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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TO :] 살색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극치···"나는 누드 모델 입니다"


입력 2022.06.16 17:05 수정 2022.06.16 17:06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누드 모델 이석현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 ⓒ 데일리안 유튜브 '나라가TV' 누드 모델 이석현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 ⓒ 데일리안 유튜브 '나라가TV'

“긴장이요? 전혀요. 몇백 명 앞에서도 공연했는걸요"


이 석현(33) 씨는 첫 인터뷰임에도 자연스레 농담을 던지는 등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투명한 피부 탓인지 핏줄이 선명했다. 그는 차분한 모습과 달리 4차원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이수역 인근 스튜디오에서 캐주얼한 차림의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인터뷰에 임하기 전 색조가 칠해진 흰색 마스크부터 착용했다. 그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상에 종종 연기와 무관하게 누드 모델들의 모습을 희롱하거나 비하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며 "제 예술성에 피해가 갈 거란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누드 모델은 총 100여 명 남짓. 이들의 연령대나 본 직업도 다양하다. 모델들은 주로 대학 강의실이나 공연장, 화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제공한다. 근래 들어선 게임 회사 3D 인체 동작 스캔 모델이나 영화 속 노출 대역 등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은 신체의 굴곡이나 움직임을 통해 대중과 미술인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다. 그들의 포징(Fosing)을 통해 숱한 명작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맨몸으로 날 것의 예술을 표현하는 ‘누드 모델’


이 씨가 누드 모델을 꿈꾸게 됐던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10여년 전 부산의 한 야외 온천에서였다. 아침에 비를 맞으며 걷는데 문득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었다. 모든 게 언젠가 사라지듯 내 젊음도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장 누드모델협회에 연락을 취했다. 하영은 누드모델협회장도 이 씨에게 당장 서울로 올라오라고 답했다. 광주 토박이였던 그는 그 길로 상경해 누드 모델의 길을 택했다.


이 씨는 2012년 5월 미술 작가들 앞에서 처음으로 가운을 벗었다. 그는 “할 줄 아는 포즈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실전에 투입됐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무리한 포즈를 취하다가 며칠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이 악물고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일하며 스스로 하나 둘 포즈를 터득해갔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데뷔했던 2012년도엔 누드 모델 업계는 지금보다 훨씬 좁고 보수적이었다. 당시 누드 모델 소재는 예능 프로나 드라마에서 개그 소재로 쓰이거나 ‘파격 노출’, ‘과감한 19금’ 등의 기사 헤드라인으로 소비됐다. 그는 “대부분의 모델이 지인이나 가족에게 누드 모델 일을 하고 있다고 공개하진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를 설명하든 관대하게 이해하실 분들이 많이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순간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 십 가지의 포징(fosing)


이석현 씨를 모델로 그린 크로키화 ⓒ 이석현씨 제공 이석현 씨를 모델로 그린 크로키화 ⓒ 이석현씨 제공
이석현 씨를 모델로 그린 크로키화 ⓒ 이석현씨 제공 이석현 씨를 모델로 그린 크로키화 ⓒ 이석현씨 제공

누드 모델은 20분에 평균적으로 19~20여개가량의 포즈를 취한다. 2~3시간가량 진행되는 미술 수업에 참여할 때마다 몇십 가지의 포즈를 시연해야 하는 셈이다. 따라서 수업 일정에 따라 달마다 몇백 개 이상의 포즈를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포징(Fosing)을 장시간 취하는 누드 드로잉의 경우 허리디스크나 근육 파열 등 신체적 손상을 입는 모델들이 많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포징 구상법에 관해 그는 “예전에는 발레, 현대 무용, 부토(일본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포즈를 구상했다. 고릴라나 늑대 등 동물의 움직임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요즘에는 순간순간의 감정이나 느낌, 과거에 대한 회상 등을 토대로 즉석 표현을 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누드 모델을 통해 얻는 직업적 보람을 묻자 이 씨는 ‘너무 많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열심히 수업하고 난 뒤 회원들이 먼저 다가와 ‘최고였다’고 말해 줄 때 행복하다"며 "사진이나 그림 등 수업 결과물들을 SNS상에 올려 대중들하고 교감하는 순간들이 모두 소중한 순간 같다”고 말했다.


- 누드 모델들이 현장에서 겪는 차별적 대우들… 외면하는 에이전시


2018년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는 한 누드 모델이 미술 수업 중 무단 촬영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대자보를 부착했다. 올해 5월에는 전남 순천의 한 미술 갤러리 대표가 누드 크로키 전시에 참여한 모델의 나체 사진을 SNS 단체 대화방에 올려 논란이 인 바 있다. 이 씨는 ‘누드 모델이 현장에서 겪는 부당한 차별과 성폭력은 일상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누드 모델에게 향해진 폭력은 비단 대학 수업 뿐만 아니라 화실, SNS 등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5년, 10년이 지나면 사회적 시선이 나아지지 않겠나 생각했다"며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60~70년대 마인드에 머물러 계시는 분들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일부 모델 에이전시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처럼 프리랜서 모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모델은 3~4개의 에이전시를 통해 일을 주선 받는다. 대학과 에이전시의 관계에서 모델들은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그는 “모델들이 인격 모독이나 성희롱 등을 당했을 때 상대는 주로 작가나 교수 등의 미술인 들이다. 그러나 에이전시는 그들도 고객이기에 사실상 중재의 선에서 멈춘다”라며 “이런 문제로 일부 모델들은 현장에서 참아 내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 프리랜서의 길을 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입 부분에서도 “누드 모델은 경력이 높아져도 시급 3~4만원 선의 페이에서 변동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에이전시가 수수료를 20~40%씩 떼어간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누드 모델 인프라가 적은 지방의 상황도 꼬집었다. 일부 노출증, 관음증 환자들도 여과 없이 수업에 투입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에서도 경력이 높은 모델 선배들이 있다. 그러나 일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부 모델들이 허들 없이 학술 수업 등에 투입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미술 작가들도 이 때문에 굉장히 피해를 보았다. 이는 곧 모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도 악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뒤 은퇴하기 전까지”… 그가 누드 모델들의 손을 잡는 이유


10년 차 경력을 쌓은 이 씨는 꿈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최근 국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누드 모델들에게 연락을 취해 연대체를 구성 중이다. 에이전시가 그간 외면했던 누드 모델을 둘러싼 차별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그는 “최대한 공연 형식의 수업을 많이 열어 대중들의 편견을 바꿔 가려 한다”면서 “또, 이전에는 에이전시와의 계약 관계로 침묵했다면, 지금은 모델들을 향한 부당한 대우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바꿔 나가려 노력 중이다. 누드 모델을 향한 차별적 문화가 장기간 이어진 것처럼, 이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모델이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데일리안 ⓒ 데일리안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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