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극장으로㉓] 서울 용산구 보광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투박함에서 오는 정겨움, 보광극장의 매력”
서울 용산구 보광동, 좁은 언덕길을 따라 정겹게 늘어선 상가들 사이에 자리잡은 보광극장은 유독 눈에 띈다. 옆 상가들과 비교해 매우 좁은 공간이지만, 붉은색 간판과 외벽이 이곳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한다.
보광극장은 붉은 입구를 따라 지하로 이어진 30석 규모의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이다. 과거 단란주점으로 활용되던 곳이 상주 단체인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 단원들의 손을 거치면서 2020년 극장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한 차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있던 이곳은 2022년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강민수 대표를 만나 다시 활기를 이어가게 됐다.
애초 강 대표도 공연장을 운영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보광극장을 본 이후 마음을 달리 먹었다. 조명도, 무대도, 객석도 일반적 극장의 구조라고 보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강 대표는 “예쁘고 아름다웠다”고 보광극장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투박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정겹게 느껴졌어요. 전문가들이 보기엔 시설도 좋지 않고, 불편하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단원들이 손수 공사를 해서 만든 그 노력들이 곳곳에 묻어있더라고요. 그저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통이 되는 예술, 보광극장의 신념”
젊은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는 곳이지만,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부수고 지역민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고 호흡하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그 덕에 보광동이라는 지역에 들어서지 않을 듯한 이질적인 극장이지만, 의외로 지역에 동화되면서 보광극장의 특색을 만들어냈다.
“지역극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자 했는데 처음부터 쉽진 않았어요. 보광동에 대한 이야기로 극을 만들고자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냉담한 반응이었어요. 굴하지 않고 상가, 주민 인터뷰를 해서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라는 공연을 올렸어요. 또 최근엔 시민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고, 재미를 느낀 분들을 중심으로 ‘상상제작소’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지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요소가 만들어진 거죠.”
강 대표는 일반 지역민들과 예술의 가교가 되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이 점점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노출되어 있는 환경적 특성상 소규모 공연에 관심을 갖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억지로라도 찾아올 수 있게끔 그들이 사는 곳에 침투해서 우리를 통해 예술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거 극단이 상주단체로 이곳을 사용했다면, 현재는 극단의 자체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장르의 연극, 영화제, 전시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른 단체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한다. 이 역시 지역민들이 ‘언제든지’ 이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살고 있어요, 보광동에’가 반응이 좋았는데 그 유대 관계에 연속, 지속성을 주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았어요. 지역민들이 찾는 공연장이 되려면, 무엇보다 공연이 계속 올라가야 하잖아요. 자체 기획 공연만 한다면 공연장이 쉬는 기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관심을 가졌다가도 식기 마련이니까요. 공연장의 문을 열어두고 언제나 원할 때 오실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대표는 보광극장을 통해 ‘소통이 되는 예술’을 구현하고자 한다.
“대학로의 많은 공연이 지인, 예술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사실 일반 대중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것이 사실이죠. 저희 극장은 ‘지역극장’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어요. 주변에서 ‘너희 극장만의 색깔을 갖추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되면 대중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보광극장의 방향성입니다.”
재개발 계획 속에 놓인 보광극장의 미래
다만 보광동이라는 위치의 한계도 분명하다. 보광동은 용산구의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북쪽으로는 중구, 동쪽으로는 성동구, 남쪽으로는 한강, 서쪽으로는 마포구와 접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하지만 산등성이로 노후한 다세대 주택, 상가들이 난립해 있어 곳곳이 재개발 계획에 놓여 있다.
“이미 아랫동네는 재개발이 시작됐고, 저희 공연장도 빠르면 3~5년, 길면 7~8년 후엔 재개발로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사에 대해 단원들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수익을 내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죠. 여러 변수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입니다(웃음).”
언젠가 자리를 비워줘야 하지만, 강 대표는 어느 곳으로 가든 극장의 이름을 ‘보광극장’으로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광극장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하나의 ‘지역극장’의 상징으로, 가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이곳이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지역극장의 시작이니까 활성화 모델로써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학로를 벗어나 지역극장 활성화의 모델로, 주민들과 함께 하는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브랜드화되는 걸 꿈꾸고 있습니다. 떠나기 때문에 ‘적당히’는 없어요. 떠나기 때문에 이곳에서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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