 산업 관련 국내공장 신설, 친환경차 핵심부품 및 전장부품 사내 생산, PT(파워트레인) 부문 중장기 고용전망 및 신사업 관련 고용확보, 동희오토 법인통합 등 네 가지다.
이들 중 앞의 세 가지는 전동화 전환에 따른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해소 차원에서 수용 가능성 여부를 떠나 집행부가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회사측도 앞의 세 가지 사안에 대해 확답은 없었지만 미래 시장 전망과 회사 상황 등을 고려해 고민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마지막 요구안 ‘동희오토 법인통합’에 대해서는 ‘수용불가’로 선을 그었다.
올해 교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지 모를 동희오토는 엄밀하게 말하면 기아가 법인통합 여부를 거론할 지위에 있는 회사가 아니다. 최대주주가 따로 있다. 지난 2002년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동희그룹과 기아가 65대 35의 지분율로 출자해 동희오토를 설립했다. 기아는 이 회사 2대 주주다.
설립 배경은 기아의 임금 구조와 경차의 제조원가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였다. 그 이전까지 기아는 비스토, 현대차는 아토스라는 경차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저가의 경차를 만들어 팔아 봐야 수익을 남길 수 없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게 바로 동희오토 설립이었다.
비스토와 아토스를 ‘SA’라는 프로젝트명의 후속 모델로 통합해 외주 생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SA의 양산 모델인 기아 ‘모닝’을 동희오토에서 위탁생산하게 된 배경이다. 현대차는 이 때 경차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금도 동희오토는 경차 모닝, 레이와 소형차 리오 등을 만들고 있다. 단종된 스토닉도 동희오토에서 외주 생산됐었다.
지금은 동희오토 설립 당시보다 기아에서 직접 경차를 생산하기 더 힘든 상황이 됐다. 기아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이 천문학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아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1200만원이었다. 이런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대당 1000만원대 초중반 가격의 경차를 만들어서는 답이 안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내 완성차 기업 임금 수준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차급을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 SUV로 보고 있다. 기아를 기준으로 하면 K3나 셀토스 정도는 만들어 팔아야 본전이라도 뽑는다는 얘기다.
노조의 요구대로 동희오토를 통합해 이 회사 근로자 및 파견 근로자들을 기아 정규직으로 편입시킨다면, 기아는 경차를 팔 때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현대차 '캐스퍼'. ⓒ현대자동차
동희오토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21년 광주광역시 주도로 설립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다. 이 회사는 설립 당시부터 ‘자치단체 주도 노사상생형 일자리’로 관심을 모았다. 근로자 임금은 기존 완성차 기업의 절반 수준으로 제한하되, 자치단체가 복리후생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반값 일자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동희오토 설립 당시 경차 시장에서 발을 뺐던 현대차가 다시 경차를 판매하게 된 것은 GGM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희오토와 마찬가지로 GGM을 통한 ‘외주생산’ 방식으로 다시 경차 시장에 복귀한 것이다.
GGM이 설립되지 않았다면 현대차가 굳이 손해를 봐 가며 경차를 만들어 팔 이유가 없었고, 국내 유일의 경형 SUV ‘캐스퍼’가 세상에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GGM 설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에 당적을 둔 이용섭 당시 시장이었다. 노동계 친화적인 정당 소속 시장이 주도한 새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도 함께 했다.
하지만 캐스퍼가 시장에 나오고 GGM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노동계에선 이 회사 임금체계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노동계 인사들은 같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데, 현대차‧기아 공장의 반값 임금을 받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GGM 설립 당시의 취지, 그리고 설립 후 첫 채용에서 정원의 무려 67배에 달하는 1만2603명의 청년들이 ‘반값 임금’임을 알면서도 지원서를 넣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말이다.
기아 노조의 동희오토 법인통합 주장도 비슷한 모양새다. 20여년 전 동희오토 설립과 경차 위탁생산에 노조도 찬성했고, 기아와 임금체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동희오토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을 흡수해 기아 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가 동희오토 문제로 골치를 썩는다면 현대차도 GGM에 경차 생산을 위탁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할 여지가 크다. 현대차는 GGM 설립 당시 19%의 지분을 투자했지만, 경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어 왔다. 즉, GGM이 장기적으로 리스크 요인이 된다는 게 확실시되면 현대차는 언제든 생산 위탁을 중단할 수 있고, GGM은 다른 완성차 업체 물량을 수주하거나 그게 안 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돈을 버는 것이다. 누가 어떻게 떼를 쓴 들 손해 볼 걸 뻔히 아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차를 생산하는 공장 근로자에게 억대 연봉을 줘야 한다면 우리나라에선 경차가 만들어질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동남아나 중남미의 어느 국가에서 만들어진 모닝, 레이, 캐스퍼를 타게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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