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원의 정치공학] 대궁소궁 불상전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1.02.15 07:00  수정 2021.02.15 05:30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의아한 안철수·금태섭 '제3지대 경선' 난항

'작은 집'의 '부자 몸조심'은 어울리지 않아

안철수 'TV토론, 이번엔 다르다' 보여줘야

단일화 과정 전반서 보다 적극적 모습 기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바둑 격언에 '대궁소궁 불상전(大宮小宮 不相戰)'이라는 말이 있다. 큰 집과 작은 집이 각자 미생(未生)으로 수상전에 돌입하면 작은 집이 큰 집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예비경선을 앞두고 여의도에서 이 바둑 격언이 새삼 회자됐다. 3석 국민의당 대표인 안철수 후보가 외곽에서 겉도는 사이에 제1야당 국민의힘이 경선을 거쳐 후보를 확정하면, 이후의 단일화 과정에서는 안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맥락이다.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안철수 대표 지지층 중의 상당수가 국민의힘 지지자들로 구성돼 있다. 국민의힘 본경선이 본격화하면 움켜쥐고 있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솔솔 빠져나가듯 이들의 '원대복귀'를 차단할 수는 없다. 결국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그 사이 안 대표의 지지율은 빠진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부터가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대궁소궁 불상전'의 신봉자다. 김 위원장은 "과거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큰 당에 뿌리를 가진 사람이 종국에는 단일 후보가 됐던 게 상례"라고 단언했다.


자칫 외로운 처지에 빠질 뻔한 안철수 대표에게 원군이 나타났다. 무소속 금태섭 전 의원이다. 금 전 의원의 '제3지대 경선' 제안 덕분에 '소궁(小宮)'이 '제3지대'로 덩치가 커졌다. 국민의힘 경선에 못지 않게 국민의 이목을 끌만한 '판'을 벌인다면 안 대표도 충분히 '수상전'에서 이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대궁소궁 불상전'의 모습. 대궁(大宮)인 백을 소궁(小宮)인 흑이 잡으러 갈 수 없어, 백이 무조건 수상전에서 이기게 된다. 지난 2019년 11월 한국바둑리그 김지석 九단(백) 대 박진솔 九단(흑)의 대국에서 나온 국면이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 사이의 '제3지대 경선'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금 전 의원은 설 연휴 전에 첫 토론을 갖자고 했다. 국민의힘은 설 연휴 이후인 15일에나 첫 토론을 열며, 그나마도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박형준·이언주 예비후보 맞대결이 핵심이다. 세간의 주목을 끄는 나경원·오세훈 후보 맞대결은 23일에나 열린다. 금 전 의원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설 연휴에 '밥상머리 민심'을 선점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겠지만 불발됐다.


더 이상한 일은 15일로 예정됐던 첫 TV토론마저 무산된 것이다. 양측 실무자의 첫 상견례 때 첫 토론은 주제까지 이미 결정됐는데도 실무협상만 계속되고 있다. "난상토론은 안된다"며 토론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데, 과연 이것이 국민이 원하는 바인지 의아한 측면이 크다.


국민의힘 1대1 맞짱토론도 미국 대선후보 토론과 같이 쌍방의 발언시간 총량만 정해놓는 '난상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회자의 질문에 각 후보가 암기해온 대답을 읊는 토론회는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할 뿐더러, 안 대표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A조·B조로 나뉘어 각자 토너먼트를 하는 마당에 'A조'로 국민의 시선을 고정시킬 방책도 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안철수 대표가 토론을 두려워 한다"는 표현에 국민의당이 펄쩍 뛰며 억울해했지만, '혹시 안 대표가 토론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냐''과거 대선 TV토론 때의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대궁소궁 불상전'의 상황 속에서 3석 국민의당 대표인 안철수 후보가 '부자 몸조심'을 하는 듯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예선'에 해당하는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이런저런 조건을 설정하더라도, '본선'에서 맞붙을 집권 세력은 결코 안 대표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것은 '8800만 건 드루킹 댓글' 세례를 뒤집어썼던 안 대표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권은희 원내대표가 말한대로 안철수 대표 본인이 TV토론과 관련해 '이번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안 대표가 금태섭 전 의원과의 'A조 토너먼트'에서는 물론 향후 국민의힘 후보와의 '결선 토너먼트'에서도 토론의 횟수와 형식·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해본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