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일으키고 3대가 '떵떵'거리는 나라…주중대사 노재헌이 던지는 질문 [데스크 칼럼]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입력 2025.09.12 13:39  수정 2025.09.12 14:14

노재헌 내정이 보여준 권력 세습의 민낯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 청산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노태우 비자금 환원 없는 공적 활동은 과거 미화일 뿐

노재헌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연합뉴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친일과 독재로 세운 권력이 대를 이어 번성한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팔아먹거나 국민을 짓밟은 자들의 후손은 오늘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나라를 지키려 싸운 이들의 후손은 여전히 가난과 소외 속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친일·독재 세력이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쌓은 부정한 유산이 후손들에게 '떳떳한 권리'로 둔갑해 세습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자식들은 다시 좋은 교육을 받고, 변호사·교수·재단 이사장으로서 명망을 이어왔다. "매국하면 3대가 흥하고, 애국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문제는 이 불의가 과거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권력에 기생하며 국가 자산을 사유화한 친일·독재 세력의 후예들은 여전히 사회 지도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권을 기반으로 또 다른 특권을 누린다. 더구나 일부는 반성은커녕 '문화예술 활동'이나 '사회 공헌'의 이름으로 과거를 미화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발판으로 삼는 모습까지 보인다.


최근 이재명 정부 첫 주중대사에 내정된 노재헌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이 상징적이다. 그는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피로 진압했으며 퇴임 후에도 수천억 비자금을 쌓아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재단을 운영하며 공적 무대에 서 왔다.


12·12 군사반란 세력들ⓒ연합뉴스

물론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죄 밖에 없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실제 그는 2019년 이후 네 차례 광주를 찾아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고 희생자 가족과 만나 독재자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법 축재를 환원하지 않고 향유하는 순간, 단순한 혈연을 넘어 역사의 공범이 된다. 노 전 대통령은 무려 46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2682억원은 추징했으나, 나머지 금액은 자금 흐름을 찾지 못해 환수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도 김 여사는 904억원을 꼼꼼히 적어둔 메모를 수십년간 간직하고 있다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야 꺼내놓았다.


동아시아문화센터에도 147억원을 기부한 것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 노태우 비자금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아무리 세련된 언어로 포장해도, 그의 인사가 '역사적 불의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상징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강 작가의 말을 인용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며 "이제는 우리가, 미래의 과거가 돼 후손을 구할 차례"라고 말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묻는 것도 바로 이 질문이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아 무엇을 누리고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 청산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지금 노 이사장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무는 주중대사가 아니라 노태우 비자금의 실체 공개와 환원이다. 그마저 회피한다면, 그는 더 이상 단순한 '후손'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에 불의를 이어가는 공범자일 뿐이다.


사족 하나,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 반대편에 서 대항하다 무장해제당하고 연행돼 무자비한 조사와 강제예편을 겪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소장). 그의 비통함은 "반란을 막지 못하고 가족 3대를 망친 죄인"이라는 말로 지금껏 전해진다.


실제 그의 부친은 아들의 고초를 본 후 충격으로 1980년 4월 세상을 떠났고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외아들 성호(당시 20세)씨는 1982년 1월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후 실종됐다 한 달 후인 2월 9일 경북 칠곡 낙동강 기슭 조부 묘소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소장은 꽁꽁 언 아들을 끌어안고 "나 때문에 이렇게 됐어. 좀 더 따뜻하게 아들을 감싸 안아줘야 했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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