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영담한지미술관, 영담스님 인터뷰
한지미술 114점과 영인본 52점 등 전시
‘빛의 종이 바람의 종이 달빛 머금은 숨 쉬는 종이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사람에게 이보다 이로운 물건 또 있을까’...(중략)
영담 스님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
영담 스님은 종이가 좋아 20여년동안 한지제작을 연구하고 다양한 쓰임새의 전통한지를 복원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종이에다 못다 한 정회를 풀면서 늙어감의 여유를 보태어 영담한지미술관을 열게 됐다고 한다.
작고 아담해 더 아름다운 영담한지미술관은 청도 운문댐을 따라 운문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방음리의 작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할아버지의 허리마냥 꼬부랑한 도로의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마침내 보갑사 내에 자리한 영담한지박물관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흔히 절에서 나는 향내 대신 사방을 에워싼 구수한 종이 내음이었다.
초겨울의 사찰은 운치 있고 고즈넉한 맛이 있다. 그 가운데 한지미술관이 있다. 문을 연지 6개월 남짓이지만 벌써 이곳을 찾은 이들은 2000명 정도다. 이날도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관람객들이 스님과 편하게 차를 마시며 한지에 대해 얘기 나눈다.
입장료가 있긴 하지만 따로 거두진 않는다. 관람객들이 시주함에 알아서 넣으면 그뿐. 이마저도 생각보다 상당한 미술관의 운영 유지비 때문이라고 한다.
“신발 벗고 들어오는 미술관은 여기 뿐일꺼야” 라며 스님과 관람객들은 함께 웃는다. 그만큼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우리네 고향집의 사랑방 같다. 전체가 황토로 지어진 미술관 외부와 내벽은 청도와 어울리는 은은한 감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더 정겹다.
최모(경기도 수원시 망포동)씨는 “이곳에 와 스님과 얘기를 나누고 보기 드문 한지작품들을 감상하니 마음이 절로 평안해 진다” 고 말했다.
한지미술관에는 영담 스님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들이 소복하다
영담 스님은 살아 숨 쉬는 종이인 한지와 숨 쉬는 흙인 황토는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한지는 질기면서도 부드럽고 빛과 바람이 통합니다. 사용하는 이에 따라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점은 허공과도 같고 오래 내버려 두어도 한결 같은 것은 마치 어머니 같죠.”
“양지는 시간이 흐르면 삭아버리지만 한지는 천년이 흘러도 변치 않습니다. 종이 한 장에 생명력이 있죠. 은근하고 끈기 있는 한지의 성질은 우리 조상들의 민족성과 비슷합니다” 한지에 대한 스님의 예찬은 끝이 없다.
1층과 2층 복층 구조로 되어있는 한지미술관에는 영담 스님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들이 소복하다. 한지작품들은 2층의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한데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이렇듯 한지는 자연에 순응하는 현상이 있다.
영담 스님이 수행하는 틈틈이 식물의 잎과 꽃, 열매 , 썩은 나무 그루터기, 이끼와 흙까지 흔하디흔한 자연의 일부를 가져와 염색한 작품들이라 더 쉽사리 자연과 융화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영담 스님이 독특한 방법으로 작업한 한지를 들어보이며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하나 정과 사연이 담기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만은 그중에서도 스님은 가장 애착가는 작품으로 ‘윤회의 추억’을 꼽았다.
빛바랜 색동저고리, 찬란했던 젊은 시절, 세월이 흐름에 따라 중후하면서 초연해지는 삶 등을 한지에 홍화꽃잎, 진달래 꽃물, 개화나무 열매, 오리나무 열매 등의 즙을 입혀 표현한 작품이다.
영담 스님은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곁에서 첩약 봉지를 가지고 놀면서 어릴 적부터 한지와 친숙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한지로 접은 딱지를 들고 나가면 항상 제가 대장 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한지로 접은 딱지는 한번 땅바닥에 달라붙으면 어지간해서는 뒤집히지 않거든요.”
“본격적으로 한지 연구에 팔을 걷어 부친 것은 28살 출가하고 부텁니다. 수행자로 살더라도 뭔가 내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차에 종이와 불교의 깊은 연관성을 깨닫고 원주서 한지전문가인 홍관하 할아버지에게 전통한지 제작이론을 사사 받았다고 한다.
전체가 황토로 지어진 영담한지미술관 외부와 내벽은 청도와 어울리는 은은한 감빛을 띠고 있다
스님이 만든 한지는 정부도 인정한 ‘명품’이다. 1989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 국립박물관을 둘러본 후 ‘직지심경’과 ‘왕오천축국전’의 영인본(원본을 사진이나 기타의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제작을 위해 스님에게 한지를 주문했고 동국대학교가 개교 80주년을 기념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과 ‘신수화엄경’의 영인본을 만들 때도 스님의 손을 빌렸다. 지금도 한지미술관에는 이들의 견본이 전시돼 있다.
영담 스님은 미술관에 등록된 작품들은 팔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작품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회향하는 길 중 하나라고.
영담 스님은 한지와 함께 이루고픈 꿈이 많다. “우리종이의 맥을 살리고 사찰종이의 우수성이 후대에 잘 전승될 수 있도록 ‘우리종이 100가지 전시관’ 을 만들어 100가지 종이를 견본으로 각각의 재료들과 제작과정, 용도 등을 상세히 전시하고자 합니다. 또 한지 공예 학교를 만들어 전통 한지의 맥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복원과 명맥 유지에 지대한 공을 끼친 영담 스님이지만 여전히 스님은 꿈을 꾼다.
영담 스님은 녹차 한 모금을 마시며 우리종이의 맥이 이어지고 사찰종이의 우수성이 후대에 잘 전승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영담 스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닥종이는 제게 있어서 알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이며 함께 할수록 깊어만 가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금 찻잔을 들어 녹차 한 모금을 음미했다.
차향과 종이의 구수한 향이 뒤섞여 몽롱해지기까지 하는 그 공간에서 스님도 작품들과 함께 오롯이 하나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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