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서 벌어진 ‘K-1 월드그랑프리 2009 요코하마’에서 살아있는 전설 피터 아츠(39·네덜란드)가 또다시 격투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아츠는 이날 대타로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불구, 떠오르는 젊은 피 ‘본 크러셔(bone crusher)’ 에롤 짐머맨(22·네덜란드)을 상대로 연장접전 끝에 승리를 따낸 것. 더욱이 17년의 나이차를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믿기 힘든 경기력이 아닐 수 없다.
나이를 뛰어넘는 근성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베테랑
K-1 원년부터 활약해온 아츠는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이다.
전성기에 보여주던 가공할 위력의 하이 킥(High Kick)이나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 상대의 호흡을 끊어버리던 죽창(竹槍)같은 펀치공격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파워-체력-순발력 등 이제는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장에서 힘들게 도끼로 나무를 벨게 아니라 선배인 어네스트 후스트(44·은퇴)처럼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이는 ´정원사´가 되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아츠는 특별하다.
무너질 것 같지만 특유의 근성과 오기로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알콜 중독-치명적인 허리부상 등 선수생명이 끝날 뻔했던 위기가 수차례나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이겨내고 K-1에서 가장 질긴 잡초 같은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이번 경기는 아츠에게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비록 지난해 세미 슐트(36·네덜란드)를 ´진흙탕 싸움´ 끝에 잡아내며 그가 K-1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하게 막는 큰 공(?)을 세웠던 아츠지만, 정작 자신은 8강전에서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악동´ 바다 하리(25·모로코)의 엄청난 스피드에 고전하며 무너지고 말았던 것.
때문에 이번에도 젊음을 앞세운 짐머맨의 힘과 빠르기에 패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꾸준히 몸을 만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예정에도 없이 갑작스럽게 출전했다는 점도 마이너스였다.
확실히 아츠는 짐머맨에게 신체적인 능력에서 많이 밀렸다.
기본적인 스피드와 파워는 물론 맷집과 체력에서도 버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츠는 아츠였다. 지난 하리전에서 스피드에 당했던 것을 의식한 듯 노련하게 거리싸움을 펼치며 베테랑 특유의 수 싸움으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했다. 반 박자 빠르게 먼저 주먹과 발을 내며 공격흐름을 사전에 차단해버린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짐머맨을 당혹스럽게 하기 일쑤였다.
특히 바디 블로우와 니킥, 미들킥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짐머맨의 몸통을 공격한 것은 데미지 축적은 물론 상대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효과까지 있었다. 실제로 짐머맨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결국 연장전에서 지친 아츠를 상대로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K-1 최고의 젊은 유망주 중 한명답게 짐머맨 역시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일단 파워와 내구성에서 앞서는 그는 얻어맞으면서도 같이 공격을 내며 끊임없이 카운터를 노렸고 순간적인 대시를 통해 아츠를 수차례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강적을 상대로 연장까지 간 것은 노장 아츠에게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츠는 승리로서 건재를 알렸고, 이는 올드 팬들은 물론 신세대 팬들의 가슴까지도 찡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특히 체력과 운동능력으로 승부해야하는 스포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근성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아츠는 아직도 이러한 것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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