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대차는 남부를 택했나…해외학계가 주목한 노동환경
메타플랜트 급습을 美 '무노조 남부' 산업구조로 조명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현대차그룹
"첫 번째 이유는 무노조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HMGMA) 투자 배경을 설명한 한국계 공급업체 관계자의 이 발언이 최근 해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 학계는 지난해 발생한 현대차 메타플랜트 관련 이민 단속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남부 자동차 산업의 노동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미국 연방 이민세관집행국(ICE)은 작년 9월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475명을 체포했다. 한국 국적자도 300명가량 포함됐다. 당시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과 연결돼 해석됐다.
하지만 호주 라트로브대 티모시 민친 교수는 올해 3월 국제학술지 Labor History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번 사건을 미국 자동차 산업의 더 긴 역사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현대차 1차 공급업체 인사 담당자 인터뷰와 조지아 주지사실 공문, 전미자동차노조(UAW) 내부 문건 등 1차 자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최근 하버드대 연구진이 조지아주의 속도와 행정 역량을 현대차 유치 비결로 분석한 데 이어, 민친 교수는 미국 남부의 무노조 노동환경에 주목했다.
민친 교수는 이번 급습의 직접 원인을 이민법 위반에서 찾으면서도 사건을 이해하려면 미국 남부 자동차 산업이 형성돼 온 과정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외자계 자동차 업체들이 노조 조직률이 낮은 남부 지역에 생산거점을 구축해 왔고, 이번 급습 역시 그런 산업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남부 선택 이유요? 무노조입니다"
논문에 따르면 현대차는 조지아주 정부로부터 약 18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받고 메타플랜트를 건설했다. 재산세 감면 4억7200만 달러, 소득세 크레딧 2억1200만 달러, 부지 매입비 8600만 달러가 포함된 조지아 역사상 최대 규모 경제개발 프로젝트다.
민친 교수는 이러한 투자 결정의 배경에 미국 남부 특유의 노동환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논문이 인용한 현대차 공급망 관계자는 "첫 번째 이유는 무노조 지역이기 때문"이라며 "미국 남부는 역사적으로 무노조 지역이에요. 그래서 현대·기아가 이 지역을 선택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대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0년대 혼다(오하이오), 닛산(테네시), 도요타(켄터키)를 시작으로 외자계 자동차 업체들은 수십 년에 걸쳐 노조 조직률이 낮고 기업 친화적인 미국 남부에 생산거점을 집중 구축해 왔다. 현대차는 이 흐름의 후발 주자였다.
민친 교수는 이를 외자계 완성차 업체들이 공유해온 '노조 회피 플레이북'으로 규정하며 현대차 역시 같은 경로를 밟았다고 분석한다. 논문은 테네시 폭스바겐 공장을 미국 남부 외자계 자동차 공장 가운데 드문 노조 조직 사례로 소개한다.
논문은 메타플랜트 급습 이전부터 제기된 노동 문제도 함께 조명했다. 건설 현장 중대재해, 공급망 내 아동노동 논란, 일부 협력사의 수형자 노동 활용 논란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민친 교수는 이러한 사안들이 급습의 직접 원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무노조·저임금 구조 속에서 누적된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모습.ⓒ현대차그룹
한국선 파업·타결, 미국선 노조 자체가 없다
논문은 현대차의 국가별 노무 전략 차이에도 주목한다. 한국 금속노조 산하 현대차 노조는 수십 년간 파업을 통해 임금·고용 협상을 이끌어왔다. 급습 며칠 전인 지난해 9월 초에도 아산·전주·울산에서 파업이 진행됐고 현대차는 임금 인상과 성과 보너스 지급에 합의했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2023년 말 UAW가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3 파업에서 승리하자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HMMA)은 곧바로 25% 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논문은 이를 UAW 조직화 움직임에 대응한 조치로 분석한다. 기아 조지아 공장이 전직 포드·GM 조합원을 사실상 채용 기피했다는 사실이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제소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단속 직후 서울을 방문해 현대차 임원진과 면담했다. 논문에 따르면 켐프는 현대차에 보낸 이메일에서 현대차를 "중요한 투자자이자 파트너"로 지칭하며 조지아주의 지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주지사실은 단속 이후에도 경제개발 성과 홍보를 이어갔고, 2024년 2월에는 '현대의 날(Hyundai Day)'을 공식 지정해 주 의회 결의안으로 현대차의 공헌을 기렸다. 논문은 조지아주가 현대차 유치를 위해 "막대한 시간과 신뢰"를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민친 교수는 논문 결론에서 "수십 년에 걸쳐 노조 회피를 핵심으로 한 새로운 자동차 산업이 성장했고, 그 무대 위에서 이번 사건이 벌어졌다"고 정리했다. 그는 이번 메타플랜트 급습이 이민 단속 사건을 넘어 미국 외자계 자동차 산업이 성장해 온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국내 전문가도 비슷한 맥락을 짚는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미국 남부를 택한 건 노조 없이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며 "미국은 시간당 생산성(UPH·Units Per Hour)이 한국보다 30% 이상 높고 파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정책 대응 측면도 있지만 국내 생산을 자연스럽게 줄이면서 현지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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