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청,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 현수막 등 불법 설치물 철거
인근 시민 "장기간 받아온 스트레스 벗어나 평온한 일상 되찾아"
시위자 거센 반발 등으로 불법 시위 설치물 철거 행정조치 실행에 부담
불법 시위 설치물로 가득했던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왼쪽)과 서초구청의 행정대집행으로 정돈된 모습. 독자 제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으로 출퇴근하던 계열사 직원들과 인근 주민들은 오랜 기간 불법 시위 설치물로 고통 받다 최근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다. 막무가내식 1인 시위를 벌이던 시위자가 설치한 불법 설치물들이 철거된 데 따른 것이다.
27일 서초구청에 따르면, 구청은 지난 15일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에 설치됐던 명예훼손성 문구를 담은 현수막과 불법 대형 천막, 고성능 스피커 등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행정대집행은 특정 단체 및 개인이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관청이 직접 또는 법률에 의해 제3자로 하여금 시설물 철거 등 의무 내용을 집행하는 행정 행위다.
이번에 철거된 불법 설치물은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10여년째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A씨가 설치한 것들이다. 그는 기아 판매대리점과 판매대행 계약을 맺고 신차를 판매하다 판매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되자 제조사인 기아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왔다.
해당 판매대리점 대표는 개인사업자로 기아와 무관하다. A씨 역시 판매대리점 대표와 계약을 체결했을 뿐 기아와는 관련이 없어 A씨의 기아 ‘원직 복직’ 요구는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겠다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는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에 사실왜곡이나 모욕적 표현을 담은 형형색색의 현수막과 띠지 등을 다수 게시했으며, 보행로를 가로막은 불법 대형 천막을 장기간 설치했다.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한 불법 게시물과 관할 지자체의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적치물이 계속해서 방치돼온 것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등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에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가요, 인격 모독성 발언 등을 여과 없이 내보내며 현대차그룹 임직원은 물론, 보행자와 인근 거주민들에게까지 큰 고통을 유발했다.
이처럼 해악이 컸던 만큼 서초구청의 철거 조치에 대해 환영을 표하는 목소리가 크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한 현수막과 볼썽사나운 천막 등 어지럽게 널려 있던 시위 설치물이 정리되니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면서 “스피커에서 아침 저녁으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됐다”고 환영했다.
서초구청 홈페이지에도 “현대차그룹 빌딩 주변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성의 노래를 틀고, 난잡한 현수막과 텐트 등이 들어서 무법천지처럼 보였다”며 “구청의 원칙을 지킨 행정처분에 구민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불법 시위 설치물로 가득했던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왼쪽)과 서초구청의 행정대집행으로 정돈된 모습. 독자 제보.
하지만 이런 식의 행정대집행을 단행하는 것은 지자체 등 행정 당국으로서도 부담이 크다. 법 규정에 따른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시위자와 몸싸움이 벌어져 부상을 입는가 하면, 철거에 따른 비용을 청구하면 오히려 지자체를 상대로 정당성을 따지는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대집행을 실시하더라도 시위대가 첨탑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거나, 지자체 청사 로비를 점거하고 철거된 시위물품의 반환을 요구하는 등 극심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자체로서는 부담이다.
현대차 사옥 인근 불법 시위물이 장기간 유지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내 모 구청 관계자는 “불법 천막에 철거 등 행정상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계고장을 발부하러 갈 때도 시위대 측의 난폭한 대응에 ‘사실상 목숨을 걸고 현장에 간다’고 말할 정도로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불법 시위물품이 대다수 시민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지 않도록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근본적으로 불법 시위 물품의 설치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집회‧시위 신고 접수를 받는 단계에서부터 설치물의 불법성 여부를 꼼꼼하게 따질 수 있도록 사전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집회‧시위를 개최하고자 할 때 옥외집회 신고서에 ‘준비물’로만 기재하면 현수막과 입간판, 스피커 등 시위 물품을 개수에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한 명이 수십 개의 현수막을 부착하거나, 보행로를 가로막는 불법 대형 천막도 사전 심사 단계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동시에 시위 도중 불법 시위물품이나 불법 행위가 적발되면 이후 집회‧시위 접수에서 불이익을 강제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시위 신고와 별개로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관할 경찰서장에게 별도의 소음허가를 받아야 하는 미국 뉴욕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러 날에 걸쳐 시위가 이뤄질 경우 시위 신고는 최초 1회만 해도 되지만, 확성기 소음허가는 매일 새롭게 받아야 한다. 만일 전날 시위 소음이 과도하거나 인근 주민의 불편이 초래되는 경우 소음허가를 받을 수 없다.
법조계에서는 다수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행정대집행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집회‧시위 신고 때 시위물품에 대한 사전 심사를 강화하고 실제 시위과정에서 불법 시위물품이 발견되거나 불법 행위가 빈번하게 적발되면 이후 집회‧시위 접수 때 불이익을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