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와인드⑩] 김순옥 작가가 증명한 ‘막장’의 힘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1.08.03 14:35  수정 2021.08.0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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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로 시즌제 도전

장서희·이유리→김소연, 사랑받는 악역들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SBS

김순옥은 임성한, 문영남 작가와 함께 막장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막장 드라마의 시초라고 불리는 ‘아내의 유혹’부터 배우 이유리를 희대의 악역으로 만든 ‘왔다 장보리’까지. 걸출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주로 ‘복수’를 전개의 동력으로 삼는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캐릭터들이 각성을 하고 돌아와 핏빛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를 탄탄하게 쌓아가며 개연성을 높이기보다는 빠르고, 파격적인 전개로 흥미를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개연성을 따지면 안 된다는 의미의 ‘순옥적 허용’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 흐름은 현재 방송 중인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막장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시즌제를 선택한 이 드라마는 첫 시즌부터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초반의 기세에는 못 미치고 있지만, 현재 방송 중인 ‘펜트하우스3’도 여전히 17% 내외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 장서희→김소연, 매력적인 김순옥의 ‘악녀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장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아내의 유혹’(2008년)에서는 매력적인 악녀의 활약이 드라마 인기를 견인했다.


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아이를 가진 채 살해당할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구은재(장서희 분)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는 점찍고 돌아온 구은재가 모두를 속이며 화끈한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모두가 “나는 구은재가 아니”라는 거짓말에 속는다는 설정이 다소 황당할 법도 했지만, 이 설정만 드라마적 허용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복수극의 흥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구은재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펼치는 속고 속이는 심리전부터 그의 정체를 둘러싼 긴장감 넘치는 전개까지. 온갖 악행과 함께 정신없이 펼쳐지는 예측불허 전개들이 설정의 허술함을 금새 잊게 한다.


이후 지난 2014년 방송된 MBC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 분)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희대의 악역 연민정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것. 출생의 비밀이라는 뻔한 소재를 다뤘지만, 목표를 위해 딸을 버리고, 사랑했던 남자까지 죽이려는 연민정의 파격 행보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느 드라마들이 악역에 사연을 부여해 행동을 이해시키려고 했다면, 연민정은 오로지 신분 상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눈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현재 방송 중인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도 천서진(김소연 분)을 비롯해 오윤희(유진 분), 심수련(이지아 분) 등 각종 악인들의 활약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악행의 수위로는 단연 최고 수준인 천서진은 시즌1에서 아버지까지 살해하는 광기를 보여줬었다. 오윤희의 죽음에 분노한 심수련은 나애교로 변신해 그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아내의 유혹’ 구은재 계보를 이었다. 이제 시청자들은 캐릭터가 극 중에서 사망해도 ‘다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며 김 작가의 세계관을 즐기고 있다.


ⓒSBS, MBC

◆ 막장도 장르다…진화하는 김순옥 월드


인물들 간의 치밀한 두뇌 싸움, 기싸움으로 막장 드라마계 전설로 남은 ‘아내의 유혹’ 이후에도 김 작가의 도전적인 작품들은 이어졌다.


지난 2018년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으로는 주로 선보인 연속극이 아닌 미니시리즈 장르에 첫 도전했다. 가상의 황실 세계를 배겨으로 펼쳐지는 막장이라는 점도 독특했다. 이 드라마는 2018년 현재가 입헌군주제 대한제국이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명 뮤지컬 배우 오써니(장나라 분)가 황제 이혁(신성록 분)과 결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는 연속극이 아닌 미니시리즈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혁(신성록 분)과 민유라(이엘리야 분)의 관계부터 나왕식(최진혁 분)과의 악연, 여기에 주인공 오써니가 가세하며 복잡해진 러브라인 등 이야기 구조는 다소 복잡했지만 이번에도 나왕식의 복수심을 동력삼아 거침 없는 전개를 보여줬었다. 특유의 시원시원한 전개로 막장 드라마는 주로 중, 장년층이 시청한다는 편견을 깨고, 젊은 시청자들까지 아울렀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로는 시즌제에 도전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전개와 각종 반전들이 난무하는 김 작가 드라마 특성상 다음 회차를 기다리듯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다. 시즌1에 이어 시즌3까지 15% 이상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다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개연성 부족이라는 김 작가의 장점이자 단점인 이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는 막장의 시즌제에 대한 숙제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무려 시즌3까지 이어올 만큼 방대한 세계관을 막장이라는 장르로 해냈다는 점에서, 김 작가의 도전이 막장 드라마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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