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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도발을 도발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외교' [이충재의 정치노트]


입력 2021.10.25 07:01 수정 2021.10.25 05:53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외교‧국방장관, SLBM 발사에도 "도발 아니다"

북한 요구사항 접목시킨 文정부 'K-안보'지침

임기말 '대북이벤트'에 올인…북한 '심기경호'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2018년 9월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 노동당 본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2018년 9월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 노동당 본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우리 외교‧안보 수장이 졸지에 호부호형을 하지 못한 '홍길동' 신세가 됐다. 북한이 동해상에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아 올렸지만, 이를 '도발'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SLBM 시험발사를 두둔하는데 급급했다. 서 장관은 "도발이 아닌 위협"이라고 규정했고, 정 장관은 야당의 질문공세를 피해 다니며 '도발'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 장관은 지난 21일 국감에서 "도발은 영공, 영토, 영해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저희가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북한의 '위협'으로 보인다"고 정의했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만큼 '위협'일 순 있어도 '도발'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우리 국민에게 피해가 없다면서 '도발'이 아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도발(provocation)"로 규정하고 규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시각이다.


정 장관은 한술 더 떠 "북한이 2017년 11월 이후에는 우리가 정의하는 전략적 도발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북한이 2017년 11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도발이 맞다는 의미로, '우릴 위협해도 되지만 미국까진 안된다'는 인식이 담긴 발언이다.


합동참모본부는 10월 19일 '북한이 10시 17분경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는 10월 19일 '북한이 10시 17분경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홍길동 외교" 비난 감수하며 北 '심기경호'
'베이징정상회담 이벤트'와 맞바꾼 국가안보


하지만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달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도발'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불과 한 달 만에 도발의 개념이 바뀐 것은 북한이 도발 표현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실제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15일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도발 발언을 "부적절한 실언"이라고 비난한 뒤 정부 내에선 '도발'이라는 표현이 금기어가 됐다.


우리 외교‧안보 수장이 도발을 도발이라고 부르지 못한 것도 북한의 요구사항을 접목시킨 문재인 정부의 'K-안보' 지침에 따른 셈이다.


이번 SLBM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옹호할 여지가 없는 불법행위인데도 'K-안보'를 적용하면 단순 위협으로 격하된다.


"홍길동 외교냐"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의 심기경호에 집착하는 것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 등 '베이징 이벤트'를 펴겠다는 정부의 의지 때문이라는 게 외교가의 공공연한 얘기다.


현재 북한은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관계 복원 조건으로 자신들의 무기 시험에 대해 '도발'로 규정하지 말라는 '이중기준 철회'를 거듭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무언의 동조를 하고 있다.


그사이 한반도 안보상황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전략 무기인 SLBM은 추적·탐지가 어려운 심해에서 잠항해 기습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쏜 SLBM은 사거리 약 590㎞로, 한반도 전체가 사정권에 들어간다.


평화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안보위기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발'이다. 외교가 안팎에선 남북정상이 베이징에서 손을 맞잡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한번 무너진 국가안보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마련인데, 물건 주고받듯 거래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 안보가 문재인 정권의 '대북 비즈니스'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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