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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무용론'에서 '여경 특혜론'으로…끝나지 않은 '여경 논란'


입력 2022.01.23 05:22 수정 2022.01.23 10:21        김하나기자 (hanakim@dailian.co.kr), 김효숙 기자

작위적인 여경 미담 소개나 기동직 업무 배치 장려…젊은 남경들 불평등 불만·분노 야기

현장 남경들 "안 그래도 여경 대부분이 밤샘 없는 부서서 편하게 일하는데 또 편한 자리?"

"인천 흉기난동 사건 등으로 여론 악화되자 현장에 여경 배치 안하고 싶은 것이 윗분들 속내"

전문가 "기계적 평등주의 과도한 적용 지양…여성 불평등 옛말, 여경·남경의 역할 차이 인정 우선"

부산경찰서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한 여경의 미담. 19일 오후 해당 게시물은 삭제됐다.ⓒ온라인 커뮤니티 부산경찰서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한 여경의 미담. 19일 오후 해당 게시물은 삭제됐다.ⓒ온라인 커뮤니티

각종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던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여경 특혜론'으로 번지고 있다. 여경 무용론을 졸속으로 잠재우려다 불평등 특혜 시비까지 불러온 것이라는 의혹도 낳고 있는데, 주로 작위적인 여경의 미담 소개나 기동직 업무 배치 적극 장려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기계적 평등주의의 과도한 적용을 경계하면서 여경과 남경, 성별에 따른 역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여경 특혜론'은 부산경찰서 공식 페이스북 '부산경찰'이 지난 15일 금정경찰서 '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미담을 소개하면서 촉발됐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길바닥에 노인이 쓰러져 있고 여경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덮어주며 구조하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따뜻한 미담 사례로 훈훈하게 회자될 수도 있는 경우였지만 '여경 무용론'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네티즌들은 "여경 홍보용 조작 글" "여경 이미지 세탁용"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여기에 최근 서울경찰청이 일선에 내려 보낸 '경비부서 전·출입 인사기준'에서 기동본부별로 전출 등 공석이 발생하면 여성 경찰관을 적극 배치하란 지침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서울 지역의 30대 남자 경찰관은 "요즘은 기동대 내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동대 자체가 가서 편하게 공부하고 진급하고 돈도 많이 벌어 워낙 인기"라면서 "실제로 승진 합격률이 수사 부서는 극히 적고, 기동대나 내근직이 대다수라 이같은 지침은 역차별로 느껴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년 차 남경도 "남경과 여경 절대 인원이 달라서 기동대 내근직에 여경 비율이 적은 건 당연한 얘기인데, 내근직 비율이 적어 여경 인원을 늘리겠다는 지침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안 그래도 여경 대부분이 밤샘 없는 부서에서 편하게 일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또다시 편한 자리를 내주려고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지역의 한 남성 경찰관은 "실질적으로 현장 남경들은 여경과 근무하는 걸 꺼리는게 사실이고, 솔직히 불안한 것도 있어서 윗분들의 속내도 현장에 여경을 배치하지 않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현장에는 일 할 사람도 부족하고, 하고 싶다는 사람도 없는데 현장에 투입하지도 않을 여경을 늘리는 것에는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남경들은 인천 흉기난동 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그런 사태를 겪었으면 여경들이 더 외근에서 버틸 수 있게 환경을 갖춰줘야지, 오히려 내근으로 도피하게 만드는 꼴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여경 내근 적극 배치 비판 글.ⓒ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여경 내근 적극 배치 비판 글.ⓒ온라인 커뮤니티

이런 지침이 '여경 특혜'와는 무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경찰관은 "기동대 외근직이 몸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긴 해도 다른 부서에 비해 업무부담이 적어 내근, 외근직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기동대에도 여경 비율을 늘린다고 하면 되는데, 내근직만 여경을 늘린다고 하니 오해가 쌓이고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는 것다"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경찰청은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 지침이고,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등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의경 폐지로 기동대 창설이 늘고 있고 여경 비율도 늘어 기동본부 등에 여경도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2020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도 이 방안을 시행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여경 특혜론'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기계적 평등주의를 과도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경 특혜론은) 과도한 평등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인데 이는 옳지 않다"면서 "오랫동안 체력 훈련을 포함해 경찰이 되기 위한 직무 능력을 갖춘 여성들도 있는데, 평등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여성들 내에서도 불평등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평등주의보다 실용적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며 "예컨대 경찰 선발과정을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체력 기준을 적용해 공권력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기동대 내근직에 여성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라는 관용적인 지침은 사회적으로 동의를 얻기 어렵고 여경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는 여성이 과거처럼 정말 차별 받느냐 오히려 남성이 더 차별받는 것 아니냐는 공감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과 동일한 맥락으로 보인다"며 "경찰 내부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인데, 경찰은 일반 회사보다 더 투명하게 주변에서 관찰할 기회가 많아서 더 이슈화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2030 청년들 입장에선 여성 불평등은 아버지 세대 때 통용됐던 이야기이지, 현재엔 공정하지 않다고 받아 들인다"며 "결국은 여경과 남경의 역할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면서 "업무를 인위적으로 할당을 하는 것을 2030 청년들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인 조정을 통한 업무 배치를 해야 하고, 이런 업무 배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녀를 따로 구분해선 안 된다"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가보면 남경도 여경도 진압 부대에 편성돼 둘 다 기관단총 다 매고 순찰을 한다. 우리나라처럼 여경만 구성된 부대는 없다. 자꾸 여경, 남경을 구분해 따로 보고 별도의 대우를 하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이어 "우리는 차별과 차이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여성이 선천적으로 물리적 신체적 조건이 약하다고 항상 내근 부서에만 배치할 것이면 무엇때문에 경찰관을 뽑나. 아예 일반직, 기능직을 뽑아 행정직으로 쓰는 게 낫다. 물론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에는 내근직으로 가도록 배려해 줄만 하다"고 덧붙였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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