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직접선출권력→간접선출권력' 주장
사법부 '간접선출' 부각…내란특판 힘싣기
외견만 권력분립, 선출권력 절대우위 구조
뢰벤슈타인이 주장한 '신대통령제'와 유사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권력에는 서열이 있다"는 발언이 정치권과 법조계·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주장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는 선출직이, 선출직으로부터 임명받는 임명직보다 상위에 있다는 맥락이다. 이론적인 민주적 정당성에서의 우위라면 합당한 주장이지만, 실제 권한에서의 상·하위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고 삼권분립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신(新)대통령제'를 열어젖히는 서막 격의 발언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李대통령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선출권력"
사법부는 '간접선출권력'이라는 점 부각
'내란특별재판부' 구상에 힘싣는 포석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직접선출 권력, 간접선출 권력"이라며 "위헌(헌법 위반)을 얘기하던데 그게 무슨 위헌이냐"라고 반문했다.
국회와 대한변협 등 외부에서 추천한 판사가 이른바 내란 사건의 영장심사와 1심·항소심 재판을 전담하도록 하는 '내란특별재판부' 구상에 대해 "헌법 체계와 사법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위헌"이라는 쓴소리가 거세지자, 이를 추진하는 민주당에 힘을 싣기 위한 주장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 받았고,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건 입법부 권한"이라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고,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 내 다수당인 민주당이 '내란특별재판부'를 만드는 입법을 하는 건 사법부 권한 침해가 아니라 정당하다는 이야기다.
뢰벤슈타인의 '신대통령제' 개념과 유사
대통령이 입법부 거수기화, 사법부에는
법관 임명권 확대, 정치적 위협으로 간섭
강성 지지층의 맹목적 충성을 통해 유지
이를 놓고 이 대통령의 주장이 신(新)대통령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신(新)대통령제란 독일의 법학자 카를 뢰벤슈타인이 창안한 개념이다. 국민으로부터 직선되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인 집행권자로서의 권한을 넘어, 삼권의 다른 요소인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는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형태다.
신대통령제에서는 삼권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뢰벤슈타인은 △대통령이 입법부를 거수기화 하고 △사법부에 대해서는 법관 임명권의 확대나 물리적·정치적 위협을 통해 간섭하는 것을 이 권력구조의 특성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행태는 파벌을 이룬 정치인들과 강성 지지층의 맹목적인 충성을 통해 유지된다.
뢰벤슈타인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피우수트스키 체제(1918~1935),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체제(1954~1970), 베트남 공화국의 응오딘지엠 체제(1954~1963),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체제(1965~1986)를 신대통령제의 대표 사례로 열거했다.
신대통령제는 외견상·형식적으로만 권력분립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국민에 의해 직선된 선출권력인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빙자해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는 권위주의적 권력구조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거나 방지할 실효적 장치가 없는 게 특징이다.
외견상으로만 권력분립의 형태 취할 뿐
선출권력 대통령 절대우위의 권위적 구조
뢰벤슈타인, 피우수트스키·나세르·
응오딘지엠·마르코스 등을 사례로 열거
야권에서는 피우수트스키·나세르·응오딘지엠·마르코스를 넘어서, 이 대통령을 히틀러·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등에 비견하는 발언도 나왔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말로는 국민주권 운운하지만, 실상은 대통령과 절대다수 여당이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독재 정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 가장 경악스러운 발언은 '권력에는 서열이 있다'는 말"이라며 "(대통령은) 대통령과 국회 등 '직접선출권력'이 사법부라는 '간접선출권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등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를 전면 부정하는 말"이라며 "대통령·국회 등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통제한다는 발상은 결국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소비에트식 전체주의 논리와 매우 닮아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의 사고방식대로라면, 헌법재판소가 내란특별재판부를 위헌이라고 판결해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헌재도 간접선출권력'이라면서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은 히틀러·스탈린·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언석 "李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은 히틀러·스탈린·모택동·김일성"
히틀러, 서열 최상위 국민투표로 총통 돼
'내란특판' 격인 민족재판소 설치하기도
다만 송 원내대표가 열거한 인물 중 실제로 권력의 서열상 선출권력의 우월성을 주장해, 임명권력을 제압하고 권력분립을 무너뜨린 인물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최고권력, 그리고 직접선출 권력, 간접선출 권력"이라는 이 대통령의 '서열론'에 따르면, '국민투표'는 최상위 권력이 된다. 히틀러는 바로 이 국민투표를 통해 다른 권력분립기관들을 모두 무력화하고 권력을 잡았다.
히틀러는 1934년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직을 신설해 3권 위의 권력을 손에 넣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수권법을 통해 의회를 제압했다. 사법부는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에서 때때로 영장이 기각되고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것을 빌미로 국민 여론을 선동해 일종의 '내란특별재판부' 격인 민족재판소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무너뜨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권력 서열'이라는게 존재한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게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느냐"며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견제'란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정의 가장 기본적 소재가 권력과 견제·균형"이라며 "이 대통령이 소위 권력에도 서열이 있고, 국민주권이 있고, 그 다음에 직접선출·간접선출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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