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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㉟] 내일의 행복, 오늘의 감정 ‘사랑의 이해’


입력 2023.02.04 13:27 수정 2023.02.05 14:2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하상수와 안수영의 인생에 밀려든 사랑이라는 파도 ⓒ이하 사진 출처=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홈페이지 하상수와 안수영의 인생에 밀려든 사랑이라는 파도 ⓒ이하 사진 출처=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홈페이지

드라마 ‘사랑의 이해’(연출 조영민, 극본 이서현·이현정), 시청하시나요? 어느덧 14회까지 달려와 다음 주면 막을 내립니다. 아직 못 보셨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1회부터 찬찬히 정주행하시면 됩니다.



배우 유연석은 ‘인생 연기’라고 칭송할 만하게 KCU은행 하 계장, 하상수를 차분히 빚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하상수는 국내 최고 대학 경영학과를 들어갈 만큼 명석하지만, 자신감보다는 주저함이나 우유부단함과 친합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엄마보다는 형에 가깝게 대등하게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다 보니 ‘마음의 문’이 밖보다는 안으로 열려 있습니다. 타인에게 자상하고 정의롭지만,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변수’는 피하며 조용히 살아온 그입니다.


그 이질적 요소들의 복합적 캐릭터를 유연석이 해냈습니다. 까딱하면 갈팡질팡 ‘찌질’(지질)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보일 수 있었건만 유연석을 통해 세상에 나오니, 단정하고 신중한 인물로 보입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그 비뚤어진 청소년이 어느덧 잘 자라 사회적으로 꽤 괜찮은 어른이 된 듯, 뿌듯함을 안기는 유연석의 연기입니다.


안수영 역의 배우 문가영.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는 '풍부한' 연기, 그 성장 ⓒ 안수영 역의 배우 문가영.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는 '풍부한' 연기, 그 성장 ⓒ

배우 문가영은 미모가 아니라 연기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너무 예뻐서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력이었나 싶을 만큼, 뽐내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안수영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안수영은 아주 위험한 캐릭터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배우가 조금만 흔들려도 아주 묘하게 문란하고, 아주 더럽게 이기적인 팜므 파탈로 비출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문가영은 안수영을 그저 자신의 낮은 자리를 묵묵히 견디고 조금은 나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무던히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렸습니다.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그 바람은 어쩌면 남의 얘기 쉽게 하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진 바람일 수 있다는 점을 안수영은 툭 일깨웁니다. 문가영은 안수영을 그렇게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나무로 연기했고, 그 묵묵함이 때로 연기력 논란을 불렀지만 알맞은 선택이고 표현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기상구, 비슷한 기운이 서로를 당긴다고 안상수와 문가영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외향적이지 않고 신중함이 지나쳐 우유부단한 하상수는 ‘인생 최대의 변수’ 안수영을 외면해 보려 애씁니다. 직장 내의 온갖 악성 루머의 주인공인 안수영 역시 언제나처럼 ‘모른 척’ 제자리에 머물려 합니다.


얽히고설킨 치정극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각자 열심히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 얽히고설킨 치정극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각자 열심히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

두 사람의 ‘진심을 부정한’ 선택은 사랑을 멀리 돌아가게 하고, 되레 더 큰 변수를 부르고 한층 더 거센 바람을 두 사람의 인생에 부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게 되는 건 기본. KCU은행 영포점에 같이 근무하는 하상수의 대학교 과 후배 박미경 대리(금새록 분), 청경 정종현(정가람 분)에 상수의 과 동기 소경필 계장(문태유 분)까지 뒤얽힌 ‘치정 스캔들’로 치닫습니다.


놀라운 건, 그 요란한 파국에 다다른 하상수와 안수영이 더욱 겁먹고 더더욱 안으로 파고들어 요지부동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자신들의 부정할 수 없는 진심에 솔직하게 직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죠. 남의 일에 관심 많고 남 잘못되는 일에 관심이 더 뜨거워지는 폐쇄적 직장에서, ‘정의의 투사’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나 도 넘지 않게 ‘바른말’ 하던 서민희 팀장(양조아 분)이 안수영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 다치게 하면서까지 지킬 건 아무것도 없어. 살다 보니 그래, 내가 나를 지켜야 남들도 만만히 안 봐!”


직장에, 세상의 '숨구멍'이 되어 주는 한 사람쯤. 서민희 팀장 역의 배우 양조아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movie6miri 직장에, 세상의 '숨구멍'이 되어 주는 한 사람쯤. 서민희 팀장 역의 배우 양조아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movie6miri

수영이 그토록 바라던 일반직으로의 직군 전환에 성공한 날, 서 팀장이 축하의 밥을 사며 건넨 말입니다. 직군 전환과 동시에 신도점 발령이 난 상황, 안수영을 둘러싼 정 청경-소 계장-하 계장의 육탄전을 영상으로 몰래 찍어 유포한 김 대리가 있는 지점이다 보니 선배는 걱정이 큽니다.


수영이 “익숙한 일”이라며 “그런 건 괜찮아요”라고 하자 뼈에 새길 명언을 전한 겁니다. 이 말은 수영이 엄마에게 고향 통영으로 돌아갈까를 말하고, 아빠가 “서울이 너무 춥다”고 말할 때부터 예상됐던 수영의 선택에 ‘박차’를 가합니다.


참 좋아하는 배우 양조아가 발화해서 더욱 무게가 실린 걸까요. 머리가 띵해지는 말이었습니다. ‘맞다, 마음 다치게 하면서까지 지킬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처한 여러 상황을 명분 삼아 원치 않는 자리를 지키고 사느라 나와 내 인생을 갉아먹는 우리, 사실 참 흔합니다. 그런 우리라서 남들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모양입니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성곽도, 하얀 눈도 늘 그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 있기도, 변하기도 하는 건 사람 그리고 사랑 ⓒ이하 사진 출처=드라마 '사랑의 이해' 홈페이지 두 사람이 바라보는 성곽도, 하얀 눈도 늘 그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 있기도, 변하기도 하는 건 사람 그리고 사랑 ⓒ이하 사진 출처=드라마 '사랑의 이해' 홈페이지

결심을 굳힌 수영이 상수에게 묻습니다.


수영: 하 계장님이 바라는 ‘내일의 행복’은 뭐예요?

상수: 글쎄요, 변수가 없는 삶?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제보다 나쁘지 않으면 그 정도면 된다고.

수영: 하 계장님 이름처럼요.

상수: 수영 씨는요?

수영: 행복이라는 단어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그냥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하루치의 불행만 견디면서. 근데 이제부터 생각해 보려고요. 내일의 행복, 내 감정만 생각하고 내 행복만 생각하려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마음을 굳히지 못해 몸에 병이 난 수영을 위해 상수는 약을 사다 주고 죽을 쒀 주고 ‘배란다가 추워 보여요’라는 쪽지와 함께 화분을 하나 선물했습니다. 자금우(천량금), 꽃말은 ‘내일의 행복’. 상수는 꽃말을 알지 못했지만, 화초에 관심이 많은 수영은 단박에 알고 밤새 앓고 일어난 아침에 화분을 보며 웃었죠.


상수에게 그가 바라는 ‘내일의 행복’을 묻는 수영. 먼저 깨친 자가 말합니다. 그동안엔 ‘하루치 불행만 견디면 된다’고 다스리며 살았지만, 이제는 달라지겠노라고. 주위 사람, 주변 상황을 나보다 중시하며 사는 것을 멈추고 내 감정만, 내 행복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그렇게 ‘내일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겠다고.


안상수 역의 배우 유연석.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결정적 변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 안상수 역의 배우 유연석.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결정적 변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

상수는 어제보다 용기의 키카 한결 자랐지만 아직은 살아온 ‘습’에 한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글쎄요’라는 말에서, 아직은 주저가 읽힙니다. 하지만 희망도 보입니다,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말. ‘생각해요’가 아니라 ‘생각했어요’, 과거형입니다.


‘내일의 행복’을 향해 수영이 먼저 발걸음을 힘차게 디딘 상황, 이제 상수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수영이 끊어낸 어제에 ‘마음에 상처 내며 지키고자 했던 직장’만 있는 것인지, 이제는 도저히 부인하고 외면할 수 없이 깨달아 버린 ‘사랑’도 포함될 것인지 마지막 두 회분에서 확인될 테지요. 상수의 선택이 궁금합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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