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지구 개발 미궁 속 세계유산영향평가 두고 서울시·유산청 ‘대립각’

임정희 기자 (1jh@dailian.co.kr)

입력 2025.12.19 07:00  수정 2025.12.19 07:02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 내달 27일까지 입법예고

서울시 “세운4구역, 세계유산지구 밖…영향평가 대상 아냐”

유산청 “세계유산에 영향이 큰 개발사업, 영향평가 요청 대상”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에 주민들 고통…“사회적 합의 마련해야”

종묘 일대.ⓒ뉴시스

세운 4구역 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정부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쟁점은 해당 사업지가 세계유산영향평가(HIA) 대상 해당 여부다.


서울시는 법적 절차상 HIA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가유산청은 종묘 인근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재개발 사업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1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내달 27일까지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재입법예고가 실시된다.


국토·도시 개발사업, 도시철도 건설사업 등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이는 개발계획부지 내에 세계유산지구(유산구역·완충구역)가 포함되는 경우에 해당되는 내용이어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세운4구역 개발사업에 HIA를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세운4구역은 세계유산지구 밖에 위치해 있다. 앞서 국가유산청이 종묘 일대 19만4089.6㎡ 범위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으나 세운4구역은 해당 지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국가유산청의 업무보고 이후 “법령을 개정해 HIA로 세운지구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과장해 단정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같은날 진행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고 내년 3월 법령을 통과시키면 서울시는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에는 세계유산지구 밖의 영향평가 대상에 대해선 위임된 내용이 없다”며 “시행령 개정안으로 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은 법률상 오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해당 개정안은 세운지구 개발과 무관하게 세계 유산을 세밀하게 관리해나가기 위한 내용을 규정한 것으로 세계유산지구 밖에서도 HIA를 시행하도록 하는 근거가 이미 세계유산법에 마련돼 있다는 입장이다.


세계유산법에 따르면 세계유산지구 밖에선 개발사업 등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문화재청장이 사업자에게 HIA를 요청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지난 상반기부터 유네스코의 권고와 함께 서울시에 영향평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며 “이는 법적으로도 의무가 발생하는 사안인데 서울시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사실 유네스코가 직접 권고하고 지속적으로 서한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이고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양 기관의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피해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세운4구역 주민들은 지난 16일 입장문을 통해 “세운4구역은 2004년 공공재개발 시작 이후 착공조차 하지 못했다”며 “정치권 정쟁에 휘말려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세계유산과 노후 지역 개발이 함께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서울시와 정부 간 정책대립이 일어나고 있는데 국민들 입장에선 여야 싸움으로 비춰질 것”이라며 “협의체를 구성해 사회적 합의와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최근 해당 구역 내 토지 일부를 보유하고 있던 한호건설이 토지를 매각한다고 했다”며 “차라리 공공에서 땅을 사들여서 개발을 추진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심에서 문화재를 향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개발이 진행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거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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