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청각장애인도 뮤지컬 관객 될 수 있나 [언어 장벽 넘는 뮤지컬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6.20 13:43  수정 2025.06.20 13:43

2023년 외국인 티켓 예매액, 전년 대비 370% 증가

외국인·장애인 관람객 '공연 언어 장벽' 여전

뮤지컬 '웃는 남자'(2025)에 출연한 NCT 도영 ⓒSM엔터테인먼트

#일본에 거주 중인 미유(21)씨는 올해 초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평소 NCT127 팬이라는 그는 “한국에서 열린 월드투어 콘서트와 도영이 출연하는 ‘웃는 남자’를 예약하고 한국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가사를 외우고, 유튜브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미유씨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대사, 넘버의 내용을 다 알아듣진 못했다”며 “공연을 보기 전, 공연을 본 이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해서 뮤지컬의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6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외래관광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1월~11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09만명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래관광객의 방한 관심 계기로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32.1%)’가 가장 높게 나왔다. 방한 고려 관광 활동으로도 식도락, 쇼핑, 자연, 역사·유적지 방문 다음으로 ‘케이팝(K-POP)·한류 스타 관련 장소 방문’이 순위를 이었다.


자연스럽게 케이팝 아이돌 가수들의 활동 무대 중 하나인 뮤지컬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관심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23년 인터파크 글로벌 이용 데이터 분석 결과, 외국인 티켓 예매액은 전년 대비 370% 증가했다. 특히 뮤지컬 티켓 예매액은 케이팝에 이어 2위(13%)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한 온라인 티켓 판매 업체의 뮤지컬 해외 구매가 1년 전보다 20% 넘게 나타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 뮤지컬 관계자 역시 “공연장 풍경만 보더라도 매년 꾸준히 외국인 관객이 증가하는 것이 체감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집계 결과는 한국 뮤지컬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대학로를 비롯해 주요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엔 외국인 관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공연을 관람하며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언어의 장벽이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의 대다수는 번역된 자막이나 대본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는 대사의 깊은 의미와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공연 몰입도를 저해하고 온전한 감동을 느끼기 어렵게 한다. 뮤지컬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스토리텔링이 언어 문제로 인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서, 해외 관객들은 시각적, 청각적 요소만으로 공연을 즐겨야 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오롯플래닛

뮤지컬 관람에 있어 외국인 관객만큼 큰 언어의 장벽을 느끼는 관람군은 청각장애인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장벽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계에서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통해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평가다.


현재 뮤지컬 분야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주로 수어 통역과 한글 자막 제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가 모든 공연에 보편적으로 제공되지 않고, 특정 회차에 한정되거나 신청을 통해서만 이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수어 통역사의 배치나 자막의 정확성, 가시성 등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대사를 번역하는 것을 넘어, 노래 가사, 인물의 감정선, 극의 분위기 등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는 1년 동안 문학 행사 및 미술 전시회를 관람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은 전체 중 3.9%, 연극과 뮤지컬, 무용을 관람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은 3.8%, 서양음악을 관람한 장애인은 1.3%에 불과했다. 공연과 장애인 사이를 가로막는 시스템 부재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연 관람에서의 언어 장벽은 외국인 및 청각장애인 관객의 공연 접근성에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공연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공연 관람 경험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문화적 소외감을 야기한다. 이는 재관람 및 입소문 확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뮤지컬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언어 장벽을 허무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미’는 지난 4월 국내 거주 외국인 체험단 총 17개국 32명을 대상으로 ‘서울 예술관광 파일럿 프로그램 팸투어’를 진행하면서 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뮤지컬의 대사를 실시간 영어 자막으로 볼 수 있도록 했고, 대학로 대표 창작 뮤지컬 ‘랭보’ 역시 객석 내 실시간 다국어 자막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밖에도 많은 작품이 외국인, 청각장애인 등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아직까진 ‘시범 운영’이나 ‘이벤트성’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한국 뮤지컬은 이미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이제는 언어라는 마지막 장벽을 넘어, 국적과 신체적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한국 뮤지컬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다국어 자막 시스템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면서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될 때, 한국 뮤지컬은 진정한 K-콘텐츠의 선두주자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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