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첫 ‘오케스트라 없는 단독 공연’…세밀한 밴드 편곡으로 19곡 채워
LED 스크린 대신 밀밭 심은 무대…타협 없는 아날로그 뚝
“휩쓸리지 않고, 들뜨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묵직하게 음악하겠다”
“맘을 가다듬고 깊은 잠을 청하면 / 날 헝클던 많은 생각 / 조용히 자릴 잡아갈 때” -‘겨울잠’ 中
숨죽인 객석으로 건네진 ‘겨울잠’의 아카펠라 첫 소절은 이번 공연의 성격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데뷔 이후 줄곧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아온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덜어내고, 밴드 앙상블과 목소리 본연의 힘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과감한 선택이다. “첫 곡을 부르러 올라가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는 데뷔 32년 차 가수의 고백은, 익숙한 연출을 덜어내고 정교한 편곡과 라이브 역량만으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이번 공연의 무게감을 대변한다.
ⓒ뮤직팜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는 전람회 시절을 포함해 김동률이 오케스트라 없이 여는 첫 단독 공연이다. 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사운드가 오랜 기간 그의 공연을 상징해 온 만큼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아니라 음악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2019년 동명의 공연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이번 무대는 지난해 열린 공연 ‘산책’과 한 세트로 2년 전부터 준비해, 두 공연의 셋리스트가 겹치지 않도록 구성됐다.
오케스트라를 덜어낸 빈자리는 밴드의 정교한 편곡이 메웠다. ‘오래된 노래’는 원곡의 스트링 오케스트라 대신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이라는 실내악 편성으로 밀도를 높였다. 피아노 중심이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기타 반주로 뼈대를 옮기고, 기타 소리가 풍성하게 울리는 키로 한 음을 올려 보컬의 질감에 뚜렷한 변화를 줬다.
화려한 오케스트라가 돋보였던 ‘문라이트’는 재즈 쿼텟으로, ‘낙엽’은 반도네온을 앞세운 탱고로 변주됐다. ‘뒷모습’에서는 연주자들과 나란히 앉아 퍼커션 리듬을 강조하며, 한정된 악기 편성 안에서도 사운드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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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정점은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무대 위에는 허리춤까지 오는 실물 밀밭이 펼쳐졌고, 노란 조명이 반딧불이처럼 깜빡였다. 밀밭에서 책을 베고 낮잠 드는 소년, 그가 가사를 쓰며 떠올렸던 풍경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옮긴 장면이다. 영상으로 대신할 수도 있었지만, 디지털 영상이 범람하는 최근 공연 연출의 흐름을 비껴가 무대와 음악의 결을 맞추기 위해 밀을 모내기하듯 직접 심는 방식을 택했다. 오케스트라를 덜어내며 생긴 무대 위의 여백이 아날로그의 시각적 상상력으로 채워진 셈이다. 1부는 그가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 ‘떠나보내다’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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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2부는 한층 가볍고 다채로운 밴드 앙상블로 채워졌다. 베란다 프로젝트의 ‘바이크 라이딩’에는 가벼운 브라스와 클라리넷이 얹혔고, ‘출발’의 도입부는 트럼펫 연주자가 2년 전부터 따로 익혀 직접 불어낸 휘슬 소리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별도의 게스트 없이 밴드 연주자 상당수가 두 가지 이상의 악기를 소화하며 무대를 지탱했다. 또 김동률은 2011년 클래지콰이 알렉스에게 주었던 ‘같은 꿈’을 꺼내 불렀고, ‘첫사랑’은 90년대 복고풍으로 밝게 바꿨다.
셋리스트가 불친절하다는 팬들의 볼멘소리를 의식한 듯, 그는 “이번엔 소외받던 곡들을 잔뜩 부르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후반부에는 ‘취중진담’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메들리를 배치해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1부의 마지막 곡을 다시 불러낸 ‘다시 떠나보내다’와 ‘귀향’으로 본공연을 닫았다. 앙코르는 ‘그 노래’와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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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말미 김동률은 “휩쓸리지 않고, 들뜨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묵직하게 음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가 없는 무대가 ‘팥 없는 찐빵’일지 모른다는 그의 너스레는 150분의 치밀한 밴드 라이브가 완벽히 불식시켰다. 거대한 규모에 기대지 않아도 그의 음악이 지닌 무게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자”며 무대를 내려간 이번 공연은 2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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