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인 더 풀'의 물갈퀴를 가진 소년 우주처럼, 배우 이민재도 자신 안에서 길어 올린 감수성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 석영과의 만남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의 격랑을 겪는 소년 우주를 연기했다. 타고난 물갈퀴 덕분에 수영에 재능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특별함이 희미해지고 결국 평범해진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보이 인 더 풀'의 개봉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2'(이하 '약한영웅2')의 공개 시점이 겹치면서, 이민재는 전혀 다른 결의 두 인물을 동시에 관객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섬세하고 고요한 우주와 호쾌한 의리남 고현탁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캐릭터지만, 모두 그의 얼굴로 설득력을 얻었다. 특히 '약한영웅2'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SNS 팔로워 수가 급증하고 해외 팬들까지 유입되는 등 이민재의 인지도 또한 빠르게 상승했다.
"SNS 팔로워 숫자가 많이 늘었어요. 숫자가 늘어나는 게 한때는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것에 흔들리는 제 자신이 별로기도 했고요. 결국 본질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이 인 더 풀'의 대본은 그에게 단숨에 끌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물갈퀴라는 독특한 설정뿐 아니라 감정을 세밀하게 조율할 수 있는 여백이 충분한 서사라는 점에서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본을 읽자마자 너무 좋았어요. 물갈퀴라는 설정도 새롭고 기발하다고 생각했고, 카파(KAFA,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기관 자체가 흥미로워서 꼭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강하게 회사에 어필했고, 감독님을 만나고 나니 더 하고 싶어졌죠. 제가 원래 일본 영화나 홍콩 감성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대본을 보자마자 그런 그림들이 상상됐어요. 내가 한다면 어떤 장면이 나올까 궁금했죠."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지닌 이민재에게, 우주라는 인물은 낯설고 조용한 결을 가진 존재였다. 평소 잘 표현하지 않던 감정의 결을 꺼내야 했기에 그는 인물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부단히 노력했다. 감독의 제안으로 전시회를 혼자 다녀온 경험도 전환점이 됐다. 처음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조용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며 오히려 우주라는 인물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우주라는 인물이 가진 기질 자체는 저와 좀 달라요. 제가 평소에 많이 표현하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고민이 많았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혼자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나?’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저 안에도 깊숙이 우주의 기질이 있더라고요. 또 감독님께서 전시회를 다녀오라는 감독님의 제안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엔 왜 그런 작업이 필요한지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그 공간 안에서 혼자 생각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감독님이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셨던 것 같아요."
감정을 만들어내기보다 비워내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도 이번 연기의 중요한 전환이었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연기를 통해 인물에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제가 뭔가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뭔가 감을 잡은 것 같을 땐 오히려 감독님께 여쭤보며 힘을 더 빼려고 했죠. 수영장 장면을 찍으면서 감을 잡았고, 감독님도 ‘이제 우주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던 물갈퀴가 점차 빛을 잃어가는 설정은, 누구나 겪는 성장의 통증을 상징한다. 이민재는 그런 우주를 바라보며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되게 외롭고 불쌍했어요. 마지막에 홀로 이겨내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하기도 했죠.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땐 ‘나 괜찮아, 이겨냈어’라는 감정을 갖고 연기했어요."
상대역 석영을 연기한 효우는 댄스팀 훅의 멤버로, 이번 작품이 연기 데뷔작이다. 이민재는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 처음엔 막연한 걱정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효우가 석영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며 곧 신뢰를 갖게 되었다.
"현장에서 같이 연기하면서 사적으로 보던 효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준비해왔구나 싶었고, 눈을 마주치며 연기할 때도 ‘잘하고 있어, 나도 의지해야겠다’ 싶었죠. 효우가 저보다 경험은 적지만 너무 열정적이고 준비를 많이 해왔어요. 저보다 더 잘하더라고요."
우주에게 물갈퀴가 특별한 재능이었다면, 이민재에게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점이 그와 같은 '물갈퀴'였다.
"저만의 물갈퀴는 운동을 통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점이에요. 남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할 수 있죠. 반면에 섬세한 표현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오디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시절, 그는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겼기 때문이다. 매번 다른 인물을 만나며 자신 안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흥미롭고 설레는 여정이다.
"연기를 하면서 저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게 재밌어요.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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