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디케의 눈물 59] 불법점유 건물이라도 무단침입시 처벌…'자력 구제'의 딜레마


입력 2023.03.06 04:41 수정 2023.03.06 04:41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법조계 "민사소송 법적절차 무시하고 강제 점유물 탈환…형법에 따라 처벌 대상"

"상대업체로 점유 넘어가고 '사실상 평온' 유지됐다면…자력구제 대상 아냐"

"자력구제 인정 잘 안하는 추세, 명도소송·가집행 등 공식구제절차 밟아야…과정의 손해, 보상 가능"

"점유의 기준과 자력구제 주장의 요건, 건조물침입죄 범위 등을 명확하게 한 의미있는 판결"

ⓒgettyimagesBank ⓒgettyimagesBank

건물을 불법 점유한 사람을 쫓아내려는 목적이었어도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무단으로 건물에 침입했다면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법적 안정을 교란할 수 있는 자력구제행위(자구행위)는 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엄격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밝혔다. 설사 권리를 침해당했다하더라도 법에 의해 중재를 받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특수건조물침입,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5명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 2일 확정했다. 앞서 A씨 등은 서울의 한 백화점 건설 현장을 관리권 분쟁 중인 상대 B업체가 불법 점유하자 2018년 1월 쇠파이프 등을 휴대한 채 용역 직원 등을 동원해 쫓아내고 건물 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A씨 등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대표이사인 A씨 등 3명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나머지 2명은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이 재판에서는 불법적으로 점유를 개시한 현 점유자의 점유를 탈환하기 위해 기존 점유자가 무단으로 건조물에 들어간 경우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법조계는 특히, 이번 판결이 점유의 기준과 자력구제 주장의 요건, 건조물침입죄 범위 등을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공간 김한규 변호사는 "비록 불법점유 상태였다고 해도, 민사소송이라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적·폭력적으로 점유물을 탈환하려는 행위는 형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며 "가령, 식당이나 가게에서 무전취식 혹은 절도를 하는 사람을 주인이 쫓아가 붙잡는 행위 정도는 자구행위로 볼 여지가 있고 실제로 그런 판례도 있지만, A씨의 행위는 자구 요건에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형법 제23조에서는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 청구권을 보전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현저히 곤란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법무법인 심목 김예림 변호사는 "적법하게 점유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탈환하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며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 임대차 계약이 끝났음에도 임차인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대인이 강제로 내보낸 사례가 많는데 이 역시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 명도소송이라는 엄연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대법원 전경. ⓒ뉴시스 대법원 전경. ⓒ뉴시스

법무법인 굿플랜 김가람 변호사는 "점유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든, 이미 점유가 B업체에 넘어간 상태고, '사실상 평온' 상태가 유지됐다면 자력구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서 B업체의 점유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법원에서 사적구제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 추세다. 이 경우 법을 통해 공적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우선 명도소송 등의 민사소송을 걸고 판결문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집행관을 통해 가집행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그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면 별도로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법에 의한 중재가 법치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고, 점유의 기준과 자력구제 주장의 요건 등을 명확하게 제시한 판례라고 밝혔다.


김한규 변호사는 "개인의 자구행위 범위를 넓게 허용하게 되면, 누구나 권리행사를 마음대로 하게 돼 법원이나 검찰 등 사법기관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이번 판결은 법적 안정을 교란할 수 있는 자구행위는 법이 정한 엄격한 요건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는 취지로, 권리 침해가 있다고 해도 폭력이나 상해, 강제가 수반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가람 변호사는 "최근 이권을 두고 업체들 사이에서 분쟁이 많은데, 점유의 기준과 자력구제 주장의 요건, 건조물침입죄 범위 등을 대법원에서 재확인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회자될 판례"라고 말했다.

'디케의 눈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