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3급 이기고 전국 마라톤 대회 200회 이상 출전
달리기 통해 음지에 숨어있는 장애우들 양지로 나오길 바래
■경기인 ⑧/ 장애인 마라토너 최민호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이 지닌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안산 반월공단의 아침공기를 가르며 가쁜 숨을 내쉬는 최민호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기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기를 한다. 달림으로서 세상을 향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는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우들에게 그들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편집자 주>
♣ 굳은 다리보다 굳은 마음이 더 문제였다
최민호씨가 부인과 함께 안산 반월공단을 달리고 있다. 아내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없는 남편을 배려해 보조를 맞춘다.
“어릴적부터 운동이라고는 해본적이 없습니다. 왼쪽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뇌성마비였으니까요. 거기다가 의사 선생님이 심장과 간이 안좋으니 절대 뛰면 안된다고 해서 남들이 운동 할 때 전 항상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이 허약해지고 팔과 다리는 굳어져 움직이질 않고… 어느 날 부터인가 전 매일같이 누워만 있게 됐습니다.”
약간 어색한 걸음걸이지만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최민호(52)씨가 불과 5~6년전 자신의 모습이라며 털어놓은 말이다.
태어날 때 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최 씨는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3cm 정도 짧은데다 안쪽으로 휘어져 있어 걸을 때 마다 고통이 따른다.
그런 그가 같은 직장에 있는 선배의 권유로 2002년 3월 마라톤을 시작하게 됐다.
살아있는 것조차 힘이 들고 괴롭던 때 그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달려보라”고 등을 떠민 것이다.
“처음에는 남들이 쳐다보는게 창피하고 100m만 가도 숨이 차 포기하고 싶었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걷다 뛰다보니 200m, 500m, 1km 가 되더군요. 남들은 일주일이면 1km는 거뜬히 달리는데 저는 한달이 걸리더라구요. 허허. 달리기를 시작한지 2년 만에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최 씨는 지금 안산 반월공단의 명물이다. 안산 뿐 아니라 마라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다.
“하루에 2시간 정도씩 매일 뛰다보니 이제 저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마라톤 대회를 나가도 제가 뛰는게 이상하니까 카메라 플래쉬도 많이 받는 편이죠. 근데 지금은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거나 싫지 않아요. 저를 통해 음지에 가려진 장애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장애가 무슨 자랑이겠느냐”면서 그래도 흔쾌히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장애 때문에 늘 소외되고 제약적 공간에서 생활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거듭 강조하는 최민호씨.
“이왕 태어났다면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닌 가장 큰 장애는 굳은 다리가 아닌 굳은 마음 입니다. 이제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오십시오.”
♣ 4년간 참가한 대회만 200여개…꼴찌는 절대 안해
올 10월 14일 ´군포 수리산 전국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그는 장애인으로서 산악마라톤을 완주한 첫번째 사람이 됐다.
그곳에서 회원들은 최 씨에게 ‘시흥시 거북이 마라톤’에 함께 참가하자고 제안했고 그냥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전한 거북이 마라톤을 가까스로 완주한 그는 그 이후 지금까지 4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주 주말마다 전국 마라톤 대회에 거의 빠짐없이 도전장을 내민다.
“이왕 발을 내딛었으니 끝까지 뛰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뛰기 시작한 것이 5km, 10km, 하프, 풀코스 이렇게 늘어나더라고요. 지금까지 풀코스만 9번 뛰었어요. 춘천 국제마라톤은 올해로 네 번째 참가하게 되는건데… 올해의 목표는 5시간 5분 안에 결승선을 끊는 것입니다. 제게 이 기록은 정상인이 서브쓰리를 달성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죠.”
그가 매 주말마다 전국 마라톤 대회장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늘 그의 곁에서 같이 달려주는 아내 박춘화(42)씨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마라톤 클럽까지 저를 데려다 줘야 해 함께 다니기 시작했는데 훈련이 끝나길 기다리다 보니 지루해지더랍니다. 그래서 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마라톤에 빠져있지요.”
마라톤을 시작한 후 체중이 무려 26kg이나 감량됐다는 박 씨는 남편 최 씨 만큼 마라톤 덕을 톡톡히 본 장본인이다.
그래서일까 최 씨가 일주일에 5~6회 훈련한다면 아내 박 씨는 어김없이 주 7회 훈련을 한다. 하루에 기본 20km는 뛴다는 이들 부부는 안산에서 운영하는 작은 매점을 번갈아 보며 틈틈이 훈련을 하고 있다.
“아내의 가장 큰 변화는 후덕한 몸매에서(웃음) 날씬한 몸매가 됐다는 겁니다. 저는 53kg에서 58kg으로 늘어 오히려 몸이 좋아졌지요. 이제는 먹고싶은 음식을 맘껏 먹어도 혈압이나 고지혈증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움직일 수 없었던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근력이 좋아져 지금은 걷는 것만 봐서는 일반인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 아무리 좋다고 하는 물리치료보다 몇배는 효과가 있는 셈이죠.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점은 달리기를 함께 하면서 부부사이가 훨씬 좋아졌다는 겁니다. 취미가 같아지니 대화도 늘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일석삼조죠.”
♣ 오늘도 달린다 나를 이기기 위해…
최 씨의 왼쪽 다리는 날때부터 뇌성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보다 약간 짧고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그는 안쪽으로 휘어진 다리로 달리기 위해 신발 바깥에 직접 제작한 고무를 덧데서 균형을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달리고 있는 최 씨와 그의 아내는 “올해 봄에 열린 천진암울트라마라톤에서 50km를 완주했습니다. 10월 중순에는 군포수리산전국마라톤(산악마라톤) 대회에서 장애인으로는 아마 최초로 완주했을 겁니다. 저는 아무리 달려도 1등은 못합니다. 하지만 꼴찌를 해본적도 없습니다. 저는 가장 빨리 달리는 것보다 완주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극복했다는 그 성취감…각자 처해진 상황에 따라 그때의 감격과 깨달음은 다 틀리겠지만…(목이 메임)”이라며 심장이 터질듯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건강해지고 싶어 뛰기 시작했다는 최민호씨와 혼자 뛰는 모습이 안타까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는 아내. 이들 부부의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 남는다.
“마라톤은 골인점을 통과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괴로웠던 순간을 모두 잊게합니다.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출발이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되지요. 그게 마라톤과 우리 인생의 닮은 점 아니겠습니까. 오늘, 지금 다시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기쁨…꼭 한번 느껴보십시오.”
(우)최씨와 그의 아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기 연습을 한다. (좌)지난 9월 16일 ´철원DMZ 국제평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최 씨가 골인점을 향해 막바지 스피드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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