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석은 짧은 등장에도 뇌리에 깊이 남는 명대사와 감칠맛나는 연기로 극에 깨알같은 재미를 더해온 신스틸러다. 넷플릭스 '트리거'에서는 "내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인권이라는 게 있다"고 소리치며 포악한 성범죄자를 연기했고, '오징어 게임' 시즌 2와 3에서는 줄넘기에서 통과하자마자 다음 참가자들을 밀어뜨리곤 "뭐하긴? 게임하지"라고 응수했다. 특유의 뻔뻔하고도 비열한 미소로 인해 시청자로부터 '길막좌'라는 애칭마저 얻게 된 그다.
'트리거'와 '오징어 게임' 뿐일까. 이석은 '카지노'에서 지명수배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던 김경영(찰리)부터 '마이네임'에서 윤지우에게 성폭력을 가하려던 김철호까지 주로 '센' 캐릭터로 대중을 만나왔다. 다양한 악역을 소화해야 했던 만큼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그런만큼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가장 공을 들였다.
"이제까지 맡아왔던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른 사람이지만 표현하는 사람은 저잖아요? 제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면 과연 어떤 표정과 눈빛, 성향을 갖고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또 캐릭터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이런 선택을 했을지에 대해서도 이해하려 해보고요. 제 스스로가 설득이 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보시는 분들도 설득이 되실 테니까요."
이제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까다로웠던 인물은 '트리거'의 전원성이었다. 캐릭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경찰서까지 견학을 다녀왔다.
"전원성은 그냥 너무 나쁜 사람이고 뻔한 캐릭터여서 더 어려웠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트리거'는 감독님께서 직접 글을 쓰신 작품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방향성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셨어요. 또 개인적으로도 캐릭터에 공감을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데요, 예를 들어 손목시계를 왼쪽 발에 차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보기도 했고, 경찰서에 견학을 가서 제가 여기에 온다면 어떤 기분일지 현장감을 느껴보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인물의 전사를 만든다거나 가족관계, 성격, 특정 행동 등 테이블 분석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피부로 와닿는 분석들을 많이 하려고 해요. 범죄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범죄자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의 심리와 기분 나쁜 표정을 살펴보죠. 전원성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셨다면 어느정도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꿈도 열정도 없었던 과거를 회상한 이석은 20살 무렵 친척의 권유로 연극영화과에 도전,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2008년 뮤지컬 '빨래'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데뷔 17주년을 맞이한 베테랑이다. 전성기를 향해 달려나가는 시기기도 하다.
"요즘은 매체 연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어요. 앵글 안에 잡히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또 누구나 배우로서 선한 영향력을 갖고 싶어하잖아요? '오징어 게임'으로 전세계 시청자 분들이 제 SNS를 찾아오는 현상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매체 연기로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10년동안은 정말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제 정점을 찍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활발하고 건강하게 활동을 하고 80, 90살이 된다면 그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걸 찾아 떠난다 하더라도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게끔요."
다만 그가 말하는 '전성기'가 단순한 인기나 흥행만을 뜻하지는 않는단다. 앞서 말했듯, 관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석이다.
"직업적인 사명감이 강한 편이에요. 내가 이걸 왜 하는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요. 그리고 그런 사명감이 제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가 있어요. 곡 제목처럼 많은 분들이 힘들게 일하시는데, 그분들이 쉴 수 있는 시간, 여가나 문화생활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교두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무엇보다 조금 더 '이석'다운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제 상태 메시지가 '아름답게'에요. '아름'이 나라는 뜻이라면, '아름답게'는 '나답게'라는 뜻이잖아요? 2011년에 뮤지컬 '오디션'이라는 작품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맡았던 준철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저다웠던 것 같아요.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역할이었죠. 준철은 너스레를 잘 떨고, 팀원들을 배려하고, 코믹하고 낙천적인 캐릭터에요. 매체에서도 준철같은 역할을 만나보고 싶어요. 저다운 모습요. 지금까지는 상상을 통해 악한 것들을 끌어내서 악역을 연기했다면, 앞으로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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