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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우의 싫존주의] 정부 신용대출 말바꾸기에 멍드는 은행


입력 2020.10.27 07:00 수정 2020.10.26 10:25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신용대출 늘리라더니…급증하자 금융당국 고삐 죄

"책임은 은행 스스로"…정책 신뢰 추락 누구 탓인가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내 금융위원회 전경. ⓒ금융위원회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내 금융위원회 전경. ⓒ금융위원회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몇 년 전 세간에 오르내리던 유행어가 최근 금융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엔 불과 수개월 사이 메시지를 정 반대로 바꾸는 정부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주문을 거부할 수 없는 시중은행들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조 섞인 푸념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자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대출을 적극 확대하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잠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은행들이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 주문이었다.


사실 은행들에게 늘어나는 대출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만큼 이자 수익을 더 거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당시 은행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많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상승 탓에 신용대출까지 끌어 쓰는 이른바 영끌 바람이 불면서, 가뜩이나 신용대출이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신용대출 전반의 고삐를 늦추면, 코로나19 지원 효과보다 부작용만 클 것이라 염려했다. 더욱이 올해 3월부터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0%대까지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굳어지고 있는 때였다. 안 그래도 대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정부가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됐다.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5대 은행들에서 늘어난 개인 신용대출은 16조5000억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연간 증가액이 8조원에 못 미쳤던 것을 감안하면 이미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러자 정부의 태도는 180도 돌아섰다.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들이 신용대출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고 있다며 이를 억제하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은행들의 건전성이 우려된다는 덕담 아닌 덕담과 함께였다. 그러면서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을 철저히 쌓으라고 강조했다. 늘어난 신용대출에서 혹여나 펑크가 나면 스스로 알아서 메꾸란 뜻이다.


은행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금융 논리로 봤을 때 마뜩치 않은 여건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코로나19 극복에 힘쓰자는 정부의 외침에 동참했던 은행들은 닭 쫓던 개가 된 형국이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또 다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처지다. 자신들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의 명령에 비토를 놓기엔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은행을 향한 금융당국의 간섭은 여기저기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산운용사의 사기로 펀드에서 대량 손실이 나자 은행들도 이를 알고 팔았지 않냐며 전액 배상을 압박하거나, 온라인 금융이 대세가 되고 있는 현실은 알지만 오프라인 지점을 과도하게 폐쇄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물론 금융권이 엇나간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건 금융당국이 해야 할 소명이자 역할이다. 그리고 이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착오가 있을 수 있다. 잘못을 깨닫고 옷매무새를 다시 바로잡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문제는 정작 오류가 생겼을 때 책임은 언제나 정책 당사자가 아닌, 이를 따른 민간 금융사의 몫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행태에 금융권의 피로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신뢰 받는 정책을 위해 정말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금융사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자신의 모습부터 거울에 비춰봐야 할 때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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