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가 100%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26 07:00  수정 2026.06.26 07:00

지금 지방에 추가로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세워야 하는지 필요성 의문

기업이 원하는 것 이해하고 마음부터 사로잡았던 英 공무원 태도 배워야

우선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있어야 의미 있는 기업 유치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 접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1990년대 영국은 20%에 육박하는 실업율을 낮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했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지명도가 낮았던 삼성전자는 잉글랜드 북부의 티사이드에, LG전자도 잉글랜드 뉴캐슬과 웨일즈 뉴포트에 각각 가전공장을 설립했다. 현대전자(지금의 SK하이닉스) 역시 스코틀랜드 던펌린에 36억 달러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했다. 영국 정부는 망설이던 한국 기업들에게 투자유치의 진정성을 보여 주고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삼성 준공식에 참석하는 등 한국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환대와 칙사 대접을 받았다.

필자는 당시 현장을 취재하면서 콧대 높던 영국의 중앙·지방 정부 공무원들이 몸을 바짝 낮추고 ▲세제 감면 ▲부지 제공 ▲인프라 선행 투자 ▲신속 인허가 등 기업 유치에 필요한 4가지를 신속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다. 파격적으로 법인세를 낮추고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한 번의 사인으로 끝내는 원스톱(One-stop) 솔루션을 시작했다.


특히 "영국은 강성 노조 때문에 겁이 난다"는 우려를 듣고 정부가 노사분규 방지를 보장하다시피 했다. 공장 주변 도로에 '삼성로(路)', 'LG로', '현대로' 같은 이름을 붙여 주는 사소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당시 웨일즈에 진출한 LG의 모 임원은 "한국은 관리들이 틀과 제도를 정해 놓고 고압적으로 지시하지만 영국은 '너희가 필요한 게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기업이 원하는 것을 먼저 이해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정치권에서 시작된 호남권 반도체 공장 이슈가 드디어 청와대에서 이를 공식화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는 기업들의 진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소문난 맛집을 찾아 호남을 자주 찾는 필자는 현지 경제가 피폐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남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혹시 일방적인 기업 몰아붙이기를 한다면 곤란하다. 수십조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100% 기업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면 반드시 부작용과 후유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김대중 대통령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실기업 처리에는 강력하게 손을 댔지만 공장설립 같은 기업의 자율적인 사항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트럼프도 미국에다 공장 지으라고 겁박하는데, 우리나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이 정도 압력이야 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업 입장에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생산기지를 둘 필요성이 높은 지역이다. 트럼프의 으름장 때문에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필요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방에 추가로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어야 할 정도로 캐파(생산능력) 확대가 시급한 지 의문을 표시한다.


청와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거론하자 당장 여기저기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정권이 기업의 투자 방향을 사실상 유도하거나 압박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정치의 제물로 바치는 최악의 관치경제"라며 "반도체 공장이 어디에 들어설 지는 대통령이 아니라 기업이 결정해야 하고, 정권의 임기와 총선 일정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경쟁이 결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직권남용이고, 강요이자, 시장 질서 침해로 전형적인 관치경제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다른 지역에서 "나도, 나도"를 외치고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25일 "전력·용수·부지 모두 전자산업 모태인 구미가 반도체 공장에 최적지"라며 "평당 148만원인 지역 내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평당 1000원에 내놓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런가 하면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회사가 전남·광주권에 간다면 다른 한 회사는 전북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만간 전국 지자체들이 모두 나서 "왜 우리 지역은 안 되느냐"고 항의할 태세다. 반도체는 부지 검토에만 7년 이상 걸린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지자체 간에 어떤 논란이 벌어질지 우려된다.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삼성전자

반도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략 업종이다. 핵심 정보의 보안이 지켜져야 하고 생산 과정도 매우 정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전세계 경쟁업체들이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지부터 정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은 미국, 대만, 중국의 경쟁업체들 입장에서는 너무 좋을 것이다.


사실 전라도든 경상도든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데 우려되는 대목이 많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취업의 남방 한계선은 평택과 이천"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반도체는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숙련된 노동자와 고급 기술인력을 필요로 한다. 지방에서 아무리 파격적인 조건으로 첨단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숙련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핵심 인재를 강제로 이동시켰다가는 당장 이직하겠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공장을 세운다 해도 전력과 용수 등 구체적인 이슈에 들어가면 지자체 협의와 주민 동의를 구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다. 공장이 들어서는 바로 그 지역이야 혜택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송전선이 지나가거나 방류수가 배출되는 인근의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송전망 건설 반대 민원을 해소하는 데만 5년이 걸렸고,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방류수 처리 문제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다 6년이 지난 2025년 2월에야 1기 팹(Fab) 착공에 들어갔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요동치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지역은 다소 걱정스럽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쉴 틈 없이 전력이 공급돼야 하는데, 재생에너지는 변동 폭이 커서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반도체 초호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전망이다. 조만간 대규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되고 거기에다 팹까지 갖춘 호남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는 10년 뒤가 되면 아무리 AI 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대한민국의 D램 독주 시대는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창신메모리(CXMT)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지금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고 추월은 시간 문제로 보여진다.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골치 덩어리 설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결론은 제 3자가 의사결정에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부에 고도의 생산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인들처럼 목소리만 내지 못할 뿐, 언제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만약 이들이 100% 자발적으로 "지금은 호남권에 투자해야 한다"라거나 "앞으로는 구미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 정확하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기업이란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 영국 정부처럼 기업을 나라 경제의 보배로 존중하면서 칙사 대접까지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봉'으로 여기지는 말아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맡기라는 말처럼, 기업의 일은 100% 기업에게 맡겨야 한다.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호남 지자체의 헌신적인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0% 자기 의사로 투자 결정을 내린다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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